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치대 최초 한인 학장… UCLA 치대 명문 반열 업적
▶ 40여 년 공헌 남기고 은퇴… 샤피로 랩서 연구는 계속

UCLA 연구실에서 본보와 인터뷰하는 박노희 박사. [박상혁 기자]
UCLA 치과대학에서 최초의 한인 학장으로 재직했던 박노희 박사가 내년 1월1일부로 공식 은퇴를 발표했다. 지난 1998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18년 동안 UCLA 치대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학장을 지낸 박노희 박사에 대해 UCLA는 9일 발표한 공식 성명에서 “박 박사의 리더십은 UCLA 치대를 세계 최고 수준의 치과대학으로 도약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공로를 기렸다.
박노희 박사는 UCLA 치대와 데이비드 게펜 의대에서 정년 교수로 재직하며 교육·연구·행정 분야에서 동시에 업적을 남겼다. 그는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UCLA에서 봉사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제 인생의 가장 큰 특권이었다”고 소회를 밝히고 “18년 동안 학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제 경력에서 가장 의미 있었던 부분은 치대가 교육, 연구, 환자 진료, 그리고 지역사회 봉사에서 전국적 수준의 선도 기관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일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 교수와 직원, 학생, 동문, 그리고 후원자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박 박사가 1998년 학장에 취임했을 당시 UCLA 치대는 연구비·인프라·기부 규모 등 여러 면에서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2016년 학장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그는 장기 전략을 기반으로 치대의 체질을 대폭 강화, 세계적 명성의 치대로 키워냈다. 그의 재임 18년 동안 UCLA 치대는 ▲외부 연구지원금이 약 300만 달러 2,500만 달러로 8배 이상 증가했고 ▲기부금 및 발전기금 규모도 약 5배가 성장했으며 ▲전혀 없던 기금교수직이 10개나 신설됐고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 지원도 16배로 확대됐다.
박 박사는 학장 재임 기간 연간 약 9,000만 달러에 달하는 치대 전체 예산을 관리하며, 400명의 교수진, 450명의 학생, 100명의 레지던트, 200여 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대규모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었고, 두경부 종양 및 재건 바이오테크놀로지 등 두 개의 세계적 연구센터를 구축해 UCLA 헬스 사이언스 전반과의 협력을 강화했으며, 학생들을 위한 리더십 프로그램 및 아폴로니안 소사이어티 창설 등 교육 혁신에도 힘썼다.
UCLA 치대의 폴 크렙스바흐 현 학장은 “박노희 전 학장의 비전은 UCLA 치대의 미래를 완전히 바꿔놓았다”며 “연구·교육·환자 진료의 모든 분야에서 오늘의 UCLA 치대가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UCLA에서 40년 넘게 봉직한 박노희 박사는 100명 이상의 대학원생·레지던트·포스트닥 연구자를 직접 지도했으며, 그의 제자 상당수는 현재 미국은 물론 전 세계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UCLA 치대의 DDS 교육과정을 분과별 강의 중심에서 문제 해결 기반의 통합 교육 모델로 개편해 미국 치대 교육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러한 교육적 공헌으로 2022년 미국 치·구강·두개안면 연구학회(AADOCR)로부터 어윈 맨델 멘토링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박노희 박사는 “저를 믿고 따라와 준 수많은 학생들과 연수생들에게 특히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들의 열정과 성취는 제게 가장 소중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비전의 리더이자 혁신가, 헌신적 교육자로 널리 알려진 박노희 박사는 1944년 충청북도 단양 출생으로,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뒤 조지아대 의대와 하버드대 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대 교수를 거쳐 UCLA에서 오랜 기간 후학을 양성해왔다.
분자종양학 분야의 권위자이자 구강암 분야의 세계적 연구자이기도 한 박노희 박사는 지금까지 220여 편의 국제 학술논문을 발표했으며 논문 인용 횟수는 1만3,000건에 달한다. 7,000만 달러 이상의 연구비를 수주했으며 ▲인유두종바이러스(HPV)의 구강암 발생 역할 규명 ▲담배 유해물질·헤르페스바이러스의 복합 발암 효과 규명 ▲구강암·세포 노화 연구를 위한 주요 인비트로 모델 개발 ▲구강 건강과 전신 질환의 연계성 규명 등 연구 성과로 국제적 인정을 받았다.
그는 미국치과연구학회(IADR) AAAS 펠로우로 선정됐고, 2001년 국제치과연구학회로부터 치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뛰어난 과학자상’을 수상했다. 2010년 가이스 치과학 교육자 부문 성취상 수상과 함께 UCLA 치대 및 의대의 ‘석학교수’에 선정됐으며, 한국 최초의 과학기술유공자 32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박노희 박사는 뛰어난 학문적 성취와 함께 교육 경영자이자 학장으로서도 명성을 날렸다. UCLA 치대를 미국과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연구 중심의 치과대학으로 우뚝 서게 만든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세계적으로 우수한 학자들을 교수로 영입하는데 집중했고, 치의학 분야에서의 대학 리더들을 양성하기 위해 학교 내에 리더십 프로그램을 만들고 1년에 10명의 학생들을 선발해서 집중적으로 리더십 교육을 시행했다. 그 결과 UCLA 치대 졸업생들 중에 미국내 대학 치대 학장이 배출되는 등 뚜렷한 성과를 도출해냈다.
박노희 박사는 내년 1월1일자로 공식 은퇴한 후에도 UCLA 내 샤피로 패밀리 래버라토리 산하에서 연구 프로젝트에 계속 참여해 학문적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 박사가 최근 출간한 첫 자서전 ‘인생의 전환점: 나를 형성한 결정적 순간들(영어명 Turning Points: Moments That Shaped Me)’에는 전쟁 직후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부터 미국 학계에서의 성취까지 그의 인생 여정이 담겨 있다. 그는 “은퇴라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며 제 마음은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하다”며 “오랜 세월 제 삶을 풍요롭게 해준 UCLA의 동료들과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비록 제 학문적 역할은 내려놓지만, UCLA는 영원히 저의 홈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박노희 박사의 공식 은퇴 소식에 찰스 버톨라미 NYU 치대 학장은 “구강암 연구와 과학적 발견에서 박 박사가 남긴 업적은 수많은 생명을 변화시켰다”며 “학장으로서 UCLA 치대를 세계적 기관으로 끌어올린 그의 리더십은 진정한 유산으로 남을 것”이라고 경의를 표했다.
■박노희 박사 약력
-1944년 충북 단양 출생
-서울대 치대 졸업, 서울대 치의학 석사
-조지아대 이학박사, 하버드대 치의학박사
-1982년 하버드 치대·의대 조교수
-1984년 UCLA 치대 부교수
-1985년 UCLA 치대 정교수
-1998년 UCLA 치대 학장 취임
-2001년 국제치과학 뛰어난 과학자상 수상
-2007년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선정
-2009년 UCLA 박노희 석좌교수직 설치
-2010년 치대교육자 가이스 성취상 수상
-2015년 UCLA 치과대 명예동문 수상
-2016년 UCLA 치대 학장 은퇴
-2017년 한국 과학기술유공자 선정
-2022년 어윈 D. 만델 멘토링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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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