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영화를 토론토 영화제서 봤을 때 심금이 울려오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우리 미국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요. 그러나 이 영화 속에서 아프간 난민들이 겪는 고생을 보게 되면 미국에 사는 여러분들은 우리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들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지난 4일 할리웃의 이집션 극장에서 미영화학회(AFL) 영화제에 출품된 이란 영화 ‘바란’(Baran)을 상영하기 전 한 여성 프로그래머가 영화를 소개하며 한 말이다.
신문마다 연일 사진과 함께 이란으로 피난한 아프간 난민들의 절망과 굶주림이 보도되는 요즘 그들의 현실을 통렬하니 사실적으로 그린 ‘바란’을 본 감동은 매우 직접적이었다. 9.11 테러이후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남부여대해 이국 땅으로 피신한 아프간 사람들의 절망과 고뇌가 그대로 화면을 너머 나의 가슴을 치고 들어왔다.
’천국의 아이들’과 ‘천국의 색깔’ 같은 아름답고 감정 풍만한 영화를 만든 마지드 마지디 감독(각본 겸)의 2000년 작품인 ‘바란’은 서두에 이란에는 140만명의 아프간 난민들이 살고 있다고 적고 있다. 9.11 테러이후 그 숫자는 훨씬 더 늘어났음에 틀림없다.
아프가니스탄 접경 지역인 이란의 한 도시의 공사장에는 불체자들인 아프간 난민들이 이란 노동자들 틈에 섞여 싼 임금에 막노동을 하고 있다 (LA의 히스패닉 불체자들을 생각하게 한다). 공사장의 인간성 있는 감독 메마르(모하마드 아미르 나지)는 관리가 현장점검을 나올 때마다 "아프간 사람들은 빨리 숨어라"고 소리 지른다.
공사장에서 인부들에게 차를 나르며 막일을 하는 이란 청년 라티프(호세인 아베디니)는 싸움 좋아하는 수탉 같은 친구인데 이 영화는 라티프가 사랑하는 아프간 소녀 라마트(자라 바라미)의 힘겨운 삶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주려고 자기 희생을 하며 인간변신을 하는 내용이다.
자기 신분을 사내로 속인 라마트는 공사장서 실족, 다리가 부러진 아버지를 대신해 일을 시작하나 힘에 겨워 실수를 연발하자 메마르는 라티프의 일을 소년에게 맡긴다.
쉬운 일자리를 난민에게 빼앗긴 라티프는 계속 라마트의 일을 사보타지 하다가 우연히 라마트가 여자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라마트에게 잘 보이려고 새 옷을 입고 노동을 하면서도 즐겁기만 한(암담한 얘기에 코믹터치가 잘 입혀졌다) 라티프는 서서히 라마트에게 연정을 느끼며 소녀에게 친절을 베풀고 소녀는 라티프의 참 이유를 모르면서도 그의 친절에 조용하게 반응한다.
그런데 아프간 난민들이 불법 노동을 하는 사실이 발각되면서 라마트가 공사장을 떠나자 그리움에 못 견딘 라티프는 님을 찾아 나선다. 라티프는 아프간 난민들이 사는 곳을 수소문, 개울에서 힘에 겨운 중노동을 하는 라마트를 찾아낸다. 라마트가 무거운 돌을 들다가 쓰러지는 모습을 숨어서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라티프의 슬픔이 참으로 숭고하다. 그리고 라티프는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라마트를 돕기로 한다. 그가 끝까지 선행의 주체를 밝히지 않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돕는 모습이 마치 성자 같다.
마지드 감독은 로맨티시즘과 감정이 가득한 작품을 만드는데 특히 그의 영상미의 아름다움은 형언키 힘들만큼 시적이다. 여기서도 감독은 칙칙한 회색 속에 색채와 아름다움을 서정적으로 배합시키고 있어 참담하고 힘겨운 전체 분위기에 온기를 불어 넣어준다.
그의 카메라는 작은 것들을 아끼며 그것들을 통해 감정을 대변하고 있다. 바구니에서 쏟아진 물건들을 번갈아 주워담는 라티프와 라마트의 손, 라마트가 공사장에 떨구고 간 자기 머리칼 한 올이 매달려 있는 머리핀 그리고 쏟아지는 빗물(바란은 라마트의 본명으로 비라는 뜻)에 채워져 가는 라마트가 남긴 발자국 등.
어둡고 슬픈 이야기에서 감상적으로 흐를 수 있는 내용인데 마지드 감독은 센티멘탈리티를 잘 통제해가며 간단명료하고 맑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영화 내내 한 마디 안 하는 바라미의 표정이 가득하니 숨어있는 얼굴이 저세상적인 기품을 지녔다. 회색 시멘트 사이를 뚫고 피어난 꽃 같은 영화로 거룩하다고 해도 될 영적 체험을 주는 작품이다. ‘바란’은 10일 하오 1시30분 이집션 극장(6712 할리웃)에서 마지막으로 상영된다.
오늘도 미국의 폭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혹한을 맞은 아프간 난민들의 슬픔과 고통을 영화를 통해 비로소 조금이나마 감각하면서 나는 부끄러움 마저 느꼈다. 감사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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