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들이나 아카데미 회원들이 모두 좋아하는 것이 정신박약자와 광인, 불치병자와 사이코 킬러 및 중독자 같은 비정상적인 역이다. 이런 역을 맡아 오스카 주연상을 받은 사람들로는 러셀 크로우(‘아름다운 마음’), 앤소니 합킨스(‘양들의 침묵’), 탐 행스(‘포레스트 검프’와 ‘필라델피아’), 더스틴 하프만(‘레인 맨’), 잭 니콜슨(‘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레이 밀랜드(‘잃어버린 주말’) 등이 있다. ‘햄릿’도 일종의 실성한 인간으로 본다면 로렌스 올리비에도 이 대열에 포함된다.
여러 연기파들이 광인의 지경을 너머 괴물로 변신한 히틀러역을 즐겨한 까닭도 이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히틀러역은 알렉 기네스(‘히틀러: 마지막 10일’)와 리처드 베이스하트(‘히틀러’), 잭 베니(‘사느냐 죽느냐’)와 찰리 채플린(‘위대한 독재자’) 등 명배우들에 의해 심각하거나 또는 희화적으로 묘사된 바 있다.
특히 ‘위대한 독재자’(40)는 채플린의 최초의 토키로 슬랩스틱과 풍자 그리고 사회적 비판을 혼합한 색다른 걸작 코미디다. 여기서 채플린은 토마니아라는 나라의 독재자 아데노이드 힝켈과 유대인 게토에 사는 이발사의 1인2역을 명연기 한다. 삼척동자라도 히틀러를 풍자한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당시 유대계인 할리웃의 영화사 사장들은 일제히 채플린에게 영화를 만들지 말아달라고 사정했었다.
청년시절 유대인 창녀로부터 매독을 전염 받아 극도로 유대인을 증오하게 됐다는 설이 있는 히틀러에 관한 영화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맨 헌트’ ‘히틀러: 생사불문’‘히틀러 갱’‘히틀러의 아이들’ ‘히틀러의 광인’‘히틀러의 황금’ 등.
그런데 최근 들어 히틀러에 관한 뮤지컬과 영화와 TV 시리즈가 잇달아 선을 보이면서 바야흐로 ‘히틀러를 위한 봄철’이 찾아온 듯하다. 히틀러 붐을 제일 먼저 안내한 것은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진 뮤지컬 ‘제작자들’. 이 뮤지컬은 멜 브룩스 감독의 1968년도 동명영화의 무대작으로 빅히트를 하고 있다. 내용 중 포복절도하게 우스운 것은 주인공인 엉터리 제작자가 만드는 뮤지컬 ‘히틀러를 위한 봄철’. 정신 나간 쇼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현재 상영중인 영화 ‘맥스’(Max·사진)는 아주 독특한 히틀러 영화다. 1918년 세계 제1차 대전 종료 직후의 독일 뮨헨을 무대로 둘 다 참전 군인인 부유한 유대인 미술상 맥스(존 큐색)와 좌절감에 빠진 젊은 미술가 지망생 아돌프 히틀러(노아 테일러)의 관계를 그렸다. 만약 항상 자신을 예술가로 먼저 생각했다는 히틀러가 비엔나 미술학교에 입학이 허락됐더라면 또 다른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역사적 가상법을 사용한 작품이다.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은 히틀러가 국민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자신을 정치가라기보다 신화를 창조하는 예술가로 내세웠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자칭 예술가가 자신의 정열과 분노를 정치가 아닌 예술에 쏟을 수 있었다면 유대인을 600만명이나 학살한 히틀러라는 괴물은 탄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가정이 매력적이다.
그런데 ‘맥스’는 히틀러를 고뇌하는 인간으로서 동정적으로 묘사했다고 해서 유대인들의 반발을 받고 있다. 지난해 토론토 영화제서 영화상영 도중에 퇴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감독 메노 메이예스와 주연배우 큐색은 “왜 히틀러를 인간으로 묘사할 수 없느냐”고 반박한다.
CBS가 5월 방영을 목표로 현재 프라하서 찍고 있는 미니 시리즈 ‘히틀러: 악의 원천’도 유대인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작품. 이 4시간짜리 시리즈는 이안 커쇼의 히틀러 자서전을 바탕으로 만드는데 히틀러의 젊은 시절을 그리고 있다. 유대인들은 악의 화신의 젊은 시절을 묘사, 그를 구태여 인간화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며 시리즈 제작에 반대하고 있다. 히틀러역은 로버트 칼라일(‘풀 몬티’)이 맡는다. 히틀러의 모친으로는 스타카드 채닝이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 힌덴부르크역은 피터 오툴이 각기 맡는다.
이 달 31일에는 히틀러의 여비서였던 트라우디 융에를 인터뷰한 오스트리아 기록영화 ‘맹점: 히틀러의 비서’가 개봉된다. 60년간 침묵을 지켜온 융에가 처음으로 히틀러의 인간상과 몰락을 이야기한다. 또 현재 상영중인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와 역시 오는 31일에 개봉되는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아멘’도 홀로크스트(유대인 대학살) 영화라는 점에서 히틀러 영화라고 해도 되겠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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