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비음을 내며 수많은 부드럽고 로맨틱한 팝 발라드를 불러 중년 팬들의 변함 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자니 마티스(사진)의 노래를 들으러 지난 21일 세리토스 공연센터를 찾아갔다. 나는 미국에 온 뒤로 한국에 있을 때 고교와 대학시절 음악감상실과 다방에서 애청하던 가수들의 쇼를 하나씩 찾아다니고 있는데 그동안 벼르고 벼르던 마티스의 모습과 노래를 마침내 가까이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공연장을 들어설 때는 공연히 가슴마저 두근댔다.
내가 마티스의 노래에 처음 매료된 것은 고교시절 영화 ‘어떤 미소’(1958)를 보면서였다. 그는 여기서 우아한 나이트클럽의 가수로 나와 "어 서튼 스마일 어 서튼 페이스" 하며 주제가를 불렀었다. 달콤하면서도 약간 까칠까칠한 음성이었는데 입이 약간 일그러진 모양으로 부르는 로맨틱한 노래에 깊이 빨려들어 갔었다. 그 뒤로 나는 이 노래의 가사를 외워 혼자 애창하곤 했는데 프랑솨즈 사강의 소설이 원작인 ‘어떤 미소’는 영화 내용보다 노래가 훨씬 더 좋은 작품이다.
마티스를 모르는 사람들일지라도 그의 간판곡이 된 ‘미스티’가 나오는 영화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1971)를 본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이 영화의 원제는 ‘나를 위해 미스티를 틀어주세요’(Play Misty for Me).
이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감독 데뷔작이다. 그가 북가주의 한 작은 마을의 라디오 심야프로 DJ로 나와 밤마다 전화로 ‘미스티’를 틀어달라고 요청하는 여인의 유혹에 넘어가면서 급기야 칼부림까지 일어나는 스릴러다. 애인이 있는 이스트우드는 이 여인과 하룻밤 정사를 즐겼다가 죽어라하고 떨어지지 않는 여인으로부터 가위공격까지 받으며 혼이 나는데 글렌 클로스가 나온 ‘치명적 매력’의 원조격인 영화다.
"나를 보세요/나는 마치 나무 위의 고양이새끼처럼 무력하기만 합니다"로 시작되는 ‘미스티’는 ‘원더풀 원더풀’ ‘이츠 낫 포 미 투 세이’ ‘챈시즈 아’ ‘더 트웰프스 오브 네버’ 및 ‘왓 윌 메리 세이’ 등과 함께 마티스가 가장 많은 빅 히트곡들을 낸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에 이르는 기간 중 나온 노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마티스의 노래는 비감할 정도로 로맨틱한 ‘트웰프스 오브 네버’다. "당신은 내가 당신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가 라고 묻지요/내가 설명해야만 합니까/오 마이 달링 나는 장미들이 비를 필요로 하듯 당신이 필요하답니다/당신은 내가 언제까지나 당신을 사랑할 것이냐고 묻지요/내가 진실을 말해 드리지요/시간이 끝나는 그때까지 나는 당신을 여전히 사랑하리다/나를 꼭 안아 주시고 결코 놓아주지 마세요/나를 꼭 안아 주시고 나의 가슴을 4월의 눈처럼 녹여주세요/나는 블루벨 꽃이 피기를 잊을 때까지 당신을 사랑하리다/나는 클로버가 자신의 향기를 잃을 때까지 당신을 사랑하리다/나는 시인이 라임이 모자랄 때까지 당신을 사랑하리다/시간이 끝나는 그 때까지/그것은 길고도 긴 시간이지요"
그래서 지난 금요일 밤 마티스가 이 노래를 불렀을 때 나는 청춘으로 되돌아간 듯한 기분에 젖어 즐거워했다. 이날 공연은 마티스가 해마다 이맘때면 세리토스를 찾아와 선사하는 크리스마스 쇼. 마티스는 자신의 빅히트 곡들과 캐롤을 섞어가며 노래했는데 66세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젊은 모습이었다.
내가 마티스의 노래를 좋아하는 까닭은 무엇보다 그의 음성 저 아래 잠겨 있는 쓸쓸함 때문이다. 나는 그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이상하게 고독감을 느끼게 되는데 고독감은 마티스의 또 이같은 다른 음색인 달콤함과 묘한 조화를 이루며 내 가슴을 아리게 만들곤 한다.
이날 재미있었던 에피소드 한가지. 마티스가 의자에 앉아(대학생 때 올림픽 육상종목 예선에 초청될 만큼 실력이 우수했던 그는 지금은 왼쪽다리가 불편해 걸음을 잘 못 걷는다) 캐롤 ‘칠드런 윌 리슨’을 부르던 중 가사를 잊어먹자 "가사를 잊어버렸어요/그러니까 노래를 조심해서 골라야 해요"라고 임기응변으로 노래해 청중들의 폭소와 박수갈채를 받았다.
2시간이 넘는 공연이 끝나며 퇴장하는 마티스에게 청중들이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냈다. 마티스는 앙코르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두 번이나 불렀다. 비록 눈은 안 왔지만 기분은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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