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영화에 비하면 할리웃 영화는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할리웃을 꿈을 파는 공장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이런 비현실성은 모든 장르의 할리웃 영화에 통용되지만 특히 남용되고 있는 것이 로맨틱 코미디다. 요즘 할리웃이 만드는 로맨틱 코미디는 전부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마를 탄 프린스 차밍이 나타나 여주인공을 번쩍 들어올려 말 위에 태우고 떠나 둘이 함께 내내 행복하게 살았노라 하는 식으로 끝이 난다.
최근에 나온 몇 편의 로맨틱 코미디도 이런 사탕발림식의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그 중에서도 그 내용이 너무나 터무니없어 입맛이 몹시 썼던 영화가 ‘맨해턴의 하녀’다. 제니퍼 로페스가 뉴욕 고급 호텔의 하녀로 나와 돈 많고 잘 생긴 정치가(레이프 화인스)의 가슴을 차지해 내내 행복하게 살았다는 진짜 신데렐라 스토리다. 그런데 화인스는 로페스가 투숙객의 고급 드레스를 몰래 입어 본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는 과연 하녀복을 입은 로페스를 보고도 그녀에게 마음이 끌렸을까. 아니올시다.
또 다른 비상식적인 영화가 역시 뉴욕이 무대인 ‘2주전 통보’. 환경보호론자인 여변호사 샌드라 불락과 그녀가 증오하던 무도한 개발업자 휴 그랜트가 우여곡절 끝에 서로가 참사랑을 깨달아 그 뒤로 내내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용이다. 그랜트의 사업에 피켓 시위를 하던 불락과 그녀를 우습게 여기던 그랜트가 서로 오매불망 그리워하다가 마침내 결합된다는 얘기가 도무지 믿어지질 않는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이 두 영화보다 먼저 나온 ‘정다운 고향 앨라배마’도 역시 어리석은 신데렐라 스토리. 뉴욕의 패션디자이너 리스 위더스푼이 약혼자인 뉴욕 시장의 멋쟁이 아들을 버리고 고향에 두고 온 흙냄새 나는 남자를 선택해 시골색시로 남는다는 백일몽 같은 소리다. 영화에서 뉴욕 시장의 아들은 위더스푼을 문 열기 전의 티파니 보석상으로 초대, 진열된 보석들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라며 청혼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기발난 아이디어에 벌려진 내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었다. 이에 비하면 새벽에 티파니 보석상 밖에서 창 안에 진열된 보석을 바라보며 부러워하던 오드리 헵번은 너무나 사실적이다.
신데렐라의 왕자만이 백마를 타고 님 앞에 나타난 것은 아니다. 곧 개봉될 흑인 앙상블 캐스트의 로맨틱 코미디 ‘이바로부터 우릴 구하소서’에서는 주연 남자가 자기에게 환멸을 느끼고 떠난 애인의 마음을 돌린다고 백주에 백마를 타고 시카고 시청사 내로 들어온다. 가관이다. 3주 전에 개봉된 로맨틱 코미디 ‘신혼부부’는 거꾸로 신데렐라 스토리다. 부잣집 딸과 블루 칼러 청년의 사랑 이야기로 혹평에도 불구하고 개봉 첫 주말 흥행 탑을 차지했었다. 또 2월7일에 개봉될 ‘10일만에 남자 버리기’는 제목 같은 내기를 한 여자가 남자에게 반해 그를 못 버린다는 로맨틱 코미디인데 예감이 별로 안 좋다.
미국 사람들이 비극을 싫어해서 이런 천편일률적인 로맨틱 코미디가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맨해턴의 하녀’와 ‘2주전 통보’ 및 ‘정다운 고향 앨라배마’는 장사도 잘 됐다. 스타 파워와 사람들이 로맨스에 대해 막연히 갖고 있는 신화적 관념 때문인 것 같다.
요즘 영화들에 비하면 옛날 로맨틱 코미디는 참으로 지적이요 세련됐고 또 위트가 넘쳤었다. 배우들은 광채가 났고 대사는 신랄하고 또 깨소금맛이 났다. 이 장르를 기차도록 멋들어지게 주름 잡았던 배우가 케리 그랜트다. 이 영국 출신의 신사 배우가 주연한 ‘엄청난 진실’(1937), ‘베이비 키우기’(1939), ‘그의 여비서’(1940), ‘필라델피아 스토리’(1940) 및 ‘잊지 못할 사랑’(1951) 등은 모두 주옥같은 로맨틱 코미디들이다.
또 윌리엄 파웰과 캐롤 롬바드가 주연한 ‘나의 남자 갓프리’(1936)와 파리와 베니스를 무대로 펼쳐지는 신사숙녀 보석도둑의 얘기 ‘천국의 불상사’(1932·31일자 위크엔드판 연예토픽면 참조)도 최고급 로맨틱 코미디들. 터프 레이디 바브라 스탠윅은 로맨틱 코미디에도 강했는데 그녀가 카드 사기꾼으로 나와 어수룩한 백만장자 헨리 폰다를 녹여놓는 ‘레이디 이브’(1941·사진)와 아이처럼 순진한 언어학자 게리 쿠퍼의 가슴을 정복하는 쇼단 댄서로 나온 ‘정열 덩어리’(1941)는 몇 번을 봐도 재미있는 영화들이다. 이제는 누구도 더 이상 이런 영화들을 만들지 않는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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