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타운 점집 풍속도
▶ 맞으면 신기하고 안 맞아도 재미로
점집에 가면 한인사회가 보인다. 경기가 나빠지면 파산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호황때면 비즈니스 매매와 투자상담이 늘어난다. 2000년대 들어서 자녀문제와 이혼문제로 상담하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지만 그래도 상담 1순위는 ‘돈문제’. 요즘엔 비자문제로 찾아오는 20대 유학생도 많이 늘었다. 역술원, 철학원, 애기동자, 심령보살, 무당설화... 새해가 되면 올 한해 신수와 사주를 알아보러 용하다는 점집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올 한해 한인들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문제들로 고민할까? 점집 풍속도를 그려본다.
"20대 젊은이들부터 40-50대 아줌마, 아저씨들까지 요즘은 애정문제로 난리야. 불륜이다, 이혼이다, 바람 피는 얘기지 뭐. 그런 일만 듣다보면 머리가 다 아파서 내가 도대체 불륜상담자인지, 점치는 사람인지 혼란스럽다니까"
LA에서 3년째 자리를 펴고 있는 무당설화(54)는 한달이면 반은 서울에서, 반은 이곳에서 점을 보는데 LA 손님들은 "자기 것만 챙긴다"고 흉본다. "한국서는 주부들이 자식 학교문제, 취직, 군대, 혼사문제를 알아보러 많이 오는데 여기서는 어찌된게 모두 자기 것만 가져오나 몰라. 부부가 같이 와도 서로 자기 것만 보자고 하거든"
그런데 지윤철학원의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생활에 여유가 생긴 탓인지 자녀들 교육문제, 건강, 진로, 결혼문제에 신경쓰는 한인이 많아졌어요. 특히 30대 여성들은 출산을 앞두고 분만일시를 받거나 작명하러 오기도 하고, 40-50대는 자기 문제보다 자녀와 배우자의 건강, 사업문제로 찾아오는 사람이 더 많지요. 자녀의 이혼상담도 꾸준히 늘고 있으니 나이 들수록 걱정은 자녀문제인 것 같습니다"
미주한인들의 ‘점괘’가 이처럼 상반되듯 ‘점집’도 전혀 다른 두 종류가 공존한다.
역학 또는 명리학으로 사주팔자를 풀어 운세상담을 해주는 역술원과 철학원이 그 하나, 신이 내린 영력으로 미래를 투시하여 길흉대운을 예언하는 무속점술집이 다른 하나다. 보통 ‘보살’이나 ‘도사’의 직함을 가진 사람은 ‘천신’ 혹은 ‘만신’을 모신 무속인들을 말한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남가주에는 40-50명의 무속인과 역술가들이 영업중이며 그 비율은 반반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리스찬 인구가 많은 미주한인사회에서 점집들이 맥을 못 추리라는 추측은 천만에 말씀. 철학원들은 "역학은 자연의 흐름을 통계로 푸는 것이므로 종교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고객의 대다수가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여호와 신이 아닌 다른 신을 모신 무속 점술사들조차 기독교인들이 간간이 찾아온다고 귀뜸한다.
지윤철학원의 경우 확실히 연초에 고객이 늘어난다. 한 해 운세를 미리 점검한 후 직장, 사업, 이사, 결혼등의 계획을 세우려는 사람들이다. 역술상담으로 효과를 본 사람들은 단골이 되어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아오고 타주에서 오는 전화상담도 적지 않다.
"역술상담의 포인트는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해 주의사항을 주는 것입니다. 인생은 모두 처음 가는 길이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원웨이죠. 지도없이 가는 길이지만 사인판이 있다면 험한 길이라도 사고위험을 피해갈 수 있어요. 나쁜 운을 좋은 운으로 바꿔주지는 못하지만 같은 길도 지혜롭게 가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쉽게 말해 길을 가다 트래픽에 걸려 꼼짝 못하고 있을 때 원인을 모르면 왜 그런지, 언제 뚫릴지 모르니까 그냥 기다릴지, 돌아 나갈지 결정하지 못해 답답하지만 미리 예상하고 있으면 대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이한 것은 여성들은 이 길을 찾아가는데 있어서 최대관심사가 남자에 관한 것인 반면 남자들의 관심사는 돈, 사업, 성공에만 머물러 있다는 것. 지윤씨는 거의 모든 여자들이 자신의 애인이나 남편이 나중에라도 "다른 여자를 만날 것인지" 반드시 물어보는데 반해 아내가 앞으로 바람을 피울지를 묻는 남자는 전무하다고 말했다.
철학원과 점술집의 상담료(복채)는 일인당 1회에 30-50달러 수준. 그러나 무속인들의 경우 복채는 ‘껌값’이고 살을 제거하는 부적을 써주거나 운 뚫는 굿을 해서 수백 내지 수천달러를 벌기도 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에 대해 무당설화는 "부적을 붙이는 것은 그걸 볼 때마다 조심하라는 경각심과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하고 "진짜 부적을 쓰려면 하루종일 앉아 기도하고 밤 11시에서 1시 사이에 써야 하는데 일부 점집은 한국서 한 장에 20원짜리를 잔뜩 사다놓고 자기가 썼다며 비싸게 파는 곳도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그보다는 산에 가서 신령님 앞에 술 한잔 따라놓고 산기도할 것을 권한다"는 그녀는 이곳 손님들과 자주 찾는 곳은 아주사 산으로 바위앞에 떡, 밥, 나물, 과일, 술등을 차려놓고 북과 징을 치며 기도한다고 했다.
무속인 집안에서 자라나 점쟁이 안 되려고 요리조리 피하다가 늦은 나이에 신이 내려 "만신중에 으뜸인 옥황상제를 모셨다"는 무당설화는 점치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바른 자세’라고 지적. 간절하게 알고 싶어하는 자세로 오면 좋은 효과를 보지만 잘 맞추나, 안 맞추나 보려고 장난삼아 오는 사람은 "신이 돌아앉아, 보자고 안해서 점을 볼 수가 없다"는 것. 따라서 손님과 무속인의 연이 잘 맞고 합이 들면 100% 완벽하게 맞추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미래를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의 한계가 빚어낸 점은 원시시대로부터 문명사회인 오늘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끊임없이 사랑받아 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은 점괘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라는 것. 점술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맞으면 신기하고 안 맞아도 재미’로 보는 것이 현명한 점보기 자세라는 것이다.
<정숙희 기자> skch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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