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호걸은 여자와 술을 좋아한다고 살인면허 007을 지닌 제임스 본드도 이 두 가지를 매우 즐기는 수퍼스파이다. 본드는 정력적인 호색한이어서 한 영화에서도 틈만 나면 여러 여자와 침대에 들어 ‘본드 걸’이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본드는 또 미식가인 데다가 감식가를 뺨칠 만큼 포도주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있다. 그러나 본드가 즐겨 마시는 술은 포도주나 샴페인보다 보드카 마티니.
007 시리즈의 제1편인 ‘닥터 노’(1962)의 무대는 자메이카. 자메이카에서 활동하는 동료들이 잇달아 살해되자 본드가 이 곳에 파견돼 호텔에 머문다. 짐을 푼 본드는 룸서비스를 시켜 드링크를 주문하는데 이때 마시는 술이 미디엄 드라이 보드카 마티니다. 그리고 본드는 “쉐이큰 낫 스터드”(Shaken not stirred)라고 주의를 준다.
마티니는 진과 섞어 만드는 술인데 이 영화에서 본드가 보드카 마티니를 마시면서 미국사람들뿐 아니라 전세계 술꾼들이 보드카 마티니로 입맛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닥터 노’에서 본드가 마신 보드카는 스미르노프로 이 브랜드는 최근 마지막 3편의 본드 영화에서도 사용됐다.
그런데 오는 겨울에 개봉되는 본드 영화 ‘다른 날 죽다’(Die Another Day)에서 본드로 나오는 피어스 브로스난과 본드 걸 할리 베리가 마시는 보드카의 이름이 스미르노프에서 핀랜디아로 바뀌었다고 최근 월스트릿 저널이 보도했다. 스미르노프 측에 의하면 본드 영화 팬들의 연령층 때문에 부득이 시리즈 등장을 포기했다고.
스미르노프가 집중적으로 술 판매 대상으로 삼고 있는 소비자들은 21~29세의 나이층. 그런데 007 시리즈의 단골들은 25~45세여서 소기의 광고효과를 못 본다는 것이다. 스미르노프 측은 “21~29세 나이층들이 30대와 40대들보다 훨씬 더 많이 어울려 다니며 파티를 즐긴다”면서 “본드는 사교적이라기보다 혼자 떨어져 의젓하고 냉정하니 폼을 재는 것이 멋이 아니냐”고 말한다.
통계에 따르면 본드 팬들은 ‘골든아이’ 비디오게임으로 본드를 알게 된 틴에이저 소년들과 35세 이상의 남자들로 나타났다. 스미르노프 측은 이 두 연령층이 모두 술장사 상대로 적합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 것. 틴에이저들에게 술을 팔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이고 35세 이상의 남자들은 이미 모두 자기가 선호하는 브랜드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쨌든 이 때문에 술 판매에 박차를 가하게 된 측은 핀랜디아다. 핀랜디아를 즐겨 마시는 사람들은 25~39세의 연령층으로 나타나 본드 영화 팬들과 같은 연령층. 압솔루트에 이어 세계 제2위의 보드카 제조업체인 핀랜디아는 이 기회를 십분 이용, 본드 팬들의 술맛을 스미르노프에서 핀랜디아로 바꿔 놓을 만반의 준비를 해두었다. 핀랜디아는 영화 개봉에 즈음해 잡지와 빌보드 그리고 포스터 및 온라인 마티니 콘테스트와 영화 내용에 맞춘 북극여행 경품권 추첨 등을 마련, 총력을 다해 술광고를 할 계획이다. 현재 미국내 보드카 시장 점유율 1%의 선을 대폭 끌어 올리겠다 는 것.
그런데 보드카 마티니는 본드 소설의 작가 이안 플레밍이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플레밍은 1930년대 영국 첩보원으로 모스크바에서 활약했었다. 그는 이때 러시안 보드카에 맛을 들였는데 후에 아메리칸 마티니를 알면서 이것과 보드카를 섞어 마셨다고 제임스 본드에 관한 책을 쓴 존 코크가 말했다. 그리고 본드가 이 술을 마시면서 보드카 마티니는 멋쟁이 남자들의 술로 등장하게 되었다. 나도 마셔봤는데 씁쓸하니 맛있다.
본드의 보드카 마티니와 본드 걸처럼 본드가 애용하는 물건들(본드 걸들은 대부분 1회용 소모품)의 브랜드로 유명한 것들은 지포라이터와 윌터 P.P.K. 피스톨, 그리고 애스톤 마틴 자동차. 그런데 본드가 몰던 차의 브랜드는 ‘세계로도 부족해’(The World is not Enough·1999)에서 브로스난이 BMW 28로 바꿔 타면서 차종이 바뀐 바 있다.
제임스 본드의 멋과 매력은 그가 두뇌와 기지가 있고 또 대담무쌍하며 건장한 육체와 액션을 두루 구사할 줄 아는 킬러라는데 있다. 그 뿐 아니라 본드는 죽음 앞에서도 냉정 침착하며 마지막 순간에서도 신랄한 한 마디의 농담을 할 줄 아는 의연하고 위엄 있는 남자이다. 이런 남자를 한 마디로 말해 ‘쿨’하다고 일컫는다.
요즘 본드는 초대 본드 션 코너리에 이어 5대째인 피어스 브로스난. 그가 턱시도를 입고 새 브랜드의 보드카 마티니를 마시는 ‘다른 날 죽다’(사진)는 11월22일에 개봉된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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