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LA필하모닉의 2023-24 시즌이 시작됐다. LA필에게 이번 시즌은 특별하다. 세계 굴지의 공연장인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이 완공되어 입성한지 20주년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 94)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프로그램들이 줄을 잇고 있다.
디즈니 홀은 1987년 월트 디즈니의 아내 릴리안 디즈니 여사가 5,000만 달러를 기부하여 건축이 시작됐다. 그러나 자금부족과 디자인에 대한 혹평으로 수년간 건축이 중단되는 등 난관이 많았고, 1996년 예술계의 구세주 일라이 브로드가 모금에 나섬으로써 비로소 건축이 재개됐다. 원래 석조(돌)를 사용하려던 외부 마감재가 금속재(스테인리스 스틸)로 바뀐 것도 사실은 자금부족 때문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지금은 그 우아하게 번쩍이는 돛의 물결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
신축 콘서트 홀인만큼 가장 큰 관심은 어쿠스틱이었고, 세계최고로 꼽히는 음향전문가 야수히사 토요타의 정교한 디자인으로 연주자와 청중의 귀를 완벽하게 만족시키는 공연장이 탄생했다. 프랭크 게리는 음향과 음질의 효과를 정밀하게 계산해 연주장의 바닥, 벽, 천정 패널, 객석의 의자에 모두 다른 목재를 사용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청중과 연주자가 최상의 교감을 이루는 친밀한 공간”이었다고 게리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완공을 앞두고 당시 음악감독인 에사 페카 살로넨에게 전화했어요. 내 머릿속 계산으로는 소리의 흡수재와 반사재가 제대로 상호작용할 것이란 확신이 있었지만 그래도 실제로 무대와 객석에서 소리를 들어보고 싶어서 악기 연주를 부탁했지요.”
그때 불려나온 사람이 마틴 샬리포 악장. 그가 지휘자 포디엄 자리에 서서 처음 연주한 음악은 바흐의 무반주 파르티타였다. 황량한 공사장 무대에서 울려 퍼진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며 게리는 살로넨과 함께 손을 잡고 울었다고 회상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음향효과에 자신마저 놀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2003년 10월23일 문을 연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은 곧바로 LA의 명물로 등극했고, 전 세계 수많은 연주자와 오케스트라들이 갈망하는 꿈의 공연장으로 꼽혀왔다.
지난 5일 오프닝 갈라는 ‘프랭크 게리를 축하하며’라는 제목으로 재즈음악가 허비 행콕, 무용가 루신다 차일즈, R&B 가수 H.E.R.가 특별순서를 마련했다. 또 에사 페카 살로넨이 4년전 게리의 90세 생일 기념으로 작곡했던 ‘안개’(Fog)와 함께 이 무대에서 최초로 울려 퍼졌던 바흐의 파르티타 전주곡도 연주됐다.
디즈니 홀 20돌과 관련된 전시도 열리고 있다. 게리 건축사무소가 처음에 만들었던 수많은 모델 중에서 6개 모형을 보여주는 ‘모델링 사운드’(Modeling Sound) 전시가 디즈니홀 내 BP홀에서 오는 29일까지 무료로 열리고 있다. 또 게티 센터와 함께 만든 디지털 전시 ‘스컵팅 하모니’(Sculpting Harmony)는 누구나 접속(gehry.getty.edu)하여 150여개의 모델, 스케치, 사진과 함께 게리의 육성으로 건축과 디자인 과정의 스토리를 3D로 감상할 수 있는 재미있는 프로젝트다.
오는 24일에는 게리와 살로넨의 음악과 건축에 관한 대담이 열리고, 27~29일 살로넨이 게리를 위해 작곡한 팡파르 ‘티우’(Tiu)가 세계 초연되며, 11월 4~5일에는 토마스 아데스가 작곡한 ‘프랭크 게리를 위한 타워’가 구스타보 두다멜의 지휘로 미국 초연될 예정이다.
오프닝 갈라 다음날 열린 이번 시즌의 첫 콘서트는 영국의 첼로스타 셰쿠 카네 메이슨(Sheku Kanneh-Mason)의 무대였다. 셰쿠는 2016년 17세 때 BBC 영뮤지션 콩쿠르에서 흑인으로는 최초로 우승하여 음악계를 놀래켰고, 2018년 해리 왕자의 로열웨딩에서 축가를 연주한 이후 글로벌 스타가 된 첼리스트다. 그가 특별한 이유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희귀한 흑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가 들어도 단숨에 매혹되는 어마어마한 음악적 재능 때문이다. BBC 콩쿠르 우승곡인 쇼스타코비치의 첼로협주곡을 들어보면(유튜브에 있다) 17세라는 나이에 말도 안 되는 기량과 성숙도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적절한 비교가 될지 모르겠으나 18세의 임윤찬이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보여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 연주와 맞먹는 경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바로 그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콘첼토 1번을 지난 주말 셰쿠가 디즈니 홀에서 구스타보 두다멜의 지휘로 신들린 듯 연주했다. 30분 동안 독주 첼로가 거의 쉬지 않고 기관차처럼 폭주하는 이 협주곡을 그는 달인의 경지에 이른 연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모두 숨을 멈추고 음악 속으로 빨려 들어갈 만큼 강렬한 연주였다.
셰쿠는 작년 이맘 때 영국의 시티 오브 버밍햄 심포니(CBSO)와 함께 미국 투어를 하면서 이곳 디즈니홀 무대에 처음 섰었다. 그때 엘가나 드보르작, 혹은 쇼스타코비치 첼로협주곡을 기대했으나 하이든의 것을 연주하여 얼마나 실망했던지…. 그런데 1년 만에 다시 와 이렇게 갈증을 풀어주는걸 보니 앞으로 좀더 자주 그의 공연을 기대할 수 있겠다.
오는 12월 7~10일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주빈 메타 지휘로 슈만의 협주곡을 연주한다. 조성진도 이제는 거의 매년 LA필과의 협연이나 독주회 프로그램에 초대받는 스타 연주자가 되었다. 바라기는 임윤찬도 그렇게 LA 필의 레귤러가 되어 자주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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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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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대뷔 후 코로나로 공연장 문 닫았을 때 빼고 매년 꼭 초대 받음. 월트 디즈니 대 유행 후 첫 개장 오프닝 축하 콘서트도 조성진이 두다멜과. 그 때 레드 카펫도 밟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