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이 자유로운 창작정신을 억누르는 힘에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문제는 옛날부터 하나의 역사적 과제로 논의돼 왔다. 창작혼과 압제는 항상 서로 충돌하게 마련이어서 독재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곤욕을 치르는 사람들이 작가와 음악가를 비롯한 예술가들이다. 일제를 비롯해 오랜 군사독재에 시달린 우리나라의 많은 예술가들도 폭력적 힘에 상처들을 입었는데 김지하가 그 대표적 경우.
박정희 치하에서는 김민기 등 저항성향의 통기타 가수들이 박해를 받았었다. 이 때는 무식한 관료들이 엘비스 프레슬리와 앤-마그렛 및 자니 캐시 등의 노래까지 금지했던 암흑기였다.
독재자의 변덕 때문에 수십년간 위험한 정치적 부침의 삶을 살며 고생한 사람이 소련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사진)다. 3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소련 음악의 총아였던 쇼스타코비치의 생애를 거의 끝장낼 뻔했던 음악이 드라마틱한 내용을 지닌 다양한 스타일의 4막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Lady Macbeth of Mtsensk).
애정과 육체적 만족 없는 결혼생활을 하는 부농의 아내가 하인 농부를 통해 성의 해방감을 맛본 뒤 모처럼 얻은 자유와 쾌락을 지키기 위해 독재자 같은 시아버지와 무기력한 남편을 살해하나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는 내용. 1934년 초연, 비평가와 청중의 큰 호응을 받았는데 1936년 모스크바서 스탈린이 오페라를 관람하면서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이로써 쇼스타코비치는 오페라 내용만큼이나 극적인 삶을 살게 된다.
스탈린은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퇴장했는데 곧 이어 프라우다에 이 작품을 타락한 것이라고 공격하는 사설이 실렸다. “오페라가 시작되자마자 청중들은 고의적으로 자아낸 불협화음적이요 혼란한 소리의 흐름에 어리둥절하게 된다… 전체가 미숙하고 원시적이며 조야하다… 음악은 사랑의 장면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묘사한다고 꽥꽥거리고 끙끙거리며 헐떡이고 헉헉댄다.” 이 글의 마지막 부분은 오페라에서 여주인공 카테리나와 하인 세르게이의 노골적인 정사장면을 일컫는 것. 그러나 나는 오페라를 보고 이같은 공격은 차라리 칭찬이라고 생각했다. 붉은 커튼 뒤에서 실루엣으로 묘사되는 침대 위 두 남녀의 야단스런 섹스신을 쇼스타코비치의 ‘야한’ 음악이 신나게 받쳐주고 있다. 섹스가 끝난 뒤 두 사람의 녹작지근한 만족감을 지친 듯 토해내는 솔로 트롬본은 기막히게 코믹한 묘사 음이어서 폭소가 터져 나온다.
프라우다의 공격 이후 이 오페라는 30년간 공연이 금지됐다. 그런데 카테리나는 억눌린 계급의 상징으로 그가 시아버지와 남편을 살해한 것은 계급투쟁. 공산주의 이념에 상응하는 이 걸작 오페라가 스탈린에 의해 배척 당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쇼스타코비치가 자기 음악에 대한 공격이 계속되자 체포될 것이 두려워 지은 음악이 교향곡 제5번이다. ‘정당한 비판에 대한 소련 예술가의 실용적인 창조적 대답’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곡은 쇼스타코비치가 자신의 죄를 음을 통해 명백히 사죄한 것인데 이후로도 그는 사망할 때까지 통치세력의 자의에 따라 자유와 통제 사이를 오락가락 하며 살아야 했다.
‘므첸스크의-’가 세인트 피터스버그에 본부를 둔 키로프 오페라에 의해 10월 23~29일 LA 오페라 무대에 올려졌다. 키로프 오페라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사람은 오페라 예술감독 발레리 게르기에프.
쇼스타코비치가 ‘비극적 풍자극’이라 부른 오페라는 해괴할 정도로 어둡게 우습고 또 비극적이며 대담무쌍하고 활기찬 현대음악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음악이 인물들의 행동을 직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게르기에프의 정열적 지휘에 따라 오케스트라는 표현력 풍부하고 깊이 있고 활력 넘치는 연주를 했다.
마지막 두 차례 공연은 작곡자의 아들 막심이 지휘했는데 그는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오페라가 금지 당한 이유를 나름대로 설명했다. 첫째 극중 농부들이 카테리나의 남편 앞에서는 그를 칭찬하다 주인이 떠나자 그를 증오한다고 노래하는데 스탈린은 국민들의 자신에 대한 태도도 이와 같다고 생각했다. 둘째 스탈린은 시아버지를 독살한 카테리나를 본 따 누군가 자기를 독살할지도 모른다고 전전긍긍했다는 것.
쇼스타코비치는 제5 교향곡 때문에 스탈린에 아첨한 자라는 비판도 받았지만(스탈린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그가 그 때 ‘속죄’를 안 했다면 ‘바비 야르’ 교향곡 등 우리가 지금 듣고 있는 그의 많은 걸작들은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한편 LA필은 이번 시즌에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사이클을 연주한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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