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째 찾아가는 토론토의 날씨는 한국의 초가을 같았다. 흰 구름이 쉬는 푸른 하늘에서 내려 쪼이는 햇볕이 매우 따가 웠다.
해마다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9월 초순(올해는 5~14일)의 토론토는 전 세계에서 찾아온 기자들과 영화 관계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매년 이맘때면 전 캐나다서 몰려온 수만명의 영화팬들로 영화제가 열리는 블러어 스트릿을 중심으로 한 다운타운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장터를 연상할 만큼 시끌벅적하니 붐빈다. 매년 느끼는 사실이지만 이 세상에서 토론토 사람들만큼 영화 좋아하는 시민들도 없는 것 같다. 이같은 시민들의 열띤 호응과 영화제 주최측의(위원장 Piers Handling) 양질의 작품 선정과 완벽한 준비 등으로 이제 토론토 국제영화제는 서서히 고사해 가는 베니스 영화제를 제치고 영화관계자들과 언론이 가장 사랑하는 세계 영화제 중 하나로 올라섰다.
토론토에 갈 때마다 마음이 흐뭇한 것은 시민들의 친절. 살벌하기 짝이 없는 앤젤리노들 틈에서 사는 나로서는 대화할 때마다 깍듯이 “서”를 부치는 토론토 시민들의 친절이 신기할 정도다. 영화제 주최측의 기자들에 대한 배려도 항상 각별한데 지면을 통해서나마 토론토에 있는 동안 기자들을 정성과 친절로 대접해 준 게이브리엘 프리(Gabrielle Free) 미디어 디렉터와 직원들에게 감사를 보낸다. 이런 까닭들로 인해 이젠 토론토를 찾는 것이 긴 여행 후 내 집 찾아드는 기분이 들 정도다.
과거 2년간 나의 토론토 방문은 말이 외국 여행이지 영화제가 열리는 블러어 스트릿의 매뉴라이프 빌딩 내 바시티 극장과 바로 옆 블럭 영 스트릿의 업타운 극장 그리고 이곳서 걸어서(상영시간에 맞추느라 뛰어다녔지만) 10여분 거리에 있는 컴벌랜드 극장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전부였다. 영화들은 주로 스크린이 11개가 있는 바시티 극장에서 보는데 끼니는 한 영화가 끝나고 다음 영화가 시작되는 30~40분 정도의 빈 시간을 이용해 때우곤 했다.
바시티 극장 옆 골목에 있는 우동과 스시를 파는 일본식당의 주인은 혼자서 분주히 스시를 만들면서 내가 들어서니 “하이, 이라샤이”라고 인사를 한다. 서울의 명동거리 같은 영 스트릿에는 동남아식 국수집과 태국 식당 등 온갖 국적의 식당들이 즐비하다. 한식과 일본식을 파는 하나라는 한국식당(416-972-7692)도 있는데 파리서 사진을 공부했다는 젊은 주인 크리스 서씨가 아주 친절하다. 토론토까지 가서 나이애가라 폭포도 안 가봤느냐는 소리를 여러 번 들은 나는 이번에는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폭포를 가 보리라 마음먹었다. 나는 원래 구경 다니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아 여행을 가도 열심히 나다니질 않는다.
그런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캐나다서 물보라를 맞으며 바라본 나이애가라의 두 폭포는 장관이었다. 토론토서 폭포까지는 나이애가라 폴스에 있는 카지노로 가는 요금이 싼 버스를 이용했다(왕복 18달러).
처음에 미국 쪽에 있는 아메리칸 폴스를 봤을 때는 실망이 컸다. 그냥 조금 큰 폭포였다. 그러나 진짜 웅장한 것은 캐나다 쪽에 있는 편자(Horseshoe) 폭포. 멀리서 보나 가까이서 보나 호흡이 멎을 정도로 우람차고 역동적이었다. 마음을 모두 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라면 거침없이 흐르는 세월의 무성한 머리채 같은 물살에 뛰어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마력적인 물들의 집합동작은 흡인력이 있었다.
나이애가라 폭포는 하이힐을 신은 마릴린 몬로가 몸에 꼭 끼는 드레스를 입고 탐스러운 엉덩이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걸으며 ‘몬로 워크’를 과시한 영화 ‘나이애가라’(1953·사진)로 잘 알려져 있다. 몬로를 수퍼스타로 만들어준 영화로 몬로는 연상의 남편(조셉 카튼)과 나이애가라로 신혼여행을 온다. 그리고 몬로는 자기의 젊은 정부와 짜고 남편을 죽이려다 오히려 자기가 당하는데 폭포가 사람만큼이나 중요한 구실을 한다(황홀 찬란한 폭포를 찍은 촬영이 눈부시다).
영화는 완전히 몬로의 것으로 몬로는 살이 드러난 옷을 입은 채 몸을 뒤틀어 가면서 속삭이듯 말을 쏟아 놓으며 요사를 떨어 뭇 남자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멀리 미국 쪽을 바라보니 영화에서 본 것처럼 노랑 우의를 입은 관광객들이 물보라를 뒤집어 써가며 폭포 구경을 하고 있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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