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8.15 이산가족 교환방문에 미주 실행민들 애타는 기대감
▶ 50년만에 동생 생존 확인 신원노출 꺼려 상봉 기피
이산가족 상봉이 공식화되기만 손꼽아 기다려온 서선덕(73) 재미이북도민회연합회장은 생사확인을 하고도 아직 만나지 못한 남동생이 북한에 있다.
98년 중국에 거주하는 여동생들에게 남동생이 북한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들은 그는 중국의 안내원을 통해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돌아온 답신은 "찾아주는 건 고맙지만 신원을 숨기고 살고 있으니 죽은 걸로 알고 더 이상 찾지 말라"였다. 서회장은 "북한에서 잘못 노출되면 정치수용소에 끌려가 철저한 감시를 받으며 하루에 1끼밖에 못 먹고 중노동을 합니다. 신원을 감추고 살 수밖에 없는 동생의 고통을 생각하며 보고 싶어도 참고 있습니다. 앞으로 문호가 개방되면 상황이 바뀌겠죠"라며 한숨을 지었다.
전홍진(65)씨는 아직도 개성에서 보낸 어린 시절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한국전 당시 16세였던 그는 38선 이남인 개성은 괜찮다는 말만 믿고 부모와 형제를 남겨둔 채 혼자서 서울로 내려와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미국으로 이민, 이를 악물고 살았다.
보고 싶은 가족들의 모습을 가슴에 담고 살던 전씨는 92년 한 장로의 도움으로 옛날 개성집 주소에 편지를 보낼 수 있었고 몇 개월 뒤 답장을 받았다. 그해 북한을 방문, 동생을 만난 전씨는 50년만에 만난 형제인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며 그냥 부둥켜안고 울기만 하다가 돌아왔다고 한다. "만나기도 전에 남동생 하나가 영양실조로 죽었다는 편지를 받고 못 입고 못 먹고 하루하루 연명하는 이들 생각에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아픈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며 울분을 토했다.
전 함북도민회 방만춘(73) 회장은 어머니와 누나, 여동생 3명을 북에 두고 19세에 서울로 유학 왔다가 6.25를 맞아 이산가족이 됐다. "미국에 이민온 후 누이동생과 누님을 찾으려는 시도는 여러 번 했지만 먼저 가족상봉을 했던 이들로부터 세포위원장에게 뇌물도 주어야 하고 방문 때마다 북의 가족들이 돈을 요구한다는 경험담을 듣고 돈 때문은 아니지만 혹시나 북에 있는 가족들이 나로 인해 불이익을 당할까봐 차라리 찾지 않기로 했다"며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았다.
평양 출신 오영식(64)씨는 지난 88년 적십자사를 통해 평양근교에 거주하는 누나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번 만나고 나면 다시 안 갈 수가 없다는 오씨는 그동안 8차례 북을 방문했지만 아직 금강산도 가보지 못했다.
"가족과 함께 있고 싶어서 북에 왔는데 내가 왜 혼자 관광을 다니냐"며 오열을 터뜨리는 오씨는 갈 때마다 다녀간 이후 변화를 조심스레 묻곤 한다며 혹시 자신 때문에 피해를 보지 않나 걱정이 돼서 미국으로 돌아오면 노심초사 그들의 편지만 기다린다고 했다.
"100달러가 월급 50개월치이고 50달러면 돼지 4~5마리를 살 수 있는 북한실정을 생각하면 우리 생각대로 도움을 주면 안되죠. 한번 방문하고 거액을 전하느니 그 비용으로 북을 계속 방문하는 게 훨씬 그들에게 도움이 됩니다"고 밝혔다.
북한을 자주 왕래하던 오씨는 작년 4월 시카고에 거주하는 80세 노인 이모씨에게 북을 떠날 때 임신 6개월이던 전처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해외동포위원회를 통해 전처의 주거지를 알아냈지만 아들은 열살 때 죽었고 전처는 재혼했다가 사별한 후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오씨는 우선 북한에 한 번 가보자며 이씨를 데리고 방북, 기회를 봐서 소식을 전하자 "이제 와서 어떻게 하겠는가마는 그래도 죽기 전에 한 번 보고 싶다"는 이씨를 위해 자리를 마련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재미동포 서부연합 김현환(54)씨는 지난 86년부터 이산가족찾기 신청서를 접수, 방북을 주선해 오다가 89년 황해남도 백천에서 농사를 짓는 외삼촌과 큰 고모를 만났다. "고모에게 아들이 하나 있다. 생전 처음 만나는 조카인데 멀리서 보니 돌아가신 아버지 모습이 떠오르더라"는 김씨는 핏줄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실감했다고. 아직도 한국 김포에 거주하는 모친 신씨는 외삼촌이야기만 나오면 눈시울을 적시지만 "그래도 우린 1년에 네번 편지왕래라도 하지만 생사확인도 안된 채 이번이 아니면 영영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는 이들도 있다"며 그런 사람들에게 기회를 양보하기 위해 8.15 교환 방문단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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