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과 죽음을 노래한 서사시
▶ 워싱턴 문인회
2023년의 노벨 문학상은 노르웨이의 소설가이며 극작가인 욘 포세(Jon Fosse)가 수상하게 되었다. 그는 1959년 해안 도시 하우게순(Haugesund)에서 출생하였다. 대학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하였으며 노르웨이 인구의 10%가 사용하는 뉘노르스키(Nynorsk)어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40여 편의 소설과 시, 동화, 산문을 썼고 40여 편의 희곡을 썼다. 그는 <인형의 집>의 작가 헨리 입센과 더불어 서양 연극의 발전에 큰 공을 세웠으며 노르웨이 사람으로 네 번째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뉘노르스키 언어로 쓴 작가로서는 처음 노벨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 <아침 그리고 저녁(Morgen und Abend)>(2000)은 삶을 노래하는 1부와 죽음을 서술하는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에서는 홀멘이라는 작은 섬에 어부인 남편 올라이가 직접 지은 아담하고 예쁜 집에서 딸과 함께 살고 있는 부부의 부산한 아침으로 시작된다. 외로운 섬 생활을 이겨내라고 운명처럼 신이 첫딸을 보내준 후 오랫동안 둘째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자애로운 신에게 희망을 걸며 둘째 아이를 기다려오던 남편 올라이가 산파의 도움을 받으며 출산의 고통을 이겨내고 있는 아내 마르타의 비명을 들으며 그녀의 안전을 걱정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출산 중에 큰 고통을 받은 어머니를 기억하며 올라이는 그런 불행한 일이 매정한 신에 의해 그의 아내와 아이에겐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불안에 떤다. 올라이의 내부적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가 원하고 기다리던 사내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마침내 들린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아 장차 어부가 되어 가계를 이어 갈 요한네스가 출생한 것이다. 마르타와 올라이의 세계는 마그마와 요한네스로 완성되었다.
2부의 시작은 아기였던 요한네스가 이제 노인이 되어 있다. 일곱 아이를 낳았던 아내 에르나가 먼저 세상을 떠났기에 그녀를 그리워하며 썰렁한 침대에서 하루 할 일을 생각한다. 아침마다 되풀이되는 일상에 대해 불평하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억지로 일어난다. 그날따라 다른 날과 달리 몸이 가볍고 무게가 느껴지지 않으며 경쾌하다. 평상시와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보통날과 다르다는 기분이 든다. 산책길에 나선 요한네스는 어릴 적 서로 머리를 잘라주던 친구 페테르의 집을 지나치며 세상을 먼저 떠난 친구를 그리워하며 슬퍼한다. 배를 타기 위해 해변으로 가는 길목에서 죽은 친구 페테르를 발견한다. 둘은 서로 안부를 물었고 페테르는 요한네스가 올 줄 알았다며 그를 반긴다. 길게 자란 페테르의 머리를 잘라주기로 약속하며 꽃게를 사가던 이미 세상을 떠난 노처녀 페테르센에 대해서 대화를 나눈다. 페테르와 대화 도중 이따금 요한네스는 페테르가 죽었다는 의식을 하지만 더 이상 깊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젊은 시절 요한네스가 사랑의 편지를 보냈던 노처녀 페테르센과의 만남도 스쳐 가고 페테르와 요한네스의 아내가 된 마르타와 에르나와의 첫 만남도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막내딸 싱네가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서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냥 지나치자 요한네스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집에 도착한 싱네는 침대에 누워있는 이미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아버지를 발견한다. 뒤늦게 도착한 의사는 요한네스의 사망을 알린다. 요한네스는 친구 페테르의 도움을 받으며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는 그곳, 사랑하는 건 거기에 다 있다는 그곳으로 가기 위해 배에 오른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삶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반응과 기쁨이 담긴 탄생을 노래한 아침과 자신의 의지대로 일생을 살아온 요한네스의 흔적을 돌아보며 그가 맞이하는 죽음을 저녁으로 서술하였다. 삶과 죽음은 모든 이의 화두이기에 노벨상 수상 작가는 어떤 식으로 이 과제를 풀어나갔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우선 평범한 어부의 삶을 고깃배라는 매개체를 통해 다른 세상으로의 통로를 바라보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삶의 마지막을 두려움보다는 덤덤하게 일상을 보내듯 서술한 점도 독자들에게 안정감을 줄 듯하여 마음에 들었다. 이승에서의 시간을 돌아보며 이 세상을 떠난 슬픔과 절망을 달래면서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는 준비를 한다면 죽음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될 것이다. 작품 전체에 문장부호인 마침표 없이 소수의 쉼표만을 사용했기에 한 편의 긴 시를 읽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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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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