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1853)를 모르는 사람들일지라도 작고한 코미디언 플라이보이 곽규석이 영화 ‘5인의 해병’에서 "잘났다 못났다" 하면서 익살맞게 노래부른 ‘축배의 노래’와 그레타 가르보가 주연한 영화 ‘춘희’(Camille·1937)는 알 것이다.
타락한 여자라는 뜻의 제목이 말하듯이 이 오페라는 파리 사교계 고급 창녀의 맺지 못할 사랑을 그린 신파 중의 신파 사랑타령이다. 쾌락과 방탕함이 판을 치는 사교계에서 사치와 허영에 절은 병약한 나비 같은 여인이 신분사회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려다 진실된 사랑을 깨닫고 스스로 불타죽는다는 케케묵은 사랑이야기이다.
주인공 비올레타는 오페라 1막에서 "사랑은 세상과 우주를 밀어주는 힘"이라면서 "그러나 그것은 꽃처럼 금방 시드니 오직 쾌락을 즐길 뿐"이라고 여인으로서의 참사랑에 대한 갈구와 폐병 걸린 창녀로서의 자포자기적인 쾌락 추구를 노래한다. 우리가 비올레타에 강한 연민을 느끼는 것도 비록 창녀이긴 하지만 이상과 자존을 지닌 그녀가 참사랑을 발견, 자기 희생으로 이 사랑을 구원의 경지로 올려놓고 있기 때문이다. 비올레타는 소위 황금의 마음을 지닌 창녀다.
요즘은 없어진 코티전(Courtesan·고급 창녀)은 16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사회의 한 계급을 이룬 화류계 여자들이다. 지적이요 교양 있고 고도의 섹스 테크닉을 지닌 여자들이어서 왕족과 귀족, 부자와 예술가들의 욕망의 대상이 되었던 유혹녀들이었다(영화 ‘위험한 미녀’에서 이들의 삶이 화려하고 자세히 묘사돼 있다).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황진이나 일본의 게이샤 같은 여자들로 베르디의 오페라는 코티전과 열애한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자전적 소설 ‘동백꽃의 여인’이 원작이다. 뒤마 피스(아들)는 23세에 사망한 알퐁신 뒤플레시와 격정적인 사랑의 경험을 글로 썼는데 일설에는 역시 소설가인 뒤마 페르(아버지)가 ‘삼총사’에서 코티전을 사악한 여자로 묘사한 것에 대한 반발로 비올레타를 구원의 여인으로 승화시켰다고 한다.
오페라 속의 비올레타는 자주 만나보기가 힘들지만 우리가 아무 때나 손쉽게 만나볼 수 있는 비올레타는 영화 ‘춘희’ 속에 있다. MGM 작으로 조지 큐커가 감독한 ‘춘희’에서 비올레타 발레리는 소설대로 마거릿 고티에로 나온다.
’춘희’는 신비한 여인 가르보의 대표작으로 가르보의 매력 하나 때문에 신화적 위치에 오른 로맨스 영화다. 여자 배우를 잘 다루는 큐커의 연출력과 함께 카메라가 가르보의 형언키 어려운 아름다움과 분위기와 향기를 마음껏 잡아내 황홀 무아지경에 빠지게 된다.
가르보의 이같은 초현실적 분위기는 당시 25세로 아직 경험이 많지 않았던 로버트 테일러의 자태와 연기마저도 살려주고 있다. ‘춘희’야말로 가르보 때문에 불멸의 걸작이 된 작품으로 보고 또 보아도 한숨짓게 만드는 사랑의 바이블이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는 이런 로맨틱한 내용을 가졌는데다 전 3막이 그지없이 아름다워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의 팝 같은 것이다. 극의 내용을 암시하는 간장을 끊어놓는 듯한 전주곡(이 곡의 첫 부분은 제3막에서 비올레타가 죽기 전에 다시 나온다)에서부터 ‘축배의 노래’ ‘아! 꿈에 그리는 그대’ ‘프로벤자 내 고향으로’ ‘잘 있거라 지나간 날들이여’를 비롯해 비올레타와 그의 연인 알프레도의 듀엣 그리고 비올레타와 알프레도의 아버지 조르지오의 듀엣 등 주옥같은 노래들이 전편에 가득하다.
특히 애처롭게 아름다운 것은 비올레타가 죽기 직전 읽는 조르지오의 편지 내용. 여기서 떠오르는 통곡의 심정은 비올레타가 ‘신이여 이렇게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하다니’라며 절규하다가 알프레도의 품에 안겨 숨지면서 절정에 이른다. 바그너의 ‘사랑의 죽음’ 만큼이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죽음의 장면이다.
LA 오페라의 ‘라 트라비아타’(사진·켄 하워드)는 리바이벌로 19일 개막공연의 지휘는 LA 오페라의 예술감독 플라시도 도밍고, 연출은 그의 아내 마르타가 맡았다. 화려한 세트와 빼어난 가창력이 모두 훌륭한 무대였다.
알프레도역의 롤란도 빌라존은 높이보다 폭이 넓은 감미로운 음성이었고 비올레타를 노래한 안나 마리아 미티네스는 스무스하고 고우면서도 고음을 말끔하니 처리했다. 조르지오역의 호르헤 라구네스의 바리톤도 풍성했다. ‘라 트라비아타’는 11월4일까지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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