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눈을 하고 바라보는 젤소미나와 몇 안 되는 구경꾼 앞에서 자신의 넓고 우람찬 가슴을 묵은 쇠사슬을 끊어버리던 떠돌이 차력사 잠파노 앤소니 퀸이 죽었다. 노년을 보내던 로드아일랜드에서 86세로.
천수를 다했건만 내가 그의 사망 뉴스를 듣자마자 가졌던 반응은 “앤소니 퀸도 죽나” 하는 놀라움이었다. 6피트 2인치 키에 오래되고 단단한 술통 같은 체구와 커다란 얼굴 그리고 걸직한 음성과 웃음소리를 지녔던 퀸(잘 생긴 소도둑 같은 인상이다)은 생명력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퀸을 본 것은 세실 B. 드밀이 감독하고 게리 쿠퍼가 주연한 웨스턴 ‘평원인’(The Plainsman·1936)에서였다. 퀸은 여기서 머리에 깃털을 꽂은 샤이엔 인디언으로 나왔었다. 그런데 퀸과 드밀 간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1938년 퀸이 23세 때 그는 드밀의 대하극 ‘해적’(The Buccaneer)에 주연한 이블린 키스와 데이트를 했는데 이를 안 드밀은 키스에게 “튀기와 다시는 함께 다닐 생각을 말라”고 호통을 쳤다. 그런데 퀸은 이로부터 몇 달 후 역시 배우로 드밀의 양녀였던 캐서린과 결혼, 할리웃의 임금이었던 드밀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놨다.
퀸은 생애 150여편의 영화에 나오면서 권투선수, 에스키모, 모하메드, 화가, 교황, GI, 웨스턴 건맨, 마피아, 오나시스, 투우사, 바라바, 농부, 특공대원, 곱추 등 온갖 국적의 다양한 역을 맡아했다. 퀸이 배우가 된 것은 멕시코 치와와에서 아이리시 아버지와 멕시칸과 아메리칸 인디언 피가 섞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멕시코와 미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무소속감 때문이었다. 퀸은 “에라 이럴 바엔 차라리 세계시민이 되자”며 배우가 됐는데 그래서 그는 연기가 자기 국적이라고 말하곤 했다.
말론 브랜도의 형으로 나온 ‘혁명아 사바타!’(Viva Zapata!·1952)와 고흐역의 커크 더글러스에 맞서 고갱역을 한 ‘생의 욕망’(Lust for Life·1956)으로 오스카상 조연상을 탄 퀸은 오스카 주연상 후보로는 걸작 ‘희랍인 조르바’(Zorba the Greek·1964)로 딱 한번 올랐었다. 한국인 팬들에게는 ‘혈과 사’ ‘길’ ‘노트르담의 곱추’ ‘흑란’ ‘건힐의 마지막 열차’ ‘검은 초상’ ‘나바론’ ‘25시’ 및 ‘산타 비토리아의 비밀’ 등이 낯익은 영화들일 것이다.
그의 무수한 영화 중에서 지금까지도 나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페데리코 펠리니의 흑백명화 ‘길’(La Strada·1954)이다. 페데리코 펠리니가 자기 아내 줄리에타 마시나를 써 만든 이 영화는 무지막지한 떠돌이 차력사 잠파노와 자기를 짐승처럼 취급하는 잠파노를 짐승의 충심으로 사랑하는 젤소미나의 비극적 사랑의 이야기다. 무언극을 하다시피 하는 마시나와 퀸의 연기가 경이스러운데 뒤늦게 잠파노가 죽은 젤소미나의 사랑을 깨닫고 굵은 눈물방울을 떨구는 라스트신은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퀸 자신은 ‘희랍인 조르바’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농부 조르바와 퀸이 모두 아들을 잃은 쓰라린 기억 때문이다. 1941년 3월15일 퀸은 아내와 3세난 아들 크리스토퍼와 함께 로스펠리즈의 장인 집을 방문했었다. 그런데 크리스토퍼가 혼자 집을 빠져나와 옆에 사는 코주부 명코미디언 W.C. 필즈 집에 들어가 연못에 빠져 죽었다. 퀸과 캐서린은 충격이 너무 커 장례식에도 참석 못했는데 그 뒤로 아들의 죽음을 단 한번도 거론 안 했던 퀸은 아들이 죽은 지 40년 후 브로드웨이서 ‘희랍인 조르바’를 공연하며 비로소 ‘그 아이는 죽었어’라는 대사를 통해 크리스토퍼의 죽음과 화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기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넘어와 이스트 LA에 정착한 퀸은 독학을 하다시피 했는데 배우 외에도 작가, 화가, 조각가, 음악가, 부흥사로도 실력을 발휘한 다재다능한 사람으로 서울서도 조소전을 가진 바 있다. 그러나 그가 연기만큼 사랑한 것은 여자였다. 모두 세번 결혼하고 5명의 여자에게서 13명의 자녀를 본 퀸은 작년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여자들을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고백했었다. 그가 염문을 뿌린 여배우들로는 캐롤 롬바드, 모린 오하라, 리타 헤이워드, 잉그리드 버그만과 버그만의 딸 피아 린드스트롭 등 여러 명. 배우 외에 동네여자, 배우지망생 및 분장사 등 동침한 여자들은 하늘의 별만큼 많다.
퀸은 지난해 9월 새미 소사 등과 함께 히스패닉 유산상을 받았다. 그때 퀸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제서야 나를 발견하고 재생한 것 같다”고 말했었다. 재생과 함께 온 죽음이지만 그의 인생은 술과 여자와 예술의 멋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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