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름이 되면 가끔 별(LA 밤하늘별을 세어봤자 손꼽을 정도지만) 아래 생음악을 들으며 포도주 마시는 맛에 할리웃 보울을 찾아간다. 별과 음악과 포도주 셋 중 어느 것이 으뜸인가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하튼 이 로맨틱한 세 가지 성분을 한꺼번에 즐기기에는 할리웃 보울만큼 좋은 곳도 없다.
지난 화요일 이곳을 무척 좋아하는 여동생과 함께 올 여름 들어 첫 보울 나들이를 했다. 화요일과 목요일은 LA필 연주의 날로 이날 LA필은 에마누엘 크리빈의 지휘로 거쉬인의 ‘파리의 미국인’과 비제의 조곡 ‘아들의 여인’ 등을 연주했다. 평범한 연주였다.
당초 이 날에는 메조소프라노 드니스 그레이브스가 출연, ‘카르멘’ 중 아이라 등을 부를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몸이 아파 마지막 순간에 수전 멘처로 교체됐다. 음악회 전 식사 때 기자와 만난 패트리셔 미첼 LA필 수석운영국장은 마지막 순간에 그레이브스와 동격의 메조소프라노를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고 새파란 눈을 크게 뜨며 토로했다.
멘처는 잘 연주되지 않는 곡인 라벨의 노래 사이클과 함께 거쉬인의 ‘서머타임’ 등을 노래했는데 풍성하니 아름다운 음성이었다. 그런데 이 날의 레퍼터리 선정이 다소 어정쩡한 것이어서 그랬는지 청중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틴슬타운(번쩍거리는 할리웃의 별명)의 사절들’이라 불리는 할리웃 보울 오케스트라가 올해로 창립 10주년을 맞는다. 보울 오케스트라는 현 상임지휘자인 흰머리에 인자하게 생긴 잔 마우체리(55)를 위해 창설됐고 또 그에 의해 세계 굴지의 팝 오케스트라로 성장했다. 보울 오케스트라 창설 후 지금까지 이 곳을 찾아온 팬들은 300만명에 이른다.
보울 오케스트라 단원은 80명 정도로 이들은 할리웃 스튜디오의 영화음악 연주자들이다. 할리웃 보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마우체리가 오케스트라의 바톤을 잡은 이래 이뤄놓은 가장 큰 업적은 잊어버려지고 대접 못 받던 메이저들의 영화음악을 재생시키고 편곡하고 또 복원해 오케스트라 음악으로서 대중에게 접근시킨 것이다.
’오즈의 마법사’ ‘클레오파트라’ ‘선셋대로’ ‘스타 탄생’ 및 ‘벤-허’와 ‘오클라호마!’ 그리고 ‘사운드 오브 뮤직’ 등이 그런 음악들로 영화음악이 자신들의 일상사인 단원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에서 보울 오케스트라의 영화음악 연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울 오케스트라는 클래시칼, 오페라, 발레 및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를 연주하지만 역시 가장 팬들의 인기를 받고 있는 장르는 영화음악이다. 마우체리는 몇달전 보울 오케스트라 금년 시즌 스케줄을 발표할 때 "할리웃 보울은 할리웃 음악을 세계화하는데 기여한 바 크다"고 자랑했었다.
뉴욕 태생으로 1971년부터 레너드 번스타인이 죽기 1년 전까지 18년간 그의 보조자로서 번스타인의 많은 음악을 편집하고 관리하고 또 연주했던 마우체리(현 피츠버그 오페라 상임지휘자 겸임)는 클래시칼은 물론이요 팝에 이르기까지 모든 음악 장르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난 다재다능한 지휘자다. 그는 할리웃 보울 오케스트라에 고유의 성격과 음악성과 음색을 불어넣으며 이 오케스트라를 다채롭게 만들어 놓은 사람으로 이제 보울 오케스트라와 마우체리는 동의어가 되다시피 했다.
마우체리의 불만은 자기가 창조하고 키워온 보울 오케스트라에 대한 대접. 특히 그는 LA필 관계자들이 보울 오케스트라를 마치 그들의 서자 취급하는 것을 크게 못마땅해 해왔다. 마우체리는 얼마전 LA타임스와의 회견에서 이런 2등 대접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바 있는데 이런 대접은 지난해 뉴욕필 출신의 데브라 보다(지난 화요일 연주회서 만났는데 작달만한 체구의 맹렬 여성이었다)가 LA필의 매니징 디렉터로 취임한 이후 많이 시정되어 가고 있다.
마우체리의 윤택한 음성은 매일 저녁 하오 8시부터 클래시칼 전문 방송인 K-MOZART(105.FM)를 통해 들을 수 있다.
할리웃 보울 오케스트라 창립 10주년을 기념, 그동안 이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던 곡중 빅히트곡을 모은 2장의 디스크가 ‘할리웃 보울 오케스트라: 존 마우체리 최고의 히트곡들’(사진)이라는 이름으로 필립스(Philips)에 의해 나왔다.
디스크 1에는 오케스트라와 음반을 취입한 유명 성악가들인 패티 루폰, 그레고리 하인즈, 마릴린 혼 등이 부르는 거쉬인과 어빙 벌린 그리고 듀크 엘링턴 등의 노래가 담겨 있다.
디스크 2는 순수 관현악곡들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페이톤 플레이스’ ‘시네마 파라디소’ ‘스타 워즈’ 등의 음악이 수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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