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애 처음으로 본 일본영화는 곤 이치가와 감독(86)의 ‘도쿄 올림피아드’(1965)였다. 세살인가 네살짜리 아들과 함께 윌셔에 있던 리바이벌 하우스 배가본드 극장에서 봤다.
기록영화라기보다 차라리 시적 인간드라마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사실이 참으로 아름답고 감동적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었다. 이치가와가 "평화와 인간 평등의 시각적 시"라고 부른 ‘도쿄 올림피아드’(18일 하오 7시)는 170분짜리 대작으로 장면 하나 하나가 형식미에 관한 실험 같은 명작으로 각본은 60년대 중반까지 남편 영화의 글을 쓴 이치가와의 부인 나토 와다가 썼다.
내가 두번째로 본 이치가와의 영화는 그 섬세함과 아름다움을 필설로 형언키가 힘든 ‘마키오카 자매들’(The Makioka Sisters·1983)이었다. 주니치로 다니자키의 소설 ‘세설’이 원작으로 30년대 오사카의 몰락한 부잣집 네 자매의 이야기다(12월8일 하오 7시30분).
나무에 매달렸다 지천으로 나부끼며 떨어지는 벚꽃들과 비단 기모노가 움직일 때마다 내는 감각적인 소리, 벚꽃들이 겨울을 맞아 변신할 듯한 세설, 그리고 네 자매의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나는 영화를 보면서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이렇게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영화를 또 본적이 없다.
나와 내 친구 C가 가장 좋아하는 반전영화가 이치가와의 ‘버마의 하프’(Harp of Burma·1956)이다. 2차대전중 미얀마 전투에서 부대가 전멸하고 혼자 살아남은 일본군인이 귀국을 거부한 채 승려로 위장하고 부상자를 돌보고 전사자를 매장하면서 속죄행위를 하는 죽은 자들을 위한 진혼곡이다. 희망과 신비감이 가득한 전쟁 비가인데 한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마력적인 작품으로 베니스 영화제서 대상을 받았다.
이에 비하면 같은 반전영화 ‘야화’(Fires on the Plain·1959)는 묵시록적이다. 필리핀 전투에 참전한 일본군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인육을 먹는 이야기로 전쟁이 몰고 온 인간의 광기를 강렬하게 묘사한 서사적 작품이다. 두 반전영화는 24일 하오 7시 30분부터 동시 상영된다.
UCLA 필름 아키이브는 17일부터 12월9일까지 학교내 제임스 브룩스 극장에서 곤 이치가와의 걸작 18편을 선보이는 회고전을 갖는다.
켄지 미조구치, 야수지로 오주 및 아키라 쿠로사와 등과 함께 일본의 4대 거장이라 불리는 이치가와는 193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무려 80편에 가까운 작품을 만든 다산 감독이다.
그는 형태와 분위기에 뛰어난 예술가로 인본주의적 전쟁영화와 기록영화 그리고 세련된 사회풍자 영화와 불랙 코미디 및 화려한 시대극(카부키 배우의 복수극 ‘배우의 복수’ 유키오 미시마의 소설이 원전인 ‘큰 불’과 함께 17일 하오 7시30분부터 상영)등 모든 장르를 다루고 있다.
그는 우아한 화면 구도와 독기 서린 위트 그리고 과감한 이야기 서술을 구사하면서 끊임없이 스타일과 주제의 변혁을 시도해온 개혁자이다. 일본영화의 황금기와 60년대 뉴웨이브의 교량 역할을 한 이치가와의 주인공들은 가족, 군대, 국가 등 무자비한 제도에 대항해 투쟁하는 소외되고 고독하며 또 집념에 사로잡힌 국외자들이다.
그리고 그의 세계는 불과 눈과 중독과 독살(세계평화를 위해 자신의 핵폭탄을 제조하는 미치광이의 얘기인 ‘억만장자’는 블랙코미디 ‘부-산’과 함께 20일 하오 7시30분부터 상영) 그리고 광기(전후 일본의 총체적 광기를 그린 어두운 코미디 ‘풀-업 트레인’은 섹스와 악취에 관한 상스런 이야기인 ‘토호쿠의 남자들’과 함께 12월2일 하오 7시부터 상영)로 가득하다.
이치가와는 세세한 것 모두의 사실성에 철저한 완벽주의자여서 때론 히치콕에 비유되기도 하는데 그의 관점이 아이러닉하고 또 자주 차갑게 방관하는 식이어서 클로드 샤브롤과 비유되기도 한다. 그의 영화는 설사 인간적이며 감상적이고 또 우습다 할지라도 그 안에는 늘 절망과 고뇌가 숨어 있다.
회고전에는 소세키 나추메의 소설이 원작으로 일본사회의 결점을 뒤틀어 묘사한 ‘나는 고양이’(I Am a Cat. 1975-’나는 두살’과 함께 25일 하오 7시부터 상영)와 오사카서부터 샌프란시스코까지 단독 항해한 실화를 그린 ‘태평양을 혼자서’(Alone on the Pacific·1963-대학생과 스승의 자살과 배신을 그린 ‘마음’과 함께 20일 하오 7시30분부터 상영) 그리고 청춘의 허무주의에 관한 ‘떠돌이들’(The Wanderers·1973-’형벌의 방’과 함께 12월 1일 하오 7시30분부터 상영) 및 변태적 가족드라마 ‘괴이한 집념’(Odd Obsession·1959-’어두운 여인들’과 12월9일 하오 7시부터 상영) 등도 상영된다. (310)206-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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