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에 스크린을 주름잡던 버트 랭카스터, 에롤 플린, 로버트 테일러, 스튜어트 그레인저, 코넬 와일드 그리고 바질 래스본 등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이들은 모두 칼싸움을 잘하는 멋쟁이들이었다. 남성적 매력을 물씬 풍기던 이들 스타들은 영화에서 해적과 산적, 기사와 총사 그리고 어릿광대와 반란자들로 나와 칼부림을 했었다.
소위 ‘펜싱 영화’라 불리는 검술 영화를 ‘스와시버클러(Swashbuckler)’라 부른다. 스와시버클러는 허세 부리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는데 칼부림을 하는 사람들의 다소 과장되고 의기양양하면서 날렵한 스타일에 어울리는 말이다. 스와시버클러의 대종은 해적 영화다. 해적 영화는 40년대~50년대 초 크게 유행했는데 해적은 분명 나쁜 놈인데도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는 악과 싸우는 멋쟁이가 된다.
상기한 여러 배우들 중 스크린에서 가장 칼싸움을 잘한 사람이 에롤 플린이다. 가느다란 콧수염을 했던 미남 플린의 대표적인 두 해적 영화는 ‘블러드 선장’(1935)과 ‘시호크’(1940). ‘블러드 선장’에서 플린은 자의와 달리 해적이 된 아일랜드 의사로 나와 프랑스 해적 바질 래스본과 펜싱 결투를 벌인다. 흥미만점의 이 영화보다 더 신나는 해적 영화가 ‘시호크’다. 나는 이 영화를 서대문에 있던 동양극장서 보면서 플린의 그 날렵한 칼 솜씨에 경탄을 금치 못하고 흥분했었다. 플린은 또 ‘로빈후드의 모험’(1938)에서는 산적 로빈으로 나와 늘 악역만 하던 날카롭게 생긴 래스본과 격렬한 칼싸움을 벌였다.
칼로 표시한 Z마크로 유명한 조로의 이야기 ‘조로의 마크’(1940)에서 조로로 나온 타이론 파워와 또 나쁜 놈으로 나온 래스본의 펜싱 결투도 치명적으로 멋들어진 칼싸움이었다. 젊고 예쁜 리즈 테일러가 유대인 처녀로 나와 멋진 흑기사 로보트 테일러를 짝사랑하던 ‘흑기사’(1952)도 액션과 모험과 로맨스가 있는 재미있는 검술영화다.
이들 배우들이 실제로도 펜싱 솜씨가 좋았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스크린에서 뿐 아니라 실제로도 칼 솜씨가 프로급이었던 배우가 코넬 와일드. 그는 베를린 올림픽 참가 미 펜싱선수단의 리더였는데 연기에 전념하려고 출전을 포기했었다. 와일드가 ‘삼총사’의 촌뜨기 검객 다르타냥의 아들로 나오는 ‘검의 끝’(1952)은 즐거운 스와시버클러다.
한때 잘 나가던 해적 영화는 근래 들어 나오는 것마다 흥행서 실패, 스튜디오들이 타부 장르로 여기게끔 됐다. ‘해적 영화’‘해적들’‘후크’ 및 ‘자객의 섬’그리고 올해 나온 디즈니의 만화영화 ‘보물 행성’ 등이 그런 것들. 그런데 해적 영화는 장사가 안 된다는 징크스를 깨고 지금 한창 관객의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가 ‘카리브해의 해적’이다. 자니 뎁이 좋은 해적으로 나와 달빛을 맞으면 해골로 변하는 나쁜 해적들과 싸우는 이 영화는 개봉 2주째인 현재 총 1억3,300만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이런 기운을 잽싸게 올라타고 최근 WB가 5편의 흥미진진한 스와시버클러를 DVD로 내놨다. 그 중에서 가장 화끈하고 재미있는 두 영화가 ‘진홍의 도적’(The Crimson Pirate·1952)과 ‘스카라무슈’(Scaramouche·1952). 해적으로 나온 버트 랭카스터가 맨 처음 밧줄을 타고 해적선의 이 돛대에서 저 돛대로 날아다니면서 “보는 것 다 믿으세요”라더니 곧 이어 “아니 절반만 믿으세요”라고 정정을 하는 이 영화에서 곡예사 출신의 랭카스터는 신기에 가까운 곡예를 마음껏 과시하고 있다. 액션과 모험 로맨스와 웃음이 가득한 영화로 기분이 우울할 때 보면 금새 밝아질 수가 있다.
영국의 멋쟁이 배우 스튜어트 그레인저가 혁명 직전의 프랑스 귀족의 사생아로 나와 냉정한 킬러 귀족인 형(멜 퍼러)과 펜싱 결투를 하는 ‘스카라무슈(사진)’는 스와시버클러의 백미. 액션과 모험, 로맨스와 유머가 듬뿍 담긴 영화로 그레인저와 퍼러가 텅 빈 극장에서 장장 6분30초간 벌이는 펜싱 대결은 심장의 피를 끓게 만드는 장렬하고 사납도록 맵시 좋은 칼싸움이다.
퇴물이 된 플린이 스코틀랜드의 왕위 계승자로 나와 잉글랜드와 싸우는 ‘발렌트레의 매스터’(The Master of Ballantrae ·1953)와 로버트 테일러가 아서왕(멜 퍼러)이 총애하는 기사 랜슬롯으로 나오는 ‘원탁의 기사’(Knights of the Round Table·1953) 그리고 역시 혁명 직전 프랑스를 무대로 두 쌍의 엇갈린 쌍둥이들이 벌이는 폭소 코미디 ‘나 없이 혁명 시작해’(Start the Revolution without Me·1970)도 재미 있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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