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피아니스트
지난주에 영화를 한 편 봤다. 제목은 ‘더 피아니스트’. 실존했던 폴랜드의 유대계 피아니스트 슈필만이 나치의 통치하에 지옥같은 5년의 세월을 견뎌온 이야기였다.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다룬 쉰들러스 리스트와 비슷한 내용의 영화이지만, 훨씬 더 잔인한 장면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바람에 마치 다큐멘터리와 같은 느낌을 주었으며, 언제 어떤 유대인이 아무런 이유없이 재수없게 죽음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는 긴장감 때문에 한시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 영화였다.
주인공인 피아니스트 슈필만이 전국으로 방송되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쇼팽의 녹턴을 연주하는 장면이 영화의 시작이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살아 남은 슈필만이 쇼팽의 폴로네이즈 브릴리안테를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것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영화 중간에, 슈필만이 지인의 도움으로 한 비어있는 아파트에 피신하여 얼마간 살게 되는데, 마침 그 아파트에는 작은 피아노가 한 대 있었다. 그 곳으로 인도하고 돌아간 지인은 절대로 소리를 내지 말고 조용히 있어야 한다고 당부를 하고 갔으며, 주변에 독일인들이 득실대는 그 곳에서 인기척을 냈다가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혼자 남게 된 슈필만은 하지만 피아노 뚜껑을 천천히 열고 그 앞에 앉는다. 그의 귀에 들리는 쇼팽 폴로네이즈 브릴리안테. 그는 건반을 누르지 못하고 건반 위로 그 곡을 머리 속에서 들려오는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연주한다. 가슴이 찡하게 안타까운 장면이다.
목욕도 못하고 면도도 못한 채 영양 실조로 물과 음식을 찾아 헤매이며 숨어사는 생활을 하던 중 그는 한 독일 장교에게 발각이 되고 만다. 흡사 동물과 같은 모습의 그에게 독일 장교는 너는 누구냐. 뭐하는 놈이냐고 묻고, 그는 나는 피아니스트였습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독일 장교는 옆에 놓인 피아노를 가리키며 그에게 피아노를 쳐보라고 하고, 그는 비척비척 피아노로 걸어가 앉아서 쇼팽의 발라드 1번 사단조를 열정적으로 연주한다. 중간에 아플 정도로 아름다운 멜로디가 나오는 부분을 비롯해서 반 이상 편집되었지만, 첫부분과 피날레 부분이 연주되는 것을 거의 다 보여주었다.
폴란드 태생 작곡가 쇼팽은 4개의 발라드를 작곡했는데, 모두 폴란드 시인 미키에비치(Mickiewicz)의 글을 토대로 쓴 곡들이다.
그 중 제1번은 한 군인이 전쟁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인데, 지칠대로 지치고 심신이 병폐한 군인이 한 손에 술병을 들고 취해서 비틀거리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그 시작이다.
술취한 사람이 걷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오른손 왼손이 같은 음을 치면서 낮은 음부터 올라가는데, 올라가다가 비틀거리는 것처럼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것을 반복한다.
그 후 비통한 걸음걸이가 계속되고, 감정이 격해졌다가 과거의 아름다운 날들을 회상하는 멜로디가 멀리서 들려오듯 흘러나오는 곡이다.
하지만 곡의 마지막 피날레에서는 모든 것들이 다 파괴되어 되돌려질 수 없음을 표현하듯 슬픈 종말을 절규하며 곡이 끝난다.
지치고 슬프고 분노한 슈필만의 마음이 그 곡을 치는 내내 전해져와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그의 연주. 독일 장교의 총알 한 방에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상황에서 목숨을 건 연주. 절박한 상황과 그에 걸맞는 선곡으로 인해 그의 연주는 너무도 감동스러웠다.
3년을 굶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열정적인 연주에 독일 장교도 감동을 받고 그에게 밥과 물을 몰래 제공해주며 그를 살려준다.
한 피아니스트를 중심으로 풀어내는 전쟁과 학살에 대한 이야기는, 피아니스트가 등장하지 않는 전쟁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게 내게 와 닿았다.
전쟁으로 인해 혹시라도 그의 아까운 재능이 그냥 사라져 버리지나 않을까 마음 졸이며 분노하며 영화에 빨려 들어갈 수 있었다.
피아노를 치고 싶어하는 그의 마음이, 먹고살기 위해 싸구려 장소에서 원하지 않는 피아노를 치며 모멸감을 겪는 그의 심정이 그대로 전달되어서 마음이 아팠다. 전쟁으로 인해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된다면.. 하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전쟁과 무력행사를 원하는 자들이, 인간의 목숨과 권리에 대한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한 자들이, 다른 민족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 한번쯤 보면 좋을 영화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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