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시작해 죽음으로써 끝나는 영화‘세월(The Hours)’을 본지 어언 한 달이 되어 가는데 나는 이 작품과 멀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가까워져 가고 있다. 작품의 큰 물살인 세월이 내 가슴을 역류하는 것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이야기가 더욱 이해되고 그리운 것은 이 영화가 우리 모두가 겪는 삶의 통증을 처연하니 아름답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주는 허무한 감동이 심장의 미세한 혈관을 타고 온 몸으로 전달되는 모습을 X-레이를 통해 목격하듯 나는 요즘 거의 매일 같이 ‘세월’을 생각하고 또 느끼고 있다. 마침 때도 정초여서 세월을 생각하기에는 안성맞춤 아닌가.
‘세월’은 미국 작가 마이클 커닝햄이 1998년에 쓴 책이 원전으로 퓰리처상과 PEN/포크너상 수상작이다. ‘세월’은 커닝햄이 영국의 여류작가 버지니아 울프(사진)의 대표작 ‘댈로웨이 부인’(1925)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썼다. 울프의 글처럼 인간 내면세계의 의식의 흐름을 시간의 흐름을 자유롭게 타고 넘나들면서 묘사했다.
나는 영화를 본지 며칠 후 소설 속의 세 여인을 연결하는 매체가 된 ‘댈로웨이 부인’을 구하려고 종종 들르는 동아서적을 찾아갔다. 주인은 그 책도 좋지만 소설 ‘세월’은 그 내용과 문체가 지극히 매력적이니 읽어보라고 개인 소유의 책을 빌려준다. ‘생각의 나무’(정명진 옮김) 발행.
‘세월’은 시대와 장소를 달리한 세 여인의 하루 이야기로 이 여인들의 삶을 의식의 흐름 수법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오락가락하며 그렸다. 번역된 글로서도 힘차면서도 섬세하고 짧은 문체와 내용이 지닌 시적이요 심미적인 정신은 거의 상징주의 작품을 보는 느낌마저 주었다. 지금까지 자기보다 남을 위해 살아왔다고 느끼는 세 여인의 뼈마디가 쑤시는 얘기가 풍성하니 직조돼 챕터와 챕터를 통해 연결되고 있다.
이 책은 시간의 무상 속에 속수무책으로 내던져진 인간이라는 존재의 허무를 담담하니 노래한다. 책은 신경쇠약증에 시달리는 울프가 코트 주머니에 돌을 집어넣고 강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 자살하면서 시작되는데 작품의 큰 기둥 구실을 하는 것이 죽음이라는 세월의 그림자이다. 세월은 베풀기도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가져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책은 나프탈린 냄새가 나도록 염세적이다. 그런데도 ‘세월’이 보여주는 죽음 속에는 삶에 대한 찬미가 보석처럼 숨어있다. 그렇다면 ‘세월’은 반드시 허무하지 만도 않다고 하겠다. 모든 소설가는 생의 찬미자요 우리가 글을 읽는 까닭도 거기서 세월에 농락 당하는 존재의 허무에 비춰질 한 가닥 희망을 찾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댈로웨이 부인’을 집필하는 버지니아 외 소설 속 제2의 주인공은 50년대 LA에 사는 주부 로라 브라운. 남편과 어린 아들을 둔 로라는 자기 존재의 이유를 몰라 질식할 것 같은 날들을 산다. 그녀는 ‘댈로웨이 부인’을 읽으면서 비로소 자기 삶의 재정리에 들어간다. 그리고 로라는 버지니아처럼 자살을 생각하다가 자아를 위해 가정을 버린다.
마지막 여인은 현재 뉴욕에 사는 소설 편집책임자 클래리사 본. 별명이 댈로웨이 부인인 클래리사는 버지니아의 소설 속 여주인공 댈로웨이의 현신. 클래리사는 과거 연인으로 AIDS로 죽어 가는 시인 리처드 브라운의 수상 축하파티를 준비한다.
궁극적으로 버지니아는 자기 글에 의해 로라와 클래리사라는 생의 무료와 좌절감에 빠진 두 여인과 하나가 된다. 그리고 자기 삶을 찾아 떠났던 로라는 아들 리처드를 통해 클래리사와 연결된다.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세 여인의 삶의 의미를 찾는 얘기가 세월의 실에 엮어져 가슴이 터질 듯이 아프면서도 아름답고 또 사려 깊이 묘사된 글이다.
영화 ‘세월’은 소설을 비교적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 각본가(데이빗 헤어)와 감독(스티븐 달드리) 그리고 세 명의 뛰어난 연기파 여배우(니콜 키드만, 줄리안 모어, 메릴 스트립)들의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에 의해 감정이 가슴을 서서히 적시고 드는 작품으로 승화됐다. 또 하나 잊지 못할 것은 미니멀리스트인 작곡가 필립 글래스의 세월의 반복을 휘젓듯이 묘사한 우수 가득한 음악. ‘세월’은 현재 상영중이다. (본보 10일자 위크엔드판 무비가이드 참조).
세월은 움직이나 움직이지 않고 변하나 변하지 않는 진공상태다. 다만 그 안에서 인간들이 각고의 삶을 사느라 진동과 변화의 자각증세를 느낄 뿐이다. 소설 ‘세월’ 속 세 여인이 마침내 동일화되는 것도 이런 세월의 원칙 때문일 것이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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