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신문에서 지난해 생명의 전화에 걸려온 하소연중 가장 많았던 주제가 고독이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총 1,787건의 상담건수 중 고독에 관한 것이 174건으로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고독이 상담을 해서 풀어지는 것도 아니요 또 떨쳐버리려고 몸부림을 친다고 해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건만 오죽 답답했으면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고독의 처방전을 부탁했을까 하고 생각했다.
고독은 사람을 가장 못살게 구는 감정 중 하나다. 그것은 죽음에까지 이르는 병인만큼 인간의 영육을 피폐케 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슴에 포에지로 작용해 시와 소설을 쓰게 만들고 또 노래를 부르게 만들며 그리고 영화를 만들게도 한다.
고독은 영혼의 굶주림 같은 것으로 이 굶주림을 먹고사는 인간의 예술정신을 강렬히 자극시켜 모차르트와 반 고흐와 이상들을 탄생시키고 있다. 배고픈 예술쟁이라는 말은 반드시 육체적 기아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고독타령이 가장 심한 것이 유행가일 것이다. 패티 김이 "가슴속에 스며드는 고독이 몸부림칠 때"라고 절규하는 ‘초우’ 외에도 언뜻 생각나는 고독을 제목으로 단 팝송들을 보자.
단 깁슨과 레이 찰스 외에도 많은 컨트리 가수들이 부른 ‘오 론섬 미’, 폴 앵카가 "사랑하고 키스하고 안아줄 그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보채는 ‘론리 보이’, 대학생 시절 광화문에 있던 수련다방에서 자주 신청해 듣던 바비 빈튼의 ‘미스터 론리’ 그리고 내가 매우 좋아하는 짐 리브스가 부르는 ‘해브 유 에버 빈 론리’ 등이 고독할 때 들으면 더욱 고독해질 수 있는 노래들. 그리고 앤디 윌리엄스가 목소리를 끌어가며 부르는 ‘론리 스트릿’도 또 다른 고독찬가다.
고독이 배어 있는 책들은 많지만 금방 생각나는 것은 서민들의 자질구레한 외로운 감정을 집안 일 쓰듯 한 셔우드 앤더슨의 ‘와인스버그, 오하이오’. 동네 사람들의 고독이야말로 절대적으로 평범한 것이라고 하겠다. 또 10대들의 필독서인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헤밍웨이가 쓴 잃어버린 세대들의 얘기인 ‘태양은 다시 떠 오른다’ 등도 고독이 만연한 내용들이다.
아이오와서 시 창작을 공부하고 있는 나의 아들의 말처럼 모든 시는 고독에 관한 것이라고 해도 되겠다. 시인들은 행복해도 고독한 사람들 아니겠는가.
독일어로 고독은 아인잠카이트(Einsamkeit). 발음이 듣기 좋은 고독음을 내는데 릴케는 ‘나의 성스러운 고독이여 너는 눈뜨고 정원 같이 풍요하고 맑고 드넓다./ 나의 성스러운 고독이여 많은 소망이 기다리는 그 황금빛 문을 닫고 있어라’며 고독을 섬긴다.
릴케는 또 "고독은 비와 같은 것"이라며 "그것은 서로 싫은 사람들이 한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그러한 뒤엉킨 시간에 비로 내린다"고 절망하기도 한다.
고독을 입천장이 쩍쩍 달라붙도록 건조하게 영상화시킨 감독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다. 그가 만든 현대인의 감정의 불모와 소외감과 상호 소통 불능의 3부작 ‘라벤투라’와 ‘밤’과 ‘일식’을 보노라면 심신이 건조해지다 못해 산산이 쪼개지는 느낌이 든다. 영화 ‘애정만세’와 ‘하류’ 및 ‘구멍’ 등에서 역시 현대 도시인의 소외의식을 집요하게 파헤친 대만의 차이 밍-리앙이나 잉그마르 버그만도 고독의 일가견 자들.
이에 비하면 타고난 낭만파 왕 카-와이의 고독은 익음을 못 견뎌 즙을 흘려내는 수밀도처럼 달콤하기까지 하다. ‘타락천사’ ‘중경삼림’ 및 최신작 ‘사랑하고픈 기분이지요’(In the Mood for Love-USA Film에 의해 VHS 출시·사진) 등이 다 그렇다. 특히 ‘사랑하고픈-’은 아내와 남편이 각기 있는 고독한 두 남녀의 맺지 못할 사랑을 슬픔과 노스탤지어 그리고 로맨티시즘의 짙은 질감으로 물들여 놓은 작품. 막무가내로 낭만적이어서 부끄러울 정도다.
고독은 심장에 묻은 지워지지 않는 때요 콧구멍을 통해 들락날락하는 숨결이며 우리 영혼의 한 부분이다. 그것은 세금과 죽음처럼 인간이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헤세의 시처럼 고독에의 길은 어려우며 네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
이렇게 어려워서 사람들은 그 짐을 조금이나마 벗어버리려고 상담마저 하나 과연 고독을 상담해 줄 자격이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그건 신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다. 사치스러운 말일지도 모르나 어차피 우리를 안 떠날 고독이라면 차라리 고독할 줄도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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