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자전적 영화 ‘피아니스트’로 올해 오스카 감독상 후보에 오른 폴란드계 프랑스인 로만 폴랜스키(69·사진)의 영화는 보는 사람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스트레스 풀려고 영화를 보러 갔다가 오히려 속병 들어 나오기 십상이다.
폴랜스키가 인간 심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장인이 된 데는 그의 소년시절의 악몽 같은 경험이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폴랜스키가 7세 때 그의 부모는 나치 수용소에 감금됐고 어머니는 그곳에서 사망했다. 폴랜스키는 크라코우의 게토를 탈출, 시골을 전전하며 가톨릭 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생존했는데 이 과정서 여러 참혹한 현상들을 목격했고 또 자신은 독일 군인들의 사격놀이의 표적이 되기도 했었다. 그의 작품이 공포와 집념과 소외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이해할 만도 하다.
폴랜스키의 이런 성향은 그를 대뜸 국제적 감독으로 올려놓은 데뷔작 ‘물 속의 칼’(1962)에서부터 발견케 된다. 히치 하이커 대학생과 그를 주말 요트항해에 동반한 부부간에 발생하는 긴장감을 그린 뛰어난 심리 드라마인데 마음을 아주 불안하게 만든다. 내가 좋아하는 폴랜스키의 두 영화 ‘혐오’(1965)와 ‘입주자’(1976)도 모두 충격적이요 괴이한 심리극이다.
‘혐오’는 성적 욕망을 억제하던 여인(카트린 드뇌브)의 정신적 붕괴를 그렸는데 보고 나서 며칠동안 께름칙한 기분이 든 영화다. ‘입주자’는 전 입주자가 자살한 아파트에 세든 심약한 남자(폴랜스키)의 얘기로 카프카의 작품 분위기가 강하다. 미아 패로우가 나온 현대판 마녀 영화 ‘로즈메리의 아기’(1968)도 역시 심리공포 스릴러.
그러고 보니 나치 하 크라코우 게토를 탈출, 타인의 선의에 의지해 숨어살며 생존했던 폴란드인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브 스필만의 실화인 ‘피아니스트’도 일종의 공포 영화다. 나는 너무나 감정이 배제돼 큰 감동을 못 느꼈으나 이 영화는 칸영화제서 대상을 받았고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도 올랐다. 그의 최고작으로 평가받는 ‘차이나타운’(1974)의 예술 감각을 되찾은 영화라고 절찬을 받은 ‘피아니스트’는 과연 폴랜스키에게 오스카상을 안겨다 줄 것인가. 현재로서 폴랜스키는 로브 마샬(‘시카고’)과 스티븐 달드리(‘세월’)에 뒤지고 있는 상태.
폴랜스키는 설사 최후의 승자가 된다 해도 할리웃의 코닥극장 무대에 설 수 없는 신세다. 그는 미국법을 어기고 국외로 달아난 도망자이기 때문이다. 폴랜스키는 1977년 43세 때 잭 니콜슨 집 자쿠지에서 배우 지망생인 13세짜리 소녀에게 약물과 술을 먹인 뒤 섹스를 해 법정에 섰었다. 1978년 선고 공판일 점심시간에 프랑스로 도주한 폴랜스키는 그 뒤로 미국은 물론이요 붙잡혀 미국으로 이송될 것이 두려워 영국과 캐나다 여행도 하지 않고 있다.
폴랜스키가 오스카 감독상 후보에 오르자 할리웃에서는 다시 한 번 예술과 도덕에 대한 문제가 거론되면서 폴랜스키를 용서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동 성희롱에 대한 혐오감이 팽배한 요즘 미국 분위기로 봐 폴랜스키 사면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의 사건을 담당한 검찰측도 실정법을 어기고 해외 도주한 사람을 어떻게 처벌 안 할 수가 있느냐는 입장.
폴랜스키와 틴에이저의 섹스스토리는 해마다 오스카 철이 되면 대두되곤 하는데 할리웃에서 유난히 틴에이저 소녀를 좋아해 언론의 질타를 받았던 사람이 찰리 채플린이다. 채플린은 모두 4번 결혼했는데 부인들은 각기 16세, 18세 및 19세 였다.
폴랜스키는 할리웃에서 활동할 때 부인이 참혹한 죽음을 당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1969년 8월 폴랜스키의 아내이자 배우로 임신 8개월 째였던 샤론 테이트(26)와 그의 친구 7명이 ‘맨슨 가족’에 의해 난자를 당해 살해됐다. 폴랜스키는 후에 영화 ‘맥베스’(1971)에서 아내의 죽음을 연상케 하는 유혈 낭자한 폭력을 사용했다.
공포와 집념 및 소외감과 함께 폭력과 인간 마음의 탈선 특히 성적인 것의 일탈이 폴랜스키의 작품 특성인데 그는 기술적으로도 탁월한 감독이다. 풍자 만화잡지 M.A.D.의 쥐 얼굴을 한 주인공을 닮은 폴랜스키는 작달막한 키에 귀재형. ‘차이나타운’에서 잭나이프로 잭 니콜슨의 귀를 찢어 놓던 새디스틱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는 지금 파리에서 자기보다 키가 훨씬 더 큰 아름다운 육체파 여배우 에마뉘엘 세녜와 잘 살고 있다. 폴랜스키의 할리웃 컴백이 이뤄진다해도 그가 과연 블록버스터 일변도의 요즘 할리웃 풍토에 얼마나 잘 적응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폴랜스키가 유형자가 됨으로써 할리웃은 뛰어난 영화인을 하나 잃은 셈 이다.
박흥진<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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