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뉴욕의 연인 아파트에서 39세로 요절한 존 가필드는 세상에 대해 도전적인 태도를 지닌 서민대중을 위한 배우였다. 그는 40년대 할리웃을 풍미했던 가장 뛰어난 연기파로 그에게는 언제나 ‘터프’라는 형용사가 따라다녔다.
가필드의 사망원인은 심장마비이지만 그를 진짜로 죽인 것은 미하원 반미행위 조사위의 마녀사냥이었다. 1951년 조사위 청문회에서 묵비권을 행사하면서 그의 영화인생은 끝이 났는데 가필드는 당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가장 인기 있는 스타였다.
클래식 영화만 방영하는 TCM이 제작한 ‘존 가필드 스토리’를 보면 미의회의 공산당 때려잡기의 횡포를 새삼 실감케 된다. 참으로 매력적이요 아까운 배우가 요절했구나 하는 아쉬움이 큰데 그가 주연한 ‘악의 힘’(1948)을 감독한 에이브래햄 폴론스키도 역시 블랙리스트에 올랐었다. 몇년 전 기자가 속한 LA 영화비평가협회가 폴론스키에게 생애업적상을 주었을 때 그는 블랙리스트의 한이 지금도 가슴에 맺혀 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는 그 뒤 사망했다.
터질 듯한 에너지와 감정적 힘을 억제해 일촉즉발의 위기감을 느끼게 하는 가필드는 타고난 배우였다. 그는 메소드액팅파들인 몬티 클리프트, 제임스 딘, 말론 브랜도, 로버트 드니로 및 알 파치노의 길잡이였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참담하게 홀대받고 잊혀지고 옆으로 치워진 상태”라고 가필드의 딸 줄리는 한탄했다.
가필드는 1913년 가난한 러시안 유대계 부모 하에서 뉴욕의 로어이스트사이드서 태어났다. 본명은 제이콥 줄리어스 가핑클. 존 가필드라는 이름은 그가 후에 WB와 계약했을 때 영화사 사장 잭 워너가 지어준 것. 어머니가 일찍 사망하면서 아버지를 싫어했던 가필드는 거리 싸움꾼으로 성장했다. 그는 문제아 학교인 PS45 고교에 입학, 이 학교 교장의 배려로 권투와 연기를 배우면서 새로운 삶을 찾게 된다.
브로드웨이의 메소드액팅의 산실인 그룹 디어터의 최연소 단원이었던 그는 1938년 신파극 ‘네 딸’로 스크린에 데뷔하면서 대뜸 스타로 부상한다. 스크린 반항아의 탄생으로 그는 이 영화로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는 이 작품에서 그의 연기의 전형이 된 거칠면서도 상철받기 쉽고 또 건방지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당초 WB는 가필드를 제임스 캐그니와 에드워드 G. 로빈슨의 후계자로 키우려고 그를 여러 B무비에 출연시키며 갱스터, 범죄자 노릇을 하게 했다. 그는 이에 반발, 정직처분까지 받았는데 WB가 MGM에 대여해 줘 나온 ‘우체부는 항상 벨을 두번 누른다’(1946·사진)로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요부 라나 터너의 유혹에 넘어가 그녀의 나이먹은 남편을 살해하는 욕정과 살인의 필름 느와르로 내가 가필드의 연기에 크게 감동한 것도 이 영화다.
가필드는 같은 해 조운 크로포드와 공연한 로맨틱 드라마 ‘유모레스크’에서 바이얼리니스트로 나왔다. 비록 진짜 연주는 아이작 스턴이 했지만 가필드의 격정적인 연기는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다음해 권투 영화 ‘육체와 영혼’으로 다시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는데 그는 이 영화서 상대역으로 흑인배우 고용을 성사시킨 진보적인 사람이었다. 1948년 ‘악의 힘’에서는 부패한 변호사로 나와 폭발적이면서도 민감한 연기를 보여줬다.
그의 대표작들인 이 영화들을 보면 가필드가 얼마나 다채로운 배우였던가를 깨닫게 된다. 강인하면서 부드럽고 또 흡인력 강한 섹스 어필과 매력이 온 몸에서 즙처럼 스며 나오는데 특히 그의 야릇한 입가의 미소가 수수께끼처럼 아름답다.
심장이 약해 종군을 못한 가필드의 또 다른 걸작이 ‘해병의 자랑’(1945). 가필드는 입대를 못한 대신 해외미군 위문공연에 제일 먼저 참가한 애국자로 정부 표창까지 받았는데 그런 사람이 공산주의 동조자(그의 아내 로버타가 공산당원이었다)로 낙인 찍혀 생의 마감이 재촉되었다는 것은 실로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열기와 냉기 그리고 고뇌하는 내면과 함께 달콤하고 섬세하며 부드러운 면을 함께 지녔던 가필드는 남녀 팬들 모두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 그와 공연했던 베테런 여배우 리 그랜트는 “가필드 주위에는 항상 여자들이 떼를 지어 모여들었다”면서 “그가 어느 날 내게 은근짜를 놓았을 때 그것에 예스를 못한 것이 지금도 유감”이라며 가필드를 그리워했다.
가필드의 장례식에는 1만명의 팬들이 운집했었다. TCM은 2월 한달간 가필드의 영화들을 방영한다.
박흥진<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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