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을 안고 사회속으로 뛰는 ‘또순이’
▶ 힘들어도 가족격려에 살맛... ‘반란, 수다’는 사치
한국에선 지금 드라마 ‘아줌마’ 열풍과 함께 홀로 서기를 시도하는 아줌마들의 반란이 시작됐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아줌마’란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고, 염치가 없으며, 자신을 전혀 꾸미지 않아 더 이상 여자로 보기 힘든 중성적 이미지로 비하돼 왔다. 뽀글거리는 파마머리에 몸뻬바지, 버스에서 빈자리를 발견하면 온 몸을 던져 차지하는 사람, 시장에선 극성스럽게 값을 깎고 큰 소리로 수다 떨며 스트레스를 푸는 무례한 중년 여인들. 그런데 LA의 아줌마들에겐 이런 한국 아줌마의 이야기들이 사치스럽게 들린다. 가정과 육아, 직장과 일터에서 바쁘게 이민생활 25시를 살아가는 이곳 아줌마들은 무례하게 수다떨 여유도, 홀로 서기를 시도할 시간도 없다. LA의 또순이 아줌마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LA의 한인 아줌마들은 대다수가 ‘일하며 밥하는 아줌마’들이다.
아침 6시 기상. 아침식사 마련, 때로는 도시락 싸기, 출근하면서 자녀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직장에 도착하면 8시30분. 숨돌릴 겨를도 없이 업무가 시작되고 6시 퇴근과 더불어 애프터스쿨에서 아이들을 픽업, 저녁 반찬거리 걱정을 하며 마켓에 들러 집으로 향한다.
가족중 한 사람이 아프기라도 하면 비상. 회사에서 발만 동동 구르다가 상사의 허락을 받고 쏜살같이 병원으로 달려가는 직장 여성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스몰 비즈니스를 하는 여성들은 그마저 여의치 않아 가슴을 태운 경험이 누구나 한두 번씩은 있다.
결혼한지 14년, 은행근무 경력 4년의 마연순씨는 챙겨야 할 식구가 남편과 초등학생 자녀 둘이다. 매일 아침 전쟁을 치르면서 출근을 하고 퇴근하면 집안 일에 치여 제대로 쉴 시간이 없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여자가 다 그렇죠. 바쁘고 힘들지만 보람 있어요"라고 말하는 마씨의 든든한 후원자는 남편. 비교적 근무시간이 자유로운 남편이 오후에 아이들을 태권도장에 데려가는 등 아이들과 시간 보내기를 자청한다고.
"직장도 소중하지만 가정이 안정돼야 일할 맛이 나죠. 직장과 가정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사회는 더 이상 아니길 바랍니다"라는 마씨의 스트레스 해소는 신앙생활이다. 주일은 물론 새벽기도를 다니고 수요예배, 금요예배로 빠지지 않고 다니고 있다.
직장생활 17년의 헬렌 박씨는 첫째가 백일을 넘기며 여행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대학 3학년이 됐다며 숨가쁘게 살아온 지난날들을 회상한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 에어컨도 없는 찜통 같은 스쿨버스에서 더위에 지쳐 파김치가 된 채 사무실로 터덜터덜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 짝이 없었어요" 샤워도 못한 채 애프터스쿨에 가거나 사무실 구석에 앉아서 어머니 퇴근시간만 기다렸던 아이들. 업무가 늦게 끝나거나 휴일 근무를 해야 하는 날이면 식사 준비할 시간조차 없어서 맥도널드 등 패스트 푸드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고 한다.
"12학년인 둘째가 운전을 하면서 훨씬 편해졌어요. 아이들 픽업 부담을 덜면서 알뜰 샤핑할 시간이 생겼지요"고 말하는 박씨는 "지금도 아이들은 엄마는 일을 너무 많이 한다고 투덜대고 정크푸드만 먹어서 키가 제대로 크지 못했다고 투정한다"는 박씨는 그래도 어머니를 마음속으로 존경하는 아이들이 고맙기만 하다.
"이민 와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해 친구 어머니들만큼 영어는 못하지만 항상 우리 어머니는 열심히 노력하며 생활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시부모를 도와 마켓을 운영하다가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5개월째인 유지애씨는 시부모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두 분의 도움이 없었다면 직장생활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라는 유씨는 직장에도 가정에도 최선을 다해 "딸이 커서 ‘엄마같이 살진 않을 거야’라는 말을 듣지 않는 어머니 상을 심어주고 싶다"고 한다.
쉽지 않은 것이 고부관계라지만 직장생활을 권장하는 시부모와의 동거는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캘리포니아주 고용개발국에서 14년간 근무하다가 최근 재활원으로 자리를 옮긴 헬렌 임씨는 2남1녀를 둔 직장여성. 첫째가 5개월이 될 무렵부터 시부모와 함께 살면서 육아문제가 해결돼 직장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14명의 부하직원을 관리하는 수퍼바이저로 승진하면서 집에서까지 잔업을 처리해 야할 정도로 업무량이 폭증하자 가족들에게서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할 무렵 셋째 해산을 위한 장기휴가를 받고 자신의 삶을 돌아봤다.
"엄마의 손길 없이도 훌쩍 커버린 아이들이 왠지 낯설기도 하고 지금부터라도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늘려야겠다고 판단해 휴가후 평사원으로 일하기를 자청했다"고 한다.
결혼하면서 풀타임 가정주부로 집에 들어앉았던 여성들도 자녀가 학교에 들어갈 시기가 되면 대부분 직장을 찾는다. 그러나 자신의 커리어만큼이나 중요한 건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 이들에게 커다란 힘이 되는 건 뭐니뭐니해도 가족들의 따뜻한 격려와 사랑 표현이다.
뽀글거리는 파마머리와 몸뻬 대신 단발 생머리에 편안한 바지를 즐겨 입는 것 외엔 LA 아줌마들이 한국 아줌마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LA아줌마들에겐 ‘아줌마 반란’을 일으킬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른 점일까. 일하러 다니는 건 당연한 일이고, 스트레스 해소는 꿈도 꿔보지 못하는 순진한 LA 아줌마들도 그러나 밥 안 할 자유, 빨래 안 할 자유, 밤에 외출할 자유, 내 보약 먼저 챙겨먹을 자유를 찾는 날을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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