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군인들이 가장 기다리는 것이 편지다. 군인들에게 편지는 외부세계와의 유일한 접촉수단으로 가족과 친구의 편지는 물론이요 학생들이 억지로 쓴 위문편지마저 반갑기 짝이 없는 선물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기쁨을 주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온 편지. 이 사랑의 글은 외롭고 고된 군대생활을 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자기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일 수도 있다. 자유당 시절 서울 법대생이었던 최모 졸병이 연애편지 때문에 상급자를 사살했던 사건은 이 글이 군인에게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경우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USA투데이는 전장의 군인들이 고국의 가족 및 연인들과 나눈 서신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 글들을 읽어보면 가슴이 뭉클해지도록 아름답고 솔직한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지에 던져진 사람들의 진실과 순정, 용기와 관용이 꾸밈없이 드러나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다음은 최근에 보도된 군인들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결혼 5년째인 매튜 케네디 육군대위(27)가 2월25일 아내 조해나에게 보낸 편지.
“사랑하는 조해나, 나의 아름다운 아내에게. 나의 눈에 비치는 당신의 얼굴, 나의 귀에 들리는 당신의 음성 그리고 나의 피부에 와 닿는 당신의 감촉은 얼마나 다정한 것인지 모른다오. 당신을 단 하루만이라도 더 내 곁에 둘 수 있다면 난 무엇이든 바치겠오. 나는 종종 우리의 처음 데이트를 회상하면서 당신의 마음이 나의 영혼을 달래고 또 나의 가슴에 사랑의 불길을 당겨주는 것을 느끼곤 하오. 언젠가 우리가 재결합하는 날 나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연인인 당신과 하나가 될 것이오.” 영원히 사랑하오. 맷.
4세난 아들 켄트가 있는 H. 케네스 힐스 해병하사(21)가 3월3일 아내 레베카에게 보낸 편지.
“지극히 사랑하는 베카에게. 당신과 켄트는 잘 있는지. 나는 잘 있어. 우리는 어제 밤 3일간의 작전 끝에 귀대했어. 당신이 몹시 보고파. 당신은 늘 내 마음에 있어. 나는 당신과 켄트를 그 무엇보다 더 사랑해. 집에 갈 날만 기다리지. 언제 귀국할지 모른다는 것이 이곳 생활을 더욱 힘들게 만들어. 나는 당신을 몹시 사랑하고 다시는 당신 곁을 떠나길 원치 않아. 당신과 켄트가 너무나 보고파. 나중에 또 쓸게. 사랑해.” 내 마음 다해 케네스.
그러나 이들의 얘기는 튼튼한 사랑의 얘기이고 전쟁에 나갔거나 군에 입대한 남자들에게 느닷없이 그들의 여인들로부터 헤어지자고 요구하는 편지가 날아드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이별장을 ‘디어 존 레터’(Dear John Letter)라고 한다. ‘디어 존 레터’는 보통 여자가 남자에게 절교를 선언하는 글을 일컫지만 특히 전선에 있는 군인에게 전달된 절교편지를 일컫는다.
존이라는 이름이 쓰여진 까닭이 전선에서 사랑하는 여인으로부터 이별장을 받은 남자의 이름이 존이었는지 아니면 흔한 남자의 이름인 존을 빌려 모든 남자를 대신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디어 존 레터’의 유래는 2차대전 때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베트남전 참전 군인은 적의 총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이 편지였다고 고백했는데 당시 일주일이 멀다하고 많은 전우들이 이런 글을 받아 편지가 배달되는 순간을 ‘디어 존 소집시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내가 군에 갈 때만해도 3년 기다리는 여자 없다는 말이 금언이었다. 나는 강원도 해안서 근무했는데 그때 이 ‘디어 존 레터’를 받고 수류탄 자살한 전우의 기억이 지금도 가끔 난다.
왕년의 유명 컨트리 싱어 스키터 데이비스는 ‘디어 존 레터’를 불러 빅히트를 했었다. “디어 존/ 이 편지 쓰기가 정말 싫군요/ 디어 존/ 오늘밤 당신에게 고백해야해요/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은 죽어버렸어요 잔디의 풀이 죽듯이/그리고 오늘 밤 저는 다른 사람과 결혼해요/디어 존.”
이어 데이비스의 노래를 배경으로 편지 받은 남자의 낭송이 이어진다. “나는 해외전투에 나가 있었지/우체부가 내게 편지를 전달했을 때 나는 너무나 행복했었어/ 중략/ 편지는 디어 존으로 시작됐어/ 내 사진 돌려주지 않으시겠어요/제 남편이 그걸 원해요/제가 누구와 결혼한다고 말해도 당신은 크게 마음 쓰지 마세요/ 내 사랑 사라졌다는 것 당신께 말하기가 가슴 아프나/오늘 밤 저는 당신 동생과 결혼해요.”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은 것이 여자의 마음이라더니 이번 짧은 전쟁에서도 ‘디어 존 레터’를 받은 군인들이 있을까.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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