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영화비평가협회(LAFCA) 회원들과 영화사 간부 및 홍보회사 직원들고 2001년도 각 부문 베스트 수상자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는 카사 델마 호텔 로비에서 만난 타드 필드(사진)는 나만큼이나 말랐는데 아주 똘똘한 청년 같았다.
배우 출신인 필드는 우리가 최우수 작품으로 뽑은 ‘침실에서’로 감독 데뷔해 이날 상을 받으러 참석했다.
외아들을 살해당한 중년부부의 절망과 고뇌 그리고 궁극적 복수를 그린 ‘침실에서’는 차분하고 긴장감 가득한 드라마로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복수는 내가 한다’는 식의 결말이 계속 마음에 걸려오던 차에 로비에서 필드를 찾아 먼저 인사를 건네고 그 부분에 관해 물었다.
"그런 식으로 꼭 복수를 하면서 전형적 할리웃 스타일로 결론을 맺어야만 했는가"라는 질문에 필드는 "이 영화는 복수나 응보를 말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아내의 남편조작 이야기"라고 말했다.
어떻게든지 아들의 복수를 하려는 아내(시시 스페이섹)는 맥베스 부인 같은 여자고 나약하기 짝이 없는 남편은 아내의 집요한 조작에 밀려 자기살인 행위나 마찬가지인 복수를 한 것이라고 자상히 일러줬다.
약간 냉정하게 생긴 얼굴을 지닌 필드는 내 귀에다 입을 대고 정열적으로 자기 작품을 변호했는데 내가 "오스카상 후보에 오르리라 기대하느냐"고 묻자 "그런 것 신경 안 쓴다"고 말한다. 나는 "그래 당신 아직도 젊으니 얼마든지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 뒤 서로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칵테일 잔을 한 손에 든 나는 인파를 헤치고 이번에는 최우수 감독상을 받으러 온 데이빗 린치에게 다가갔다. 괴이하기 짝이 없는 일장악몽과도 같은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만든 린치는 자기 영화와 달리 아주 상냥하고 나이스했다.
나는 "당신의 작품은 너무도 비 할리웃적이어서 좋아한다"고 그를 추켜세운 뒤 언제 다시 ‘스트레이트 스토리’처럼 아름답고 알기 쉬운 영화를 만들 생각이냐고 물었다. 린치는 "나는 그 영화의 각본을 읽고 반해 감독했다"면서 "좋은 각본만 있으면 언제든지 연출하겠으나 지금으로선 다음 작품이 뭐가 될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린치는 이 날 상을 받는 자리에서 "당신들이야말로 천사들이요 영화를 살리는 버즈(사전 호평)"라고 감사를 표한 뒤 이날 파티장의 소리들을 담은 작은 녹음기를 틀고 "이것이 바로 그 버즈"라며 증거를 제시, 폭소와 박수갈채를 받았다. 과연 괴짜다운 행동이다. 나는 이어 프랑스 여류감독 언녀스 번르다와도 인사를 나눴다. 최우수 기록영화상을 받는 그녀는 내게 "당신들에게 감사하기 위해 이틀 전 파리서 왔다"고 말했다.
22일 저녁 6시부터 시작된 시상식은 올해 새 장소로 옮겨 태평양이 보이는 샌타모니카의 카사 델마 호텔서 열렸다. 300여명이 만찬장을 메웠는데 갈수록 참가자가 늘고 규모가 커지면서 LAFCA가 하시하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닮아가고 있다. 글 쓰는 사람들 파티 같게 조촐하게 치렀으면 하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이날 LAFCA 회원이 된 이래 처음으로 접수를 봤는데 손님들의 이름을 일일이 체크하고 테이블 번호와 1잔 무료표(몇년 전 수상자인 코미디언 빌 머리가 "칵테일을 돈 내고 먹는 시상 파티는 처음 봤다"며 우리에게 달러 지원을 한 뒤로 만들었다)를 나눠주는 일이 생각보다 매우 어려웠다.
이날 수상자들 중 감격에 목이 멘 사람은 여우조연상을 받은 케이트 윈슬렛(’아이리스’)과 타드 필드. 특히 필드는 "눈 깜짝 할 새 없어질 수 있는 영화를 끝까지 후원해 준 당신들에게 영원히 감사할 것"이라며 말을 더듬었다.
드림웍스의 창설자 중 하나인 제프리 카렌버그도 할리웃의 파워맨답지 않게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는 ‘슈렉’을 제작, 최우수 만화영화상을 받았는데 참석자들에게 상패를 들어 보이며 "내가 비평가들 앞에 서게 될 줄이야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은 시시 스페이섹은 "나는 6세 때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다"면서 ‘침실에서’에 상을 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말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녀에 이어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받은 덴젤 워싱턴(’훈련의 날’)은 진지한 표정으로 "왜 여우주연상을 먼저 주느냐 성차별을 하는 게냐"고 말해 참석자들을 어리둥절케 했다. 그것이 진담인지 아니면 농담인지 아직까지도 궁금하다.
수상자들과 더 많은 대화를 못 나눈 게 아쉬웠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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