지난 주말 사장 및 몇명의 동료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엘 다녀왔다. 한국일보 샌프란시스코 창간 33주년 기념 필진 사은의 밤 겸 제16회 생활수기 현상공모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한국일보에 글을 기고했고 또 현재 쓰고 있는 사람들을 비롯해 많은 문학과 예술 관계자들이 참석한 문화적 향취가 자욱한 자리였다. 시상식에 이어 저녁식사 시간에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모두들 한결 같이 샌프란시스코의 아름다운 풍광과 문화 및 예술의 오래고 그윽한 역사를 자랑한다. 미국에서 개스 값이 1, 2위로 비싸고 또 허름한 2베드룸 집 한 채가 65만달러를 호가하지만 일단 이 곳의 분위기에 젖으면 다른 곳에 살 생각이 안 생긴다고.
이런 얘기는 몇 차례 뉴욕엘 갔을 때도 들은 바 있다. 시카고에서도 마찬가지. 그런데 이 곳 사람들이 자신들의 도시의 문화와 예술의 우월성을 뽐내는 마음의 저변에는 은근히 LA를 우습게 여기는 자세가 도사리고 있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단 하나 LA가 칭찬 받는 것은 음식 맛. 나는 그럴 때마다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지요. 지금 LA는 문화와 예술적으로 어느 대도시 못지 않게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답니다”라고 내가 사는 곳을 응원하곤 한다. 아무렴 어떠랴. 마음이 있는 곳이 고향이니.
제2부는 문화의 밤 순서. 수필 낭독과 시 낭송 그리고 독창과 플루트 연주 및 무용 공연 등으로 다채롭게 엮어진 푸짐한 잔치였다. 밤 깊어 가는 줄 모르는 시간이었는데 나도 맨 마지막에 짤막한 영화이야기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튿날 우리의 나파밸리와 샌프란시스코 구경 안내를 맡았던 달변의 이 선생님 말처럼 샌프란시스코는 안개와 언덕과 바람의 도시. 포주 출신의 여시장 샐리 스탠포드가 발전시킨 그림엽서 같은 소솔리토에서 바라다본 샌프란시스코는 맑은 한낮인데도 마치 꿈처럼 서서히 이동하는 안개 속에 갇혀 있었다. 하늘거리는 베일을 쓴 무희처럼 관능적이다.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갈 때면 항상 속으로 토니 베넷의 ‘샌프란시스코에 두고 온 내 마음’(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을 따라 부르곤 한다.
‘나는 내 마음을 샌프란시스코에 두고 왔지요/ 언덕 위 높이서 그 곳은 날 부르네/ 별들에 이르는 길 중간까지 오르는/ 작은 케이블카가 있는 곳에 오라고/ 아침 안개는 공기를 싸늘하게 만들지만/ 난 마음 쓰지 않아요/ 내 사랑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기다리고 있지요 / 하략.’ 베넷이 까칠까칠한 음성으로 부르는 노래가 로맨틱하다.
안개 다음으로 유명한 언덕은 스티브 매퀸이 나온 형사 스릴러 ‘불릿’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매퀸과 그가 쫓는 자가 언덕들을 마치 널뛰듯 하며 초고속으로 차를 모는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는 차 추격장면이다.
안개와 언덕보다 더 유명한 것이 금문교일 것이다. 이날 주황색 금문교는 허리에 안개를 잿빛 치마처럼 두르고 있었다. 대범하고 장엄하고 아름다운 금문교는 먼발치서 봐야 더 멋있는데 이 다리가 불길하도록 신비롭게 자태를 나타낸 영화가 히치콕의 병적으로 선정적인 스릴러 ‘현기증’(Vertigo·사진)이다. 광장공포 증세가 있는 전직 형사 지미 스튜어트가 미행하는 금발미녀 킴 노박이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할 때 뒤에 보이는 금문교가 두 사람의 인연을 맺고 죽음으로 풀어주는 커다란 의문부호처럼 느껴진다.
온 김에 나파밸리를 찾았다. 이 선생님은 이라크 전쟁 때문에 미·불관계가 악화돼 프랑스산 포도주 수입이 줄면서 나파포도주 장사가 더 잘 된다고 설명한다. 먼저 로버트 몬다비 포도원엘 들렀다. 랄프스 마켓에서 본 상표인데 시음장 초입 광고판에 적힌 ‘포도주는 생명이다’라는 로마 시인 페트로니우스의 말이 술꾼의 가슴을 흥분케 한다.
관광지는 바가지라고 시음 포도주 2온스에 7달러나 한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때부터 백악관에 술을 댔다는 BV포도원(이 상표는 로버트 케네디가 즐겼다)에 이어 V. 사투이와 베린저 포도원을 들르며 한 잔씩 시음을 했더니 뜨거운 계곡의 태양에 몸 안의 포도주가 재발효를 하는지 몽롱한 기분이다. 슈트라우스의 ‘술과 여인과 노래’라도 들었으면 금상첨화였겠다. 공무와 여분의 쾌적을 모두 마치고 나도 그 곳에 마음을 두고 내려왔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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