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유명한 교향악단들의 이름을 떠올리면 거기에 반드시 따라 붙는 지휘자들의 이름이 있다. 교향악단들은 긴 역사를 지니면서 여러 명의 지휘자들의 손길을 거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한 교향악단이 유난히 한두 명의 지휘자에 의해 음악성과 연주 기교가 갈고 닦아져 세계 굴지의 앙상블로 자리 잡으면서 이 교향악단과 지휘자의 이름이 동의어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하면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카라얀이 비엔나 필하면 역시 푸르트벵글러와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이름이 생각나게 마련. 뉴욕 필은 토스카니니와 번스타인, 보스턴 심포니는 세르게 쿠세비츠키와 샤를르 문쉬와 세이지 오자와, 시카고 심포니는 프리츠 라이너와 조지 솔티, 피츠버그 심포니는 역시 라이너와 윌리엄 스타인버그 그리고 클리블랜드 심포니하면 조지 셀의 이름을 떠올리게 된다. 오토 클렘페러와 주빈 메이타 및 칼로 마리아 줄리아니 같은 저명한 지휘자들에 의해 키워진 LA 필은 현 상임지휘자인 핀란드 태생의 에사-페카 살로넨에 의해 이제 미 동부의 5대 교향악단과 어깨를 견줄 만한 앙상블로 성장했다.
1900년에 창립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지휘자 유진 오르만디의 분신이라 불려질 만큼 둘은 불가분의 관계다. 이 교향악단은 한 세기가 넘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6명의 지휘자가 이끌어왔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일사불란한 연주는 이런 안정된 지휘자와의 오랜 공생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 해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로 하여금 음악적 탁월성을 배양시켜 미 클래시칼 음악계에 명함을 내밀게 한 사람은 화려한 스타일의 맨손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우스키다. 그는 1912년부터 1938년까지 이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있으면서 ‘필라델피아 사운드(Phila-delphia Sound)’를 창조해 낸 사람이다. 그가 신생아나 다름없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음과 기량을 닦아 성숙된 앙상블로 키워놓은 사람이라면 오르만디는 이 같은 소질을 더욱 넓히고 세련미로 가꾸어 현재 이 교향악단이 갖고 있는 자기만의 독특한 예술성과 음악적 음성을 마련해 준 지휘자다.
1938년부터 1980년까지 이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였던 오르만디(헝가리 태생의 그는 1921년 미국으로 이주할 때 타고 온 증기선 노르만디의 이름을 변형해 자기 성을 만들었다)는 스토코우스키가 만들어낸 ‘필라델피아 사운드’를 정련시켜 거기에 품위를 갖추어준 사람이다.
‘필라델피아 사운드’는 맑은 음과 뛰어난 기교 그리고 따뜻한 음조와 정확한 타이밍이 결합된 연주를 일컫는데 특히 현악 파트에 강조를 두고 있다. 오르만디가 바이얼리니스트 출신이었기 때문인데 그는 한 인터뷰에서 “필라델피아 사운드는 바로 나”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오르만디는 1985년 85세로 사망할 때까지 계관지휘자로 있으면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평생을 같이했다.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라프마니노프가 가장 좋아한 교향악단 중 하나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였다. 그는 스토코우스키도 좋아했지만 특별히 자기 음악 해석에 뛰어난 오르만디와의 협연을 즐겼다. 라프마니노프의 마지막 작품 ‘교향적 무곡’은 오르만디에게 바친 곡이다. 라프마니노프가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스토코우스키 지휘)과 제3번(오르만디 지휘)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CD가 RCA에 의해 나와 있다.
오르만디는 바톤을 리카르도 무티(1981-1992)에게 물려줬고 무티는 1993년 이것을 독일 태생의 볼프강 자발리쉬에게 넘겼다. 현존하는 가장 존경받는 노대가 중의 하나인 자발리쉬(79)는 독일의 음악적 전통을 지키는 대표적 인물. 그는 특히 슈만을 좋아하고 그의 최고의 해석자로 알려졌다. 자발리쉬는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바톤을 역시 독일 태생의 크리스토프 에센바하에게 넘겨 준다.
자발리쉬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고별연주가 17일 하오 8시 세리토스 공연 센터(800-300-4345)서 열린다. 프로그램은 슈만의 교향곡 제2번과 차이코프스키의 ‘비창’교 향곡.
한편 자발리쉬가 여러 차례 객원지휘를 했던 오랜 역사를 지닌 독일 바바리안(Bavarian)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로린 마젤(현 뉴욕필 상임지휘자)의 지휘로 14일(올 브람스 프로그램)과 15일(브람스, 드뷔시, 슈트라우스) 하오 8시 오렌지카운티 공연센터(714-556-2787)서 연주한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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