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모든 것이 다 그렇듯이 할리웃의 영화음악도 이민자들에 의해 형성되고 정립되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피서지에서 생긴 일’ 등 모두 200여 작품의 음악을 작곡한 맥스 스타이너는 비엔나 출신으로 구스타프 말러의 제자였다. 또 ‘선셋 대로’와 ‘젊은이의 양지’ 등의 음악을 작곡한 프란즈 왁스맨은 독일영화계서 일하다 나치를 피해 할리웃으로 왔다. ‘하이 눈’ ‘자이안트’ ‘O.K. 목장의 결투’ 및 ‘리오 브라보’ 등 많은 서부영화 음악을 작곡한 디미트리 티옴킨은 러시아 태생으로 콘서트 피아니스트였다.
오스카상 수상자들인 이들은 모두 클래시칼 음악으로 훈련을 쌓은 후기 낭만파 계열의 작곡가들이다. 멜로디와 화음이 풍성하고 감각적인 음악들로 지금도 콘서트 레퍼터리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들은 본격적인 영화음악가들이지만 클래시칼 음악 작곡자들로 영화음악 쪽으로 외도한 사람들도 많다. 프로코 피에프, 쇼스타코비치, 본 윌리엄스, 코플랜드, 오네거 및 번스타인과 프레빈들을 들 수 있다.
정통 클래시칼 음악공부를 한 유럽 이민자로 할리웃 영화음악을 하나의 장르로 정립시키고 또 수많은 후배 영화음악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사람은 오스트리아 태생의 에리히 볼프강 콘골드(1897~1957)이다.
비엔나의 어린 시절 신동이라 불렸던 그는 뛰어난 고전음악 작곡가로 오페라, 교향곡, 바이얼린 협주곡 및 성악곡들을 작곡했다. 말러와 브루노 발터 등 세계 굴지의 지휘자들이 그의 음악을 지휘했고 그의 오페라들은 유럽 전역에서 공연되는 인기를 누렸었다.
나치 박해를 피해 할리웃으로 건너온 콘골드도 낭만파의 후계자로 그의 음악은 무성한 하머니와 섬세하고 유혹적인 관현악 편성 그리고 동경하는 듯한 멜로디로 이뤄져 지금도 LA필을 비롯 많은 교향악단들에 의해 자주 연주되고 있다.
콘골드의 이런 음악적 특성은 영화음악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데 그의 음악을 들어보면 서정적이면서도 힘차고 거침없어 가히 교향적 영화음악의 본보기라고 해도 되겠다.
콘골드의 영화음악 중에서도 대중에게 큰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그의 할리웃 활동 초기(1935~40) 당시의 로맨틱한 역사영화 음악들이다. 이것들은 대부분 펜싱 결투가 멋있는 스와시버클러(Swashbuckler)들이다.
그가 워너 브라더스를 위해 작곡한 여러 스와시버클러에는 모두 가는 콧수염을 한 날렵한 멋쟁이 미남 배우 에롤 플린이 주연했었다. 콘골드가 이때 작곡한 영화음악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해적영화 ‘시 호크’(The Sea Hawk·1940)의 음악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시대 해적들의 신나는 노략질과 칼부림 그리고 로맨스를 그린 흥미진진한 액션 모험영화로 특히 플린과 헨리 대니엘이 장시간 벌이는 마지막 펜싱결투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장면이다. ‘시 호크’는 스와시버클러의 백미로 꼽히는 작품으로 스릴 있고 의기양양한 음악이 영화의 분위기를 극진히 떠받들어 주고 있다. 이 음악은 콘골드의 마지막 스와시버클러 음악이기도 하다.
’시 호크’의 음악만큼이나 유명한 것이 플린의 첫 주연 영화로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또 다른 해적영화 ‘블러드 선장’(Captain Blood·1935). 콘골드가 처음으로 영화를 위해 음악을 작곡한 작품인데 흥분되는 해상전투와 펜싱결투 그리고 정열적인 로맨스가 기막히게 잘 배합된 걸작이다. 여기서 플린과 장시간의 칼싸움 끝에 저승으로 간 악인으로는 ‘로빈 후드의 모험’(1938)에서도 플린의 칼에 맞아 죽은 바실 래스본이 나온다.
또 플린의 연인 아라벨라로는 올리비아 디 해빌랜드가 나오는데 둘은 ‘로빈 후드의 모험’에서도 각기 로빈과 매리온으로 나와 사랑을 나눴었다. 두 영화 모두 마이클 커티스 감독의 작품이다.
이 영화의 음악을 들으면 마치 완벽한 교향곡을 듣는 느낌으로 당당한 위풍과 미묘함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왜 콘골드가 영화음악을 ‘노래 없는 오페라’라고 말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도이체 그라모폰이 최근 콘골드의 영화음악 CD를 출반했다. ‘시 호크’와 ‘블러드 선장’ 외에 역시 모두 플린이 주연한 ‘왕자와 거지’(The Prince and the Pauper·1937) 그리고 베티 데이비스가 엘리자베스 여왕으로 나와 도도한 연기를 보여준 ‘엘리자베스와 에섹스의 개인적 삶’(The Private Lives of Elizabeth and Essex·1939) 등 4편의 영화음악이 담겨있다. 안드레 프레빈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멋있는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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