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으로는 좋으면서도 겉으로는 싫다고 표현할 때 사람들은 반어를 쓴다.
이 반어는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즐겨 쓰는 언어의 희롱이다.
연인들간의 깜찍한 반어놀이를 생각하면 언뜻 떠오르는 것이 게리 쿠퍼가 나오고 윌리엄 와일러가 감독한 흑백 웨스턴 명작 ‘서부인’(The Westerner·1940)이다. 서부 사나이 코울(쿠퍼)은 자기에게 교수형을 내린 ‘교수형 판사’라는 별명을 지닌 로이 빈(월터 브레난-이 판사는 실존했던 전설적 인물)에게 형 면제 대신 판사가 열렬히 사모하는 무대스타 릴리의 금발 타래를 잘라다 주겠다고 약속한다. 릴리를 알지도 못하는 코울은 릴리 대신 자기가 좋아하는 농장주의 예쁜 딸 도리스의 금발을 자르기로 작정한다.
도리스도 역시 코울을 좋아하기는 마찬가지. 가위를 든 코울이 도리스에게 다가가 당신을 늘 기억하기 위해 머리칼을 잘라 간직하고 싶다고 말한 뒤 금발을 싹둑 자르자마자 도리스가 “안돼요”하고 저항한다. 코울이 도리스의 금발을 자르는 가위질과 도리스의 거절의 절묘한 타이밍이 어찌나 귀엽고 로맨틱했던지.
이런 반어적 표현을 매우 흔히 쓰는 것이 사랑을 노래하는 팝송들이다. 레이 찰스가 “내 마음에서 이 사슬을 풀어 날 자유롭게 해주오/ 내 눈에서 이 눈물을 거두어 나로 하여금 보도록 해주오”라며 울고 부는 ‘테이크 디즈 체인스’나 테레사 브루어가 “렛 미 고, 렛 미 고, 렛 미 고 러버”하며 날 놔달라고 악을 쓰다시피 하는 ‘렛 미 고’는 모두 사슬도 풀지 말고 또 나도 놔주지 말라는 소리다.
그리고 카니 프랜시스가 자기를 사랑에 빠지게 만든 큐피드를 탓하는 ‘스튜피드 큐피드’와 내가 좋아하는 여가수 조 스태포드의 ‘유 빌롱 투 미’도 가사가 얘기하는 내용의 반대의 것을 강조하고 있는 노래들이다.
이 반어적 표현을 가장 직설적이요 노골적으로 쓰고 있는 사랑 노래가 아마도 ‘릴리스 미’(Release Me)일 것이다. 영국 태생의 엥겔버트 험퍼딩크(사진)가 1967년에 불러 전세계적으로 히트한 이 노래는 한국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모았었다. 내가 대학 4학년 때 여름에 라디오만 틀면 이 노래가 나오곤 했었다.
엥겔버트가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음성으로 천천히 읊조리듯이 부르는 노래의 멜로디나 가사가 감미롭고 감상적이어서 듣고 또 들어도 물리질 않았다. 이 컨트리 & 웨스턴풍의 노래는 지금 들어도 역시 좋다.
엥겔버트의 본래의 예명은 제리 도시였는데 그의 매니저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이름이라며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을 작곡한 독일 작곡가 엥겔버트 험퍼딩크의 이름을 빌려 개명한 것이다. 엥겔버트는 달콤하고 감상적인 노래를 잘 부르는 데다 남성미가 넘쳐흐르는 얼굴과 육체 때문에(언뜻 한국의 남진을 연상케 한다) 아우성치며 입었던 팬티를 무대 위로 내던지는 여성 팬들이 부대를 이루고 있다. 섹스 심벌이라는 점에서 영국 웨일즈 태생으로 ‘딜라일라’를 부른 탐 존스와 많이 닮았다. 그런데 엥겔버트가 최초로 취입한 ‘아일 네버 폴 인 러브 어겐’은 처음에는 실패했다가 후에 탐 존스가 불러 빅 히트했다.
엥겔버트는 ‘릴리스 미’ 이후 지금까지 40년간을 쉬지 않고 세계를 돌며 노래를 하고 있는데 이제까지 팔려나간 그의 레코드는 총 1억3,000만장. 가수 중 최대의 팬클럽을 가지고 있다고 뽐내는 엥겔버트의 귀에 익은 또 다른 노래들로는 ‘마지막 월츠’ ‘데어 고즈 마이 에브리싱’ ‘앰 아이 댓 이지 투 포겟’ ‘어 맨 위다웃 러브’ ‘콴도 콴도 콴도’ ‘윈터 월브 오브 러브’ 및 ‘애프터 더 러빈’ 등이 있다.
다음은 ‘릴리스 미’의 내용이다.
“제발 나를 놓아주오, 나를 보내주오/ 나는 당산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오/ 우리의 삶을 낭비하는 것은 죄라오/ 나를 놓아주어 내가 다시 사랑하게 해주오/ 님이여 나는 새 사랑을 찾았다오/ 나는 그녀가 늘 내 곁에 있길 바란다오/ 그녀의 입술은 따뜻하나 당신의 것은 차갑다오/ 나를 놓아주오, 마이 달링, 나를 보내주오/ 제발 나를 놓아주오/ 당신이 내게 매달린다는 것이 어리석은 일인 줄 당신은 모른단 말이오/ 거짓을 사는 것은 우리에게 고통만 가져다 줄 뿐이니/ 나를 놓아주오 내가 다시 사랑하게 해주오.” 놔달라고 사정하고 애걸하는데 진짜로 놔달라는 것인지 아니면 붙잡아 달라는 것인지 알쏭달쏭하다.
엥겔버트 험퍼딩크가 6월6~7일(하오 8시) 세리토스 공연센터 무대에 선다.
(800)300-4345.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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