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이 세상을 떠나 저 하늘에 올라 진짜 별이 됐을지도 모르는 그레고리 펙을 생각하면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냥 좋은 게 아니라 좋은 것의 총체라고나 해야할까.
그는 또 신사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배우였다. 펙이 잡지기자로 나와 미국사회의 반유대주의를 취재하는 ‘신사협정’(Gentleman’s Agreement·1947)은 여러 모로 펙의 이미지와 잘 맞는 영화다. 내가 펙의 젠틀맨 이미지를 강렬하게 경험했던 첫 영화는 ‘회색 플란넬 옷을 입은 남자’(The Man in the Gray Flannel Suit·1956)였다. 나는 중학생 때 서울 광화문에 있던 국제극장 앞에 세워진 회색 플란넬 옷을 입고 두 손을 뒷짐 진 채 서있는 거대한 펙의 선전사진을 쳐다보면서 완전히 압도당했었다. 아마 내가 또래 중에서도 꼬마여서 양키 펙이 더 크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펙은 잘 생긴 대통령감의 얼굴(그의 얼굴은 마운트 러시모어의 큰바위 대통령 얼굴을 연상케 한다)에 하느님 같은 목소리 그리고 담벼락처럼 듬직한 가슴을 지닌 데다 나오는 영화마다 인간적이요 영웅적이며 또 믿음직스런 사람으로 나와 만인의 사랑을 받았는데 특히 여자들이 몹시 좋아했다. 남자 중의 남자의 전형인데 나의 한 동료 여직원은 “그레고리 펙이 죽어 슬펐어요”라며 그의 타계를 안타까워했다.
남자들도 슬프긴 마찬가지. USA 투데이의 칼럼니스트 크레이그 윌슨은 펙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가 떠나니 세상이 공허해진 것 같다고 애도했고, 타임지의 영화 평론가 리처드 콜리스도 수필에서 그레고리 펙은 죽으면서 영화의 이상주의도 함께 데려 갔다고 한탄했다.
펙은 영화에서 뿐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훌륭한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인간 모범생이었다. 펙의 팬들이 들으면 돌팔매 맞을 소리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펙의 여러 영화들을 볼 때마다 그가 너무나 모범 인간의 전시물 같아 도무지 매력을 느낄 수가 없었다. ‘참 잘 생긴 신사로구나’ 하고 생각은 했지만 애착이 가지는 않았다. 아마 그래서 나는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무덤덤했던 것 같다. 모범생보다는 불량기가 있는 인간이 매력은 더 있게 마련.
그렇게 좋기만 했던 펙이 나쁜 놈으로 나온 영화가 있다. ‘백주의 결투’와 ‘브라질서 온 소년들.’ ‘브라질서 온 소년들’(The Boys from Brazil·1978)에서 펙은 콧수염을 한 나치의 악마적인 의사 요젭 멩겔레로 나와 다시 한번 히틀러의 우량종 인간을 만들려고 시도한다.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고 있지만 나치 사냥꾼으로 나오는 로렌스 올리비에의 연기가 훌륭한 킬링 타임용이다.
그러나 펙이 악질 중에서도 진짜 악질로 나온 영화는 스펙태큘라한 섹시 웨스턴 ‘백주의 결투’(Duel in the Sun·1946)다. 예쁘게 생긴 새파랗게 젊은 펙이 대목장주(라이오넬 배리모어)의 사악한 차남으로 나와 형(조셉 카튼)마저 가차없이 쏴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 않는데 제작자 데이빗 O. 셀즈닉은 펙의 역을 “개자식 중에서도 최고로 나쁜 개자식”이라고 선전했었다. 그런데 펙은 생글생글 웃으며 온갖 못된 짓을 해 더 나쁜 놈처럼 보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만든 셀즈닉이 이 영화의 영광을 다시 한번 누려보자는 야심에서 만든 ‘백주의 결투’는 웨스턴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선정성과 육감성이 지글지글 끓어 비평가들로부터 ‘홍진의 욕정’이라는 별명을 얻었었다. 이 욕정의 대상이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멕시칸 혼혈녀 펄로 나온 제니퍼 존스(셀즈닉의 부인이었다)다. 구리빛 피부를 한 존스는 불같은 성질을 지닌 표독스럽고 예쁜 부엌데기로 나와 살쾡이처럼 굴면서 펙과 뜨끈뜨끈한 사랑을 불태워 교계로부터 격렬한 비난을 받았었다.
광야를 무대로 목장주와 철도 건설자간의 대결과 형제간의 3각 로맨스 그리고 총질과 정열적인 춤이 있는 멜로 드라마의 탈을 쓴 흥미진진한 웨스턴으로 총천연색이 눈이 따갑도록 아름답다. 절정은 펙과 존스가 서로를 총으로 쏴 죽이는 라스트 신. 태양이 이글대는 한낮 산꼭대기에서 자신의 총을 맞고 죽어 가는 펙을 향해 피를 흘리면서 사랑과 저주의 말을 내뱉으며 산을 기어올라가는 존스. 마침내 산꼭대기에 다다른 존스는 펙과 마지막 키스를 나누고 그의 품에 안긴 채 둘이 함께 죽는데(사진)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을 매우 변태적인 장면이다.
그레고리 펙은 할리웃의 마지막 신사였다. 누구도 그의 자리를 채우지 못할 것이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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