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로잘린 카터 여사가 타계했다. 향년 96세. 호스피스 케어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나온 지 이틀만이다. 현재 99세인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먼저 올해 2월부터 치료를 중단하고 집에서 호스피스 돌봄을 받기 시작했는데 뜻밖에도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사망 소식과 함께 로잘린 여사의 업적을 기리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통령 직에서 물러난 후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남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미국 퍼스트레이디의 자리와 역할을 오늘의 모델로 확립시킨 주인공이며 평등법과 여권운동, 정신질환, 인권문제에 집중하여 많은 업적을 남겼다는 치하가 잇달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로잘린 여사를 미 역사상 최고의 대통령배우자로 꼽히는 엘리노어 루즈벨트 이후의 가장 훌륭한 퍼스트레이디였다고 회고했다.
겸손하고 조용해 보이지만 상당히 정치적이었던 로잘린 카터는 ‘철목련’(steel magnolia)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캠페인을 진두지휘하여 남편을 조지아주 시골에서 백악관에 입성하도록 만든 일등공신이다. 사람 판단과 국제정세에 대해 날카로운 혜안을 가졌던 아내를 카터 대통령은 누구보다 신뢰하고 의지했으며, 그의 요청으로 영부인을 각료회의와 국가안보 브리핑에 참석시켜 보수적인 정가에 물의를 일으켰다. 당시 타임지는 그녀를 미국에서 두 번째 파워를 가진 사람이라고 칭했고, 뉴스위크는 ‘미시즈 프레지던트’라고 썼으며, 참모들은 자기들끼리 ‘공동 대통령’(co-President)이라고 불렀다.
1977년 퍼스트레이디로서는 최초로 미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중남미 7개국을 순방, 권위적인 독재자들을 부드럽게 압도하며 인권문제를 논의한 것이 주요 업적으로 꼽히고, 카터의 재임 중 가장 큰 성과였던 1979년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캠프 데이빗 평화협정을 성사시킨 것이 바로 로잘린 여사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 로잘린 여사의 큰 업적은 미국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이었다. 그 전까지 영부인이란 백악관의 호스티스 역할이나 하던 애매모호한 신분이었다. 공무원도 아니고, 선출된 것도 아니며, 정확한 업무나 보수도 없이, 뒤에서 엄청 많은 일을 하지만, 심심하면 언론과 국민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자리, 이 영부인 신분을 공식적인 ‘직책’으로 바꿔놓은 사람이 로잘린 카터다. 그녀는 백악관 이스트윙에 최초로 영부인 집무실을 만들었고, 18명의 유능한 보좌진을 두었으며, 매일 아침 브리프케이스를 들고 출근했다.
그렇게 ‘퍼스트레이디 직’을 수행한 것은 4년밖에 안 되지만 그동안 그녀가 이뤄낸 일은 눈부시다. 우선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변화와 정부의 제도적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대부분의 미국인 가정은 정신병을 쉬쉬하고 터부시했는데 이를 ‘장애’의 범주에 넣어 정부가 멘탈 헬스케어를 지원하도록 대통령 정신건강위원회를 창설했고, 1980년 관련 법안이 의회에 상정되자 상원에 나가 증언했다. 퍼스트레이디가 의회에서 연설한 것은 엘리노어 루즈벨트에 이어 두 번째였으며, 로잘린 여사는 평생토록 이 문제에 헌신함으로써 크나큰 반향과 변화를 이뤄냈다.
그뿐 아니라 좀더 많은 여성을 요직에 임명하도록 남편을 압박해 이전 대통령들이 임명한 여성을 모두 합친 것보다 5배나 많은 수의 여성이 연방법원에 진출하도록 했고, 미 전국을 돌며 33개 주의회를 설득해 초등학교 입학 때 백신접종을 의무화하도록 했으며, 직장 내 나이 차별을 없애기 위해 정년퇴직제도의 완화를 추진했다.
그런 한편 패션과 스타일에 대해서는 가장 무관심했던 퍼스트레이디로 꼽힌다. 그저 평범하고 수수한 셔츠드레스를 즐겨 입었고, 심지어 대통령 취임무도회에서도 입은 드레스가 6년전 카터의 조지아 주지사 취임 때 입었던 드레스임이 밝혀져 일부 여성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그들의 후임인 화려하고 멋진 로널드와 낸시 레이건 대통령 부부와는 모든 면에서 대척점에 선 커플이었다.
백악관을 떠난 후 로잘린 여사는 남편과 함께 세계를 돌며 글로벌 헬스, 해비타트 집짓기 운동, 선거감독 등 국제평화를 위해 헌신했다. 1982년 카터센터를 공동 설립했고, 1987년 간병인(caregiver)이란 단어도 개념도 없었던 시절 모교인 조지아 사우스웨스턴 주립대학 내 ‘간병인을 위한 로잘린 카터 인스티튜트’를 세워 노인, 장애인, 만성질환자들의 전문케어에 초석을 놓았으며, 1991년 멘탈헬스 프로그램을 창설하고 이듬해 정신건강 국제여성지도자 회장이 되었다.
지난 20일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아내의 죽음에 대한 성명을 내고 “내가 이룬 모든 일에서 로잘린은 동등한 파트너(equal partner)였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은 77년 해로했지만 실제로는 어려서 옆집에 살았기 때문에 전 생애를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잘린이 태어날 때 간호사였던 카터의 어머니가 받았고, 며칠 후 세살배기 지미에게 갓난아기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1946년 카터의 해군사관학교 졸업 후 결혼하여 평생 서로를 지극하게 사랑했던 두 사람은 이제 잠깐 이별했지만 곧 다시 만날 것이다. 1949년 카터가 로잘린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이토록 오래 당신과 떨어져 있을 때는… 외롭고 막막해서 마치 살아있는 게 아닌 것 같소. 그저 당신이 곁에 있어서 다시 내가 살아나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다오.” 로잘린 여사는 이 편지를 죽는 날까지 손에 닿는 가까운 서랍에 넣어두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로잘린 카터 여사의 장례식은 29일 두 사람의 고향인 조지아주 플레인스의 자택에서 열리고 그 곳에 묻힐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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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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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기도 노벨상 추천합니다..
제대로된 정신이 영혼이 건강이 옳고름을 판단하고 제 역활을다할때 우리모두는 큰 혜택을받을수있고 죽어서도 크 박수를 받고 하늘에서도 큰 상금이 있을걸로 난 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