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회원들이 정신박약자와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 또는 신체장애자들을 좋아하는 성향이 이번에도 다시 드러났다. 24일 거행될 제74회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배우 중 이런 범주에 속하는 사람은 모두 3명.
’아름다운 마음’으로 남자주연상 후보가 된 러셀 크로우는 노벨상을 탄 정신분열자 역으로 ‘나는 샘’의 숀 펜은 어린 딸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정신박약자로 나와 각기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또 주디 덴치는 ‘아이리스’에서 알츠하이머를 앓다가 사망한 영국작가 아이리스 머독 역으로 여자주연상 후보가 됐다.
아카데미 회원들은 이런 사람들과 함께 역경을 초극한 인간 승리와 언더독이 빛 보는 얘기를 특히 좋아한다. 작품상을 받은 ‘로키’(1976)나 수줍은 노총각 정육점 주인의 얘기인 ‘마티’(1955) 등이 그런 영화들.
정신이 돌아버리는 연기로 오스카 주연상을 탄 유명 배우로는 로널드 콜맨이 있다. 그는 ‘이중인생’(1941)에서 실생활에서도 작중 인물의 성격을 띠게 되는 정신착란 증세의 연극배우로 나와 이 상을 탔다. 이듬해 로렌스 올리비에는 미친 왕자 ‘햄릿’으로 역시 주연상을 탔다.
또 비비안 리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에서 정신이 돌아버려 주연상을 탔고 평소에도 광인 같은 잭 니콜슨은 ‘뻐꾸기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5)에서 미치광이 역으로 역시 주연상을 탔다. 잉그리드 버그만도 ‘개스등’(1944)에서 광녀로 나와 주연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진짜 미친 게 아니고 자신의 유산을 노린 남편(샤를르 봐이에)이 서서히 아내를 정신병자로 몰아가면서 자기가 미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역이었다.
아마도 이렇게 제정신이 아닌 사람 역으로 가장 먼저 주연상을 탄 배우는 프레드릭 마치일 것이다. 그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씨’(1931~32)에서 하이드 노릇을 겁나게 해내 이 해 월레스 비어리(’챔프’)와 주연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리고 ‘네트웍’(1976)으로 사후 주연상을 받은 피터 핀치도 광인이나 진배없다.
정신박약자 역으로 주연상을 탄 사람들로는 클리프 로벗슨(’찰리’·1968)과 더스틴 호프만(’레인맨’·1988) 및 탐 행크스(’포레스트 검프’·1994) 등이 있다. 행크스는 1993년 ‘필라델피아’에서 에이즈를 앓다가 죽어 첫 주연상을 탔는데 이듬해 다시 멍청한 역으로 상을 받으면서 아프거나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오스카상 탈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했다. 그리고 존 밀스는 ‘라이언의 딸’(1970)에서 벙어리 동네 바보 역으로 남자조연상을 받았다.
정신박약자 노릇을 눈부시게 해내 대뜸 스타덤에 오른 배우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는 ‘길버트 그레이프의 고뇌’(1993)에서 귀신 곡할 명연기를 보여줬었다.
신체장애자나 지체부자유자도 아카데미 후원들의 동정을 많이 받는 역.
로널드 레이건의 전처 제인 와이맨은 ‘자니 벨린다’(1948)에서 말못하고 귀먹은 여자 역으로 또 실제로 말못하고 귀먹은 여배우 말리 매틀린은 ‘신의 버림받은 아이들’(1988)로 각기 주연상을 탔다.
아카데미상을 무려 7개나 탄 ‘우리 생애의 최고의 해’(1946)에서 남자조연상을 받은 해롤드 러셀은 두 손 잃은 제대군인으로 나왔었다. 그는 실제로 군에서 두 손을 잃었는데 조연상 외에 특별상까지 하나 더 받았다.
휠체어에 앉아 주연상을 탄 남자는 존 보이트(올해 ‘알리’로 오스카 조연상 후보). 그는 ‘귀향’(1978)에서 하반신 불구의 베트남전 재향군인으로 나와 상을 받았는데 영화에서 그와 뜨거운 섹스를 나눈 유부녀 역의 제인 폰다도 주연상을 탔다.
알콜중독도 질병인 만큼 술주정뱅이로 나와 주연상을 탄 남자배우가 2명있다. 레이 밀랜드는 ‘잃어버린 주말’(1945)에서 중증 알콜중독자로 나와 수상을 했고 리 마빈은 이색 웨스턴 ‘캣 블루’에서 술을 병나발 불어 역시 이 상을 탔다.
아카데미 회원들이 이런 역들을 좋아하는 까닭은 그들의 연령층이 높아서 흐뭇한 인간승리의 얘기에 쉽게 넘어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많은 배우들은 상을 노리고 이런 역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연기는 잘하면서도 아직 상을 못 탄 숀 펜이 과도하게 감상적인 ‘나는 샘’에 나온 이유도 이런 까닭이라는 설이 있다. 그래서 달라스 오브저브지는 그의 샘 역을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행하는 구걸질"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정신이든 육체든 어딘가 아파야 오스카상을 탄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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