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도밍고나 파바로티에 견줄 바는 못되지만 내가 지금도 가사를 몽땅 외워 부를 줄 아는 오페라 아리아가 푸치니의 ‘토스카’(Tosca) 3막에서 카바라도시가 부르는 ‘별은 빛나건만’이다. 고등학생 때 음악감상실에서 스테파노와 델 모나코 그리고 코렐리 같은 왕년의 명테너들이 부르던 이 절묘한 아리아를 들으며 감격에 겨워하던 때가 엊그제 같기만 하다.
총살당하기 직전의 카바라도시는 연인 토스카에게 작별의 편지를 쓰다 말고 밤하늘에 뜬 별을 바라보며 읊조리기 시작한다. "별은 빛나고 대지에는 향기가 가득하네"라고 중얼대듯 시작되는 아리아는 "오, 돌치 바치, 오 랑귀데 카레체"하면서 토스카의 달콤한 키스와 나릇한 애무를 그리워하는 탄식으로 변한다.
카바라도시가 이어 "사랑의 꿈은 영원히 사라지고 나는 절망 속에 죽나니. 내가 이토록 사랑해본 적은 다시 없어라"하면서 "으흐흐"하며 통곡할 때면 듣는 내 가슴도 찢어지듯 슬퍼진다. 매우 짧지만 청명하니 아름답고 소스라치게 가슴 아픈 아리아에서 나는 노래에 반한 뒤로 가사를 열심히 외워가며 마치 카바라도시라도 된 기분으로 부르곤 했었다.
’토스카’는 아마도 전 세계 오페라 팬들의 탑 파이브 안에 드는 인기작품일 것이다. 오페라 전곡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들일지라도 1막의 카바라도시의 아리아 ‘오묘한 조화’와 2막에서 토스카가 부르는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및 제3막의 ‘별은 빛나건만’은 한두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1900년 로마에서 초연된 이래 지금까지 끊임없이 공연되고 있는 ‘토스카’는 철저한 멜로물 비극이다. 사랑과 질투, 섹스와 새디즘, 증오와 배신, 그리고 피와 살인, 종교와 예술 등 야단스레 통속적인 신파극의 모든 요소를 갖춘 데다가 곡조가 감상적이리만큼 감정적이요 아름답고 향기로워 매료당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다. 그래서 많은 평자들은 이 오페라가 관객 취향에 아첨하는 작품이라면서도 바로 그 점을 ‘토스카’의 장수의 비결로 지적하고 있다.
1800년 로마가 무대인 ‘토스카’의 주요 인물은 정열적이긴 하나 질투와 소유욕이 너무 강해 옹졸하게까지 보이는 프리마도나 토스카와 우직한 자유사상가로 사랑에 눈이 멀어 좀 멍청하게 보이는 화가 카바라도시 및 잔인하고 간교한 호색한인 경시총감 스카르피아 등 3인. 물론 그 중에서도 주인공이야 토스카와 카바라도시지만 진짜로 개성적인 인물은 스카르피아다.
원래 좋은 사람보다는 악인이 더 매력적이게 마련이지만 스카르피아는 소름끼치도록 가증스러우면서도 매력적인 데가 있다. 스카르피아는 신을 거역하면서까지 자기 욕심을 채우는 자로 그가 1막 마지막에 성당 성가대가 신께 감사 드리는 노래 ‘테 데움’을 부르는 가운데 카바라도시를 처치하고 토스카를 차지하겠다면서 "토스카여 너는 나로 하여금 신을 잊게 했다"고 기고만장해 하는 모습은 가공스러울 지경이다.
스카르피아는 또 부드러운 항복보다 폭력적인 정복에서 더 강렬한 쾌감을 느끼는 새디스트. 이 새디스트는 맛이 각기 다른 포도주처럼 여인들도 마음껏 즐기겠다면서 토스카를 겁탈하려다 그녀에게 칼맞아 죽는다. 그리고 카바라도시는 총살당하고 토스카는 높은 성채에서 투신자살하고 만다.
토스카 하면 마리아 칼라스다. 토스카는 칼라스가 21세 때인 1942년 아테네서 처음 노래한 이래 44세 때인 1965년 런던의 코벤트 가든서 마지막으로 노래 부르기까지 무려 40회 가까이 공연한 칼라스의 분신과도 같은 인물이다.
’토스카’ 최고의 음반으로 꼽히는 EMI Classics의 1953년도 CD를 들어보면 칼라스의 강렬하고 드라마틱하면서도 감미롭고 무르익은 음성에 가슴이 절로 뛴다. 밀라노에서 이 음반을 1997년에 디지털로 재생했는데 카바라도시역은 스테파노가 그리고 스카르피아역은 티토 고비가 노래한다. 스테파노의 ‘별은 빛나건만’은 내가 처음 들은 카바라도시의 노래인데 지금 들어도 그 높낮이가 풍부한 성량과 부드러움과 아름다움 그리고 강렬함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음성을 듣자면 한숨마저 새어나온다.
로스앤젤레스의 2000~2001년도 시즌 마지막 작품 ‘토스카’가 현재 뮤직센터서 공연 중이다. 토스카역은 이 역으로 에미상을 받은 캐서린 말피타노(53)가 맡아 열창하나 열정이 모자라고 카바라도시역의 리처드 리치는 풍성한 성량을 지녔는데 섬세함이 아쉽다. 또 스카르피아역의 탐 폭스도 무게 있는 목소리지만 노래솜씨가 생김새 보다 못하다.
12·15·19·22·24·27일(하오 7시30분), 17일(하오 1시), (213)365-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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