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이 직업인 나는 거의 매일 같이 시사회에 참석한다. 때로는 하루에 두번 아침과 저녁 시사회에 가기도 한다. 연말에 기자가 속해 있는 LA 영화비평가협회(LAFCA)가 한 해의 각 부문 최우수작과 배우들을 선정할 때가 되면 각 영화사들이 각종 상을 노리고 내놓는 많은 영화들을 보느라 하루에 세차례씩 시사회에 참석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내게는 취재활동인 이 시사회에 참석하는 일이 자꾸만 번거로워지고 있다. 시사회 참석이 마치 국경검문소를 통과하는 것처럼 까다로운 일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시사회에 참석하는 일이 귀찮아지기 시작한 것은 9.11 테러 이후부터였다. 그때 테러리스트들이 할리웃의 메이저 스튜디오를 다음 파괴 목표로 지목하고 있다는 정보가 나오면서 스튜디오들은 보안조치를 강화하기 시작했었다.
폭스, 소니, 패라마운트 등 메이저들은 정문 입구를 통과하는 시사회 참석자들의 사진 있는 신분증을 일일이 RSVP 명단과 대조하고서야 들여 보내고 있다. 패라마운트는 요즘에는 아예 구내극장에서의 시사회를 중단했고 폭스 스튜디오에 들어가려면 콘크리트 장애물 사이를 마치 운전시험 치르는 사람처럼 통과해야 한다. 차 트렁크 조사는 모든 영화사들이 다 하는 일이고 대부분 메이저 영화사들은 기자들과 함께 시사회에 참석하는 손님의 이름과 신분증까지 확인하고 있다. 시사회 가는 일이 이렇게 번거로워지면서 처음에는 투덜대는 기자들도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는 습관이 되다시피 하면서 당연한 절차로 여겨지게끔 됐다.
그런데 한 두어달 전부터 이 까다로운 시사회 참석자에 대한 검사가 더 한층 번거로워지기 시작했다. 아예 짜증이 날 지경이다.
지난 3월18일 할리웃에 있는 아크라이트 극장에서 있은 WB의 공상과학 공포영화 ‘드림캐처’의 시사회에 갔을 때 일이다. 영화사 직원이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셀폰이 있으면 차에다 놓고 오라고 이른다. 시사회장 입구에 다다르니 사람들이 입장을 못하고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경비원들이 공항에서 하듯 전자봉으로 참석자들의 몸을 샅샅이 훑은 뒤에야 장내로 입장시켰다.
나는 그때까지 만해도 이런 야단스런 검사가 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테러리스트의 공격에 대비하는 행위인 줄 알았다. 이런 절차 때문에 시사회는 예상 시간보다 30여분이 지나서야 시작됐는데 시사회가 시작되기 전 영화사 직원이 나타나 “오늘의 까다로운 보안검색은 시사회에서 발생하는 해적판 촬영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알려준다.
각종 시사회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점점 캠코더에 의한 해적판 복사장이 되어 가면서 지금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미영화협회(MPAA)와 함께 이를 방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메이저들은 이를 위해 해적판 방지 전담직원까지 두고 있는데 지난해 5월 이후 지금까지 MPAA에 의해 적발된 극장상영 이전에 나온 해적판만 모두 28편.
이중에는 올해 니콜 키드만이 오스카 주연상을 탄 ‘세월’과 주윤발이 나온 ‘방탄승려’ 등이 있다. 지난 2일 개봉된 공상과학 액션영화 ‘X2’의 해외 개봉은 당초 미국보다 뒤늦게 할 예정이었으나 해적판 유통이 두려워 미국 개봉일과 동시에 선보였다.
메이저 중에서도 WB의 시사회 입장객 검문검색이 가장 까다롭다. 지난 8일 버뱅크의 스튜디오 내 스티븐 J. 로스극장서 있은 ‘메이트릭스’ 속편 시사회는 두 번의 신분증 조사와 두개의 금속탐지기 통과도 모자라 손목에 초록색 인식표 까지 차고서야 관람할 수 있 었다.
얼마전부터 메이저들은 시사회 초청장에 일종의 경고문(사진)을 첨부해 보내오고 있다. ‘시사회는 무허가 녹화를 막기 위해 감시됩니다. 시사회 참석은 어떤 형태의 녹음 및 녹화기도 장내에 들여오지 않겠다는 것과 여러분의 몸과 소지품에 대한 검사에 응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레코딩을 하다 적발되면 기계는 몰수되고 당사자는 극장에서 퇴장될 것입니다. 그리고 형사 및 민사소추의 가능성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 글에서 말한 시사회중 감시라는 것은 영화상영 내내 경비원이 적외선 망원경으로 관객들을 감시하는 것. 영화를 보면서도 이 사람 때문에 뒷머리가 묵직해지고 여간 신경쓰여지는 것이 아니다. 비평을 위해 영화 보는 일이 마치 교도소 감방 내 죄수들의 영화 감상처럼 돼버렸다. 영화 보기 힘드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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