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사람은 어릴 적부터 달랐다. 작가 황석영(원래는 수영이었다·사진)은 나와 중학교 3학년 때를 비롯 중·고교를 통해 여러 번 같은 반에서 공부했다.
나는 키가 작아 늘 맨 앞줄에 앉았고 나보다 키가 조금 큰 석영이는 내 몇 줄 뒤에 앉았다(그는 이번 LA 방문시 나와 술을 마시며 자기가 나보다 훨씬 많이 컸다고 자꾸 우겼다). 그런데 그는 수업시간에 공부는 안 하고 노트에 계속 글을 썼다. 잉크병 속에 펜을 찍어 잉크를 바른 뒤 노트 상단에는 그림을 그리고 그 아래에는 촘촘히 글을 썼다.
문학을 좋아하던 내가 석영이의 글재주에 심히 감탄했던 것은 학교 문학 콩쿠르에서 그가 쓴 ‘부활 이전’이 1등으로 당선됐을 때였다. 그는 글에서 예수를 배신한 가롯 유다를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왜 유다가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풀이했다. 나는 당시 이 글을 읽으며 그의 비상한 문재와 주인공의 반대쪽에 서 있는 사람의 입장을 옹호하려 드는 그의 정신에 큰 감명을 받았었다. 석영이의 앤타이 기질은 이때부터 있었던가 보다.
석영이는 이번 LA 방문서 내가 ‘부활 이전’을 얘기하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인 어머니와 두 누나의 성화에 반발, 유다를 변호했다며 크게 웃었다. 내가 석영이와 친해진 데는 둘 다 문학을 좋아하는 것 외에 둘 다 이북 출신 과부의 외아들인 데다가 우리의 어머니가 모두 열렬한 기독교 신자라는 묘한 공통점이 작용한 듯하다.
그런데 우리는 둘 다 소위 깡패 스타일은 아닌데도 어머니와 선생님의 속을 무척이나 썩였었다. 나는 영화구경과 학교생활에 염증을 느껴 무단결석이 잦았고 석영이는 역시 영화광인 데다가(그때 우린 모두 ‘할리웃 키드’들이었다) 공부보다는 글만 쓰는 바람에 툭 하면 담임선생으로부터 모친 호출령을 받곤 했다. 그래서 학교에 불려온 두 어머니는 교무실서 만나 아들들 걱정을 하면서 알게 됐다. 석영이에 따르면 두 어머니가 교무실서 만나면 “기도부터 합시다”며 자식들이 지은 죄의 용서를 빌었다곤 한다.
어릴 때부터 기인이었던 석영이는 나보다 모든 면에서 조숙했었는데 난 그에게서 그때까지 모르던 여러 가지를 배웠지만 여기선 그것이 무엇인지를 언급 안하겠다. 석영이가 고교를 일찍 떠난 뒤 그를 다시 글로 만난 것은 사상계에 등단한 ‘입석 부근’과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탑’을 통해서였다. ‘탑’은 그가 경험을 위해 월남전에 자원입대, 순찰조로서 겪은 경험을 쓴 것인데 수식 없는 강건하고 스릴 있는 글이다.
내가 오랜만에 다시 석영을 만난 것은 한국일보 기자 시절. 그가 한국일보 창립자였던 고 장기영씨의 청탁을 받고 신문에 ‘장길산’을 연재할 때였다. 바람처럼 살던 석영이는 그 때 시골서 살았는데(해남으로 기억) 원고를 제 때 안 보내 문화부 문학담당 선배의 속을 무던히도 썩였었다. 이 선배는 툭하면 내게 쫓아와 “야, 네 친구 황석영인지 뭔지 하는 그 놈이 또 글을 안 보내 날 이렇게 못살게 군다”면서 공연히 내게 분풀이를 했었다. 석영이는 가끔 가다 원고료를 받으러 신문사에 나타나곤 했는데 그 날이면 나는 그에게서 술을 톡톡히 얻어 마시곤 했다. 그는 지금 한국일보에 ‘심청‘을 쓰고 있다 .
석영이는 당시 경험을 위해 외항선을 타겠다고 내게 말했었는데 난 그걸 아직 확인 못 했다.
군사독재 정권시절 고국에 못 돌아가고 미국서 있던 석영이가 LA를 왔을 때 만난 뒤로 며칠 전 참으로 오랜만에 그를 다시 만났다. 머리만 조금 희끗희끗 해졌을 뿐 그는 여전히 생명감이 넘치고 아이처럼 짓궂었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까닭은 이런 천진난만함과 솔직성 그리고 날카로운 위트 때문이다.
우리는 술집을 전전하며 옛 우정을 아까워했다. 그리고 열심히 살자고 서로 다짐했다. 석영이가 5년간 옥살이를 하고(그는 죽은 김일성을 20여차례나 만났는데 후에 귀국해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더니 조사요원들이 자기보고 김일성의 양자 라더라며 깔깔대고 웃는다) 나와 외부세계의 삶의 리듬을 제대로 못타고 있었을 때도 그의 글이 많이 읽힌 까닭은 그가 변화의 물결을 읽을 줄 아는 안목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는 때로 외골수파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건 관점의 차이.
흔히들 석영이를 사상가라고 부르지만 그는 사상가라기보다 작가다. 석영이는 작가가 사상에만 집착할 때 오는 잘못을 혐오한다. 글쟁이가 글 못 쓰면 이미 글쟁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글의 건투를 빈다.
박흥진<편집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