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연꽃을 뒤집어 놓은 듯한 낙하산이 맨살이 드러난 의족을 매달고 저 멀리서 서서히 낙하를 시작하자 모두들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수십명의 아프간 남자들이 목발을 짚고 의족이 떨어지는 곳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려간다. 마치 운동회에서 줄에 매달아 놓은 과자를 따먹기 위해 온갖 힘을 다해 뛰어가는 소년들의 간절한 표정을 한 남자들의 얼굴들이 천사의 강림을 목격하듯 거룩해 보인다.
이 절대적으로 가슴 아픈 장면은 이란의 명장 모센 마흐말바프(44)의 최신작 ‘칸다하르’(Kandahar·사진)의 한 장면이다. 칸다하르는 미군의 아프간 공격으로 갑자기 온 세상에 알려진 아프간 제2의 도시. 이 영화는 칸다하르에 사는 여동생을 찾아가는 아프간 캐나다 여인의 여정을 그린 처참하도록 아름다운 로드무비다.
충격적인 것은 영화 전편을 통해 보여지는 잘려진 다리들과 의족과 목발들. 지뢰에 의해 무릎 아래 다리들이 잘려져 나간 끝이 뭉툭한 살덩어리에 의족을 맞추고 구보하듯 열심히 보행연습을 하는 남자들의 모습이 코믹하기까지 하다.
자료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에는 현재 1,000만개의 지뢰가 묻혀 있다. 이 지뢰 때문에 불구가 된 아프간 사람의 수는 무려 수십만명인데 요즘도 매일같이 20명 정도가 지뢰를 밟아 죽거나 부상을 입고 있다.
현재 전세계 68개국에 1억1,000만개 정도가 부설돼 있는 지뢰는 2차대전 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보스니아, 캄보디아 및 모잠비크 등에 많이 묻혀 있고 특히 아프가니스탄이 가장 지뢰의 피해가 큰 나라 중 하나. 남북이 가로 막혀 있는 우리나라도 물론 지뢰 부설국가에 속한다. 그래서 홍수가 나면 떠내려온 지뢰를 밟아 다리가 잘려져 나갔다는 뉴스도 가끔 나온다.
미국에서의 지뢰의 역사는 남북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인들이 퓨즈가 설치된 포탄을 땅에 묻어 이 줄을 건드리면 포탄이 터지게끔 했다. 요즘에는 수십종의 대인 및 대전차지뢰들이 있는데 가장 보편적인 것은 대인지뢰. 이들은 대부분 금속으로 만들어졌지만 점점 탐지가 어려운 플래스틱이나 도기지뢰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모양도 하키 퍽이나 배터리 또는 파인애플이나 장난감 모양 등 가지각색. ‘칸다하르’에는 여선생이 인형을 땅에 던져놓은 뒤 아이들에게 밟아 보도록 실습시키는 장면이 있다. 밟아서 소리가 나면 선생님은 "너는 죽은 거야"라고 사망통고를 해준다. 아프간 사람들이 지뢰와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하는 장면이다.
유엔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에서 지뢰 때문에 사망하는 사람의 수는 1만~2만명이고 부상자 수도 이와 마찬가지. 현 추세대로 전 세계에 부설된 지뢰를 모두 제거하려면 1,000년이 걸리고 제거비용은 33억달러가 든다. 지뢰 한 개의 제작비는 최저 3달러이나 제거비는 무려 1,000달러.
지금 아프간을 점령한 미군들의 제1 목표는 빈 라덴을 잡는 것이겠지만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지뢰제거. 지뢰제거를 하는 군인들은 공병들인데 지난 달 중순에 칸다하르 공항에 부설된 지뢰를 찾던 3명의 미 해병이 땅속 폭발물을 밟아 부상을 입었다. 한 사람은 무릎 아래 다리를 잃었다고 한다.
아프간 사람들이 탈레반 정권이 붕괴된 후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는데 가장 큰 장애요소도 지하에 부설된 지뢰와 폭발물이다. 최근 LA 타임스는 아프간에서 지금 가장 절박한 문제는 지하의 적을 뿌리뽑는 것이라면서 지난 11월 고향으로 빨리 돌아가고픈 마음에 17명을 태운 버스가 큰길을 벗어났다가 대전차지뢰를 건드려 모두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 지뢰 때문에 돈벌이가 좋은 신종 직업이 지뢰제거원. ‘새퍼’라 불리는 이 사람들의 월급은 105달러인데 국민 1인당 월수입이 4달러인 나라에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직업인데도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유엔은 지뢰를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상존하는 위험’이라 지목하고 지뢰 제거에 총력을 경주하고 있다. 미국방부에도 인도적 지뢰제거반이 있어 평화시 지뢰가 많이 부설된 나라에서 제거작업을 하고 있다.
’칸다하르’의 달려가는 목발 짚은 아프간 사람들의 모습이야말로 지뢰의 공포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번 나의 행복의 위치를 확인했다. ‘칸다하르’는 10일 하오 7시 UCLA의 제임스 브룩스 극장(310-206-3456)에서 상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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