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시사회서 LA 영화비평가협회 동료회원 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내게 “그래 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어왔다. 나는 “부전자전이라고 아들 부시가 전쟁이 하고파 몸살이 난 것 같다”면서 “도대체 대이라크 전쟁의 명분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윌은 “미국은 소련 공산체제 붕괴 후 왕년에 세계를 혼자 말아먹다시피 한 영국처럼 제국주의화 하고 있다”면서 “대이라크 전쟁은 중동에 혼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패권주의적 발상의 결과”라며 혀를 찼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왕년의 대영제국이 지금은 미국의 아우국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은 사사건건 부시편인데 이에 화가 난 영국 록가수 조지 마이클은 블레어가 미국의 푸들이라며 ‘개를 쏴라’라는 노래까지 지어 불렀다.
나는 요즘 TV나 라디오에서 부시의 모습이 나타나거나 음성이 들리면 그걸 꺼버리곤 한다. 그런데 나의 또 다른 동료회원 해리엣의 남편 샘은 TV에 부시 등 호전파들이 나오면 화면에다 대고 반박을 한다. 샘은 다혈질인 남미 출신으로 앤타이 기질이 강한 사람인데 우리는 만나면 스카치에 취해 부시를 성토한다. 부시는 여차하면 북한도 공격하겠다니 미국에 사는 한인들의 딜레마가 벌써부터 아이러니컬 해진다.
요즘은 어디를 가나 화제가 온통 전쟁. 버몬트에 있는 나의 단골 이발소 여주인은 지금 해병 특공대로 중동에 파견된 23세짜리 아들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 그는 “아들은 애국심에 불타 있지만 어머니인 나로선 그저 아들의 무사귀국을 빌 뿐”이라고 말했다. 나는 머리를 깎으며 그의 전쟁에 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가위질을 하던 손을 멈추고 “남의 제사상에 밤 놔라 대추 놔라하며 온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하려 드니 누가 미국을 좋아하겠느냐”고 흥분한다.
미국의 큰 착각은 스스로를 정의의 십자군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전쟁을 한다고 주장하지만 막상 국익과 별 관계가 없는 보스니아나 르완다의 인종청소 만행에는 나 몰라라 하는 태도를 보였었다. 그러니까 대이라크 전쟁도 석유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요즘 미국은 영화 ‘O.K. 목장의 결투’의 주인공이었던 은광 붐타운 툼스톤의 보안관 와이엇 어프를 연상케 한다. 타고난 건맨이었던 어프는 툼스톤의 무법자들을 처치하고 이 마을에 질서를 가져오긴 했지만 사실 그는 킬러였다. 질서와 정의구현을 위해서라면 살상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인가. 현 미국의 대외정책 사고방식은 총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던 서부시대 건맨의 그것과 별로 다른 점이 없다.
전쟁이 나면 쓰러질 것은 많은 젊은 생명들이다. 베트남전 때도 그랬듯이 전선에서 싸우는 대다수의 군인들은 틴에이저들과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다(사진). 그들은 과연 왜 싸워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고나 있을까. 최근 타임지의 수필은 중동파견 해병부대가 있는 노스캐롤라이나 잭슨빌의 해병들의 현황에 대해 “대부분은 젊은 나이의 해병들은 두려움 속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썼다. 글은 이어 해병들은 육신이 두개로 떨어져나갈 것에 대비 몸에 이름과 계급 및 군번 문신을 새기고 있으며 고백성사 하는 해병들이 성당에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덧붙였다.
해병들은 또 유서작성을 한 뒤 창녀들을 찾아가 위안을 구하면서 그녀들이 기다려줄 사람이라도 된다는 듯이 인식표를 남기고 떠난다고 적었다. 글을 읽는 내 마음이 참담했다.
전쟁은 폭력의 말기 암 형태로 인류에 대한 범죄행위다. 호전파들의 애국 판매행위에 현혹된 순진한 젊은이들의 무의미한 죽음을 그린 걸작 반전영화가 ‘서부전선 이상 없다’(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1930)이다. 이상적 독일 청년이 교사의 애국 강연에 들떠 1차 대전에 참전, 전쟁의 비참을 경험한 뒤 참호 밖 나비를 잡으려다 저격병의 총탄에 맞아 숨지는 내용으로 전쟁에 대한 통렬한 기소다.
전쟁이 나면 군인들은 무덤으로 갈 것이다. 킹스톤 트리오의 노래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가 요즘처럼 심금을 울릴 때도 없는 것 같다.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오랜 시간이 흘러갔네/젊은 여인들이 모두 꺾어갔네/그들은 언제나 깨달을 것인가/젊은 여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모두들 젊은 남자들에게 갔네/젊은 남자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모두들 군인이 되었네/군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모두들 무덤으로 갔네/무덤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모두들 꽃이 되었네.’ 인간은 정말 언제나 깨달을 것인가.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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