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통에 전쟁영화가 잇달아 개봉되고 있다. 할리웃은 9.11테러 직후만 해도 시민들이 전쟁이나 테러를 다룬 영화보다는 코미디나 현실도피 영화를 더 찾을 것으로 속단했었다. 그래서 테러에 관계된 영화들인 ‘코래터럴 대미지’ ‘빅 트러블’ ‘배드 캄퍼니’ 등과 전쟁물 ‘윈드 토커스’의 개봉을 내년으로 미뤄 놓았다.
그런데 9.11 이후 뜻밖에도 관객들이 ‘트레이닝 데이’와 ‘한 마디도 하지마’ 같은 어둡고 폭력적인 영화에 몰리면서 할리웃은 잽싸게 개봉을 꺼리던 전쟁영화들을 줄줄이 내놓을 예정이다. 영웅주의와 애국심을 팔아먹자는 아이디어로 그 첫번째 영화가 오늘 개봉된 ‘적진 뒤’(영화평 ‘위크엔드’ 판 7면).
이 영화는 보스니아 내전시 적진 후방에 추락한 미해군 파일럿 구출작전의 실화로 9.11 이전 시사회에서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받았는데 지난 10월 또 다른 시사회에서 관객의 아우성치는 호응을 받았다. 이에 배급사 폭스는 내년 봄 개봉을 앞당긴 것이다.
나는 며칠전 시사회서 옆에 앉은 남자가 미군이 세르비아군을 까부수는 장면에서 두 손을 불끈 쥐고 "예스"라며 흥분하는 것을 목격했다. 바람 잔뜩 든 애국심 염가판매 영화라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요즘 미국 시민들에겐 이런 영화가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내년 봄에 개봉 예정이던 리들리 스캇의 ‘블랙 호크 추락하다’도 개봉일을 12월28일로 앞당겼다. 이것은 1993년 미특공대의 소말리아 군사작전 실패 실화를 다뤘다. 이어 보스니아 내전을 다룬 다크 코미디 ‘임자 없는 땅’이 12월14일에 개봉되고 2차대전 시 레지스탕스에 가담한 영국 여인의 얘기 ‘샬롯 그레이’ 와 역시 2차대전 때 영국 공군에서 활약한 체코공군들의 실화 ‘어둡고 푸른 세계’가 12월28일 동시에 개봉된다.
전쟁영화 붐은 내년에까지 이어져 3월 멜깁슨 주연의 베트남전 영화 ‘우리는 군인이었다’가 선보이고 브루스 윌리스가 나오는 전쟁포로 영화 ‘하트의 전쟁’ 및 2차대전 암호전문 해독가들의 스릴러 ‘수수께끼’도 개봉된다.
이런 전쟁 무드에 편승해 폭스 비디오는 최근 고전전쟁 9편을 묶어 출시했다. 이 시리즈는 둘 다 과달카날 전투를 묘사한 ‘과달카날 일기’와 ‘신 레드라인’, 말론 브랜도와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각기 나치 장교와 미군 졸병으로 나온 ‘젊은 사자들’ 그리고 ‘사상 최대의 작전’과 피튼’ 등 모두 2차대전 걸작 영화들로 구성됐다.
미국이 아프간을 공격하면서 미디아들은 우울한 전쟁 분위기 속에서 미국민들이 볼만한 영화들을 추천했었다.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것이 ‘카사블랑카’. 남의 일에 오불관언이던 릭(험프리 보가트)이 보다 큰 선을 위해 자기가 아끼는 것(잉그릿 버그만)을 희생하고 자기의 근본적 고귀함을 재발견하는 내용이야말로 전쟁을 치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것이겠다.
나는 얼마 전 아이오와시티에서 시를 공부하고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라면 요즘 같은 때 어떤 영화를 추천할 것인가 하고 얘기를 나눴다. 우리는 ‘우리 생애의 최고의 해’(1946)를 골랐다.
아들은 "가장 참혹한 경험인 전쟁에 의해 육체와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실제 삶의 변화에 민감히 주의를 기울인 영화"라면서 "새롭게 탄생하려는 세 남자의 노력을 부드러우면서도 조용히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감동으로 얘기한 아름다운 슬픔의 색조를 띤 작품"이라고 칭찬했다.
명장 윌리엄 와일러가 만든 이 영화는 2차대전 후 귀향하는 3명의 미군에 관한 얘기로 가장 뛰어난 전후 미국의 단면도라는 평을 받고 있다. 감독, 남우 주·조연, 각본 및 음악상 등 모두 7개 부문서 오스카상을 받았는데 프레데릭 마치, 머나로이(아들이 좋아하는 여배우다), 데이나 앤드루스 및 테레사 라이트 등이 출연했다.
3명의 미군이 전쟁의 참담한 경험과 미래에의 불안을 안고 귀향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민감하고 사랑이 가득한 작품이다. 전쟁 불구자의 고뇌와 재향군인들의 가정과 사회에의 적응문제 그리고 타인에게 냉정한 평화시의 사회 등을 통찰력 있게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보다 순수하고 낙천적이었던 종전 직후시대의 미국인들의 삶을 따스하고 감격적이며 또 통렬하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린 이 영화야말로 제작자 새뮤엘 골드윈의 말처럼 세월과 무관하니 모든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이들이 봐야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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