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보수파인 독실한 가톨릭 신자 멜 깁슨이 지금 로마의 유서 깊은 치네치타 스튜디오에서 예수의 삶을 다룬 영화 ‘예수 수난’(The Passion)을 감독하고 있다. 내년 부활절 개봉 예정으로 찍고 있는 이 영화는 깁슨의 10년 숙원사업으로 2,500만달러의 제작비도 깁슨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날 하루의 얘기로 예수역은 역시 가톨릭 신자인 짐 캐비즐(사진·’몬테 크리스토 백작’)이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역은 터질 듯 육감적인 이탈리아 배우 모니카 벨루치(현재 상영중인 ‘태양의 눈물’과 ‘돌이킬 수 없는’에 주연)가 각기 맡았다. 영화의 대사는 사어가 된 라틴어와 예수 생존 시 셈족이 쓰던 아람어인데 자막은 안 쓸 예정. 예수에게 가해지는 폭력도 끔찍할 정도로 노골적으로 묘사, 가급적 사실성을 살린다고.
예수의 삶을 비롯한 성경 내용은 영화 발아기부터 스크린에 옮겨졌다. 지금까지 나온 예수 영화만도 100편이 넘는데 예수역을 맡았던 유명 배우들로는 제프리 헌터, 막스 본 시도, 윌렘 다포 등이 있다(‘지배계급’에서 자기를 예수로 생각하는 피터 오툴도 예수라면 예수).
성경이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된 데는 그 내용이 기적과 스펙터클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또 성경은 형제살인, 간통, 전쟁, 부자 갈등, 탐욕, 질투, 음모, 배신 그리고 구원 등 드라마의 요소를 모두 갖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쓰여져 있다. 특히 성경에는 화끈한 섹스 스토리가 적지 않은데 하느님이 선택한 영웅들이 여색에 탐닉했다가 눈물을 흘리며 회개, 구원받는 얘기처럼 극적인 일도 없겠다.
섹시한 성경 영화의 효시는 아마도 무성영화 시대의 요부 테다 바라가 나온 ‘살로메’(1918)일 것이다. 세례 요한의 목을 날려보낸 이 요부의 얘기는 1953년 리타 헤이워드 주연으로 리메이크 됐는데 나는 꼬마 때인데도 그녀가 추는 ‘일곱 베일의 춤‘을 보고 넋을 잃었었다. 네로의 얘기인 ‘십자가의 징표’(1932)에서는 네로의 부인 포페아(클로뎃 콜베르)가 알몸으로 당나귀 젖으로 목욕을 했고 ‘삼손과 데릴라’(1949)에서는 천하장사 삼손(빅터 마추어)이 빨강머리 데릴라(헤디 라마)의 요염기에 녹다운 돼 멸망의 길로 갔다. 자기 부하를 사지로 보낸 뒤 그의 아내를 취한 ‘다윗과 바스세바’(1951·그레고리 펙과 수전 헤이워드)의 얘기는 간통 스토리의 대표. 그리고 돌아온 탕자의 얘기인 ‘탕아’(1955)의 유혹녀 라나 터너에게 영육을 바치지 않을 남자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무성영화 시대를 제외하고 성경 영화가 붐을 이뤘던 때는 1950년대. ‘쿼바디스’ 최초의 시네마스코프 영화 ‘성의’와 이것의 속편 ‘데미트리어스와 검투사들,’ 폴 뉴만의 데뷔작 ‘은배’ ‘십계’ ‘벤-허’ 및 ‘위대한 어부’ 등이 다 이때 작품들. 스펙터클한 내용이 막 발명된 넓은 시네마스코프 화면에 잘 어울렸고 또 미국 사람들은 구원과 기적의 얘기에서 냉전시대의 핵 공포를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성경 영화의 제 1인자는 세실 B. 드밀. 그는 두 무성영화 ‘십계’와 ‘왕중 왕’을 비롯해 ‘십자가의 징표’ ‘삼손과 데릴라’ 및 ‘십계’를 만들었다. ‘십계’야말로 쇼맨 드밀의 쇼맨십이 만개한 영화다. 1960년대 들어 ‘폼페이 최후의 날’ ‘왕중 왕’ ‘바라바스’ 및 ‘가장 위대한 이야기’ 등이 초반에 만들어진 뒤 한때 잠잠하던 성경 영화는 70년대 초반 들어 당시 사회성을 반영하면서 ‘갓스펠’과 ‘예수 그리스도 수퍼스타’ 같은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특이한 것은 70년대 여러 편의 사탄 영화가 만들어진 것. ‘로즈메리의 아기’(1968)로부터 시작해 ‘엑소시스트’와 ‘오멘’ 등이 그런 영화들.
80년대 가장 큰 물의를 일으킨 성경 영화는 마틴 스코르세지의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1988).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동침해 기독교계의 강력한 반발을 받았다. 장-뤽 고다르의 ‘헤일 메리’(1985)에서는 주유소 종업원 마리아가 택시 운전사 애인 조셉의 아기를 임신해 교황의 비난까지 받았다.
할리웃의 종교 영화가 흥미위주의 센세이셔널한 것들인 반면 유럽의 종교적인 영화는 심오한 것들이 많다. 막시스트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마태복음’과 칼 드라이어의 ‘말’ 잉그마르 버그만의 믿음 3부작 ‘거울 속으로 어둡게’ ‘겨울 빛’ 및 ‘침묵’ 그리고 로베르 브레송의 ‘시골 신부의 일기’ 및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안드레이 루블레프’등은 모두 훌륭한 영적인 영화들이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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