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년내내 음지찾아 불우이웃 돕는 ‘아름다운 사람들’
한 해가 저물어가면 자선냄비 벨소리와 더불어 훈훈한 온정 모으기 행사가 시작되고 각 교회나 단체, 직장별로 불우이웃돕기 성금전달 및 양로원 위로방문이 줄을 잇는다. 성탄절을 전후해 본격화되는 ‘온정 모으기’뿐 아니라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일년 내내 묵묵히 홈리스들을 돌봐주는 이들도 있고 매월 작은 정성을 모아 꾸준히 불우아동을 후원하는 직장동료모임도 있다. "돕는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소외된 자에게 사랑을 나누고 사회의 음지를 돌아보며 자신을 내보이려는 마음이 아니라 베푸는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아름다운 마음의 소유자들이다.
어두컴컴한 새벽 싸늘한 공기속에 박원걸(62), 박지선(56)씨 부부는 빵과 커피, 바나나 상자를 차에 싣고 LA다운타운으로 향한다. 매주 금요일은 ‘축복 받는 날’. 4가와 LA 스트릿에 도착할 무렵이면 자칭 ‘반장’이라고 나서서 질서정연하게 줄을 세우고 기다리는 홈리스 한 사람이 손을 흔들며 박씨 부부를 반긴다.
홈리스 급식을 시작한지 15년. 처음엔 홈리스들이 무서워 주머니에 지갑도 지니지 않은 채 급식장소로 갔지만 이내 자신의 편견에 부끄러워졌다고 한다. "오랜 세월 꾸준히 무료급식을 해왔더니 홈리스들의 내면과 속사정을 짐작하게 됐다"는 박씨는 이들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건 돈이나 음식보다도 ‘사랑이 깃들인 관심’이라고 강조한다.
초창기엔 사과를 나눠주다가 이빨이 상해서 씹지 못하는 그들을 보고 바나나로 바꾸는 등 세심한 배려를 기울이는 박씨는 젊은 시절엔 무료급식 반대론자였다. "노동의 대가없이 공짜로 먹을 것을 얻게 되면 더욱더 게을러진다"고 비난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무료급식으로 그들에게 관심을 표현하고 한끼의 식사를 함께 나누는 기쁨을 맛보고 있다.
홈리스들에겐 집이 없다는 것(Homeless)보다 더욱 견디기 힘든 게 희망이 없다(Hopeless)는 것이다. LA다운타운 ‘미션하우스’ 건너편에 있는 ‘희망의 집’.
한 때는 마약중독자들이 우글거리던 사창굴이었지만 96년 4월 일본계 소유주가 이 집을 미션하우스에 기부하면서 홈리스들을 위한 병원으로 변모했다. 이 병원에는 설립 당시부터 한인치과의료선교원(Korean American Christian Dental Mission)의 치과의사들이 의료봉사를 나오고 있다. 조원재 회장을 비롯해 토마스 리씨, 김경수씨, 이청정씨, 박태홍씨, 신우천씨, 나도명씨, 이병중씨. 바쁜 와중에도 매월 1-2회씩 이 병원에 와서 홈리스들의 치아를 정성껏 돌봐주며 의료봉사를 한지도 어느덧 4년이 흘렀다.
해외선교를 위해 창립된 단체인 치과의료선교원의 회원중 한 명이 저녁예배길에 강도를 만났는데 그 당시 강도의 소행이라기 보다는 허기에 찌들은 홈리스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을 협박, 돈을 뜯어내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우리 이웃부터 먼저 돌보자’란 생각으로 국내에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을 찾다가 ‘희망의 집’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회원들의 열의와 정성으로 시작은 했지만 시설과 장비 없이 진료하긴 어려운 일.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처럼 홀리 크로스 메디컬 플라자에서 병원을 개업하고 있는 치과의사 토마스 리씨가 지진으로 인해 붕괴된 병원 재건축공사 현장에서 진료 의자와 기구들을 헐값에 사들여 ‘희망의 집’에 기부했다.
"병원에서 치료받는 홈리스들 대부분이 흑인입니다. LA폭동을 겪고나서 흑인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있었는데 홈리스들을 치료하면서 그들의 고통과 역사를 배우고 있습니다"
스스로도 치료를 받은 셈이라고 표현하는 이씨는 치아 전체가 상한 홈리스에게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틀니까지 해준 적도 있다.
직장동료 4명이 둘러앉아 점심식사를 하다가 우연히 화제가 된 ‘버려진 아이들’. 자식을 키워본 이들에겐 매스컴에 보도되는 버려진 아이들은 참으로 가슴 아픈 존재였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매월 1인당 20달러씩 모아 한국의 고아원을 후원한지 벌써 3년도 넘었다. 돌봐줄 사람이 없는 한 아이에게 자기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만큼 물질적, 정신적으로 후원자가 되고 있는 이들에게 날아드는 감사의 편지 한 통은 그야말로 커다란 기쁨이다.
벨 양로병원 소셜워커 루스 타버트(52)씨에 따르면 "연말까지 교회와 단체, 어린이 집의 방문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있다. 예년에 비해 물질적인 기부는 줄어들고 있지만 그래도 잊지않고 양말과 꽃신, 음식 등 정성어린 선물을 전달하러 찾아와주는 이들을 위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감사공연을 준비했다"고 한다.
92세의 노령에도 50년을 한결같이 불우이웃돕기 자선냄비앞에서 종을 울리는 장후자 할머니도 연말이면 잊을 수 없는 얼굴. 한인구세군나성영문(대표 이용우·이설주 사관)도 "성금을 내는 손길도 필요하지만 자선냄비 옆에서 종을 울리는 자원봉사자라도 많았으면 좋겠다"고 한인들의 관심을 호소했다. 한 해동안 바쁜 생활로 잊고 살았던 불우이웃을 위해 벨소리가 들리는 자선냄비 앞을 그냥 스치지 않는 연말연시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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