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사우디 평화 협정 기류에 불안 느낀 이란 개입 의혹
▶ 외교 성과 내세우려던 美·사우디 ‘상황 주시’…전망 ‘불투명’
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가자 지구의 한 건물 위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로이터=사진제공]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군 간 무력 충돌에 레바논 무장세력 헤즈볼라까지 가세하면서 중동 정세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에 빠졌다.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아랍권 국가 간 화해 모드가 형성돼 가는 와중에 대형 악재가 터지면서 '중동 데탕트'가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헤즈볼라까지 가세…인명 피해 점점 늘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7일(현지시간) 새벽 이스라엘에 대대적인 로켓포 공격을 퍼부으면서 시작된 이번 무력 충돌은 8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교전 이틀째인 이날은 레바논에 기반을 둔 이슬람 무장세력 헤즈볼라까지 이스라엘 북부를 공격하고 나서 중동 전쟁으로 확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곳곳에서 공격과 교전이 벌어지면서 인명 피해는 극심하다. 현재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양측의 사망자 수가 700명을 넘어섰고, 다친 사람도 4천명이 넘는다. 교전이 계속되고 있어 인명 피해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하마스와 헤즈볼라 모두 이스라엘의 '앙숙'인 이슬람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지원을 받는다는 점에서 이번 공격의 배후로 이란이 지목되고 있다.
가지 하마드 하마스 대변인은 BBC 방송 인터뷰에서 이번 이스라엘 공격에 이란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았다면서 "이란은 팔레스타인과 예루살렘이 해방될 때까지 우리 전사들과 함께하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도 최근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이맘 호메이니가 시온주의 정권을 암으로 묘사했듯이, 이 암은 팔레스타인 사람들 손에 의해 확실히 제거될 것"이라며 "시온주의 정권은 죽어가고 있다"는 암시적 글을 남겼다.
◇ 이스라엘-사우디 해빙 모드에 이란 '훼방 놓기'
이란이 지원하고 하마스와 헤즈볼라가 행동에 나선 이번 공격은 미국의 주도로 이스라엘과 아랍권 국가 간 관계 정상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이스라엘이 이란과 적대적인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와 평화 협정을 맺으려 하자 '훼방 놓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2020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모로코 등 아랍권 국가와 관계를 정상화하는 '아브라함 협약'에 서명했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아브라함 협약'을 바탕으로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교 수립도 추진하고 있었다. 중동 지역의 안정을 꾀하는 동시에 내년 대선을 앞두고 외교적 성과를 만들려는 의지가 강했다.
이스라엘과 사우디 역시 수교에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사우디가 팔레스타인의 독립 국가 출범을 이스라엘과 국교 정상화의 전제로 요구하는 등 몇 가지 장애물이 있긴 했지만, 이르면 내년 초에는 합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왔다.
이란으로선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관리들과 지역 소식통은 하마스의 이번 공격이 "이스라엘이 안보를 원한다면 팔레스타인 문제를 무시할 수 없으며, 사우디와의 거래는 이란과의 '데탕트'를 좌절시킬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도 알자지라 방송에서 "당신들(아랍국가)이 (이스라엘과) 체결한 모든 정상화 합의는 이 분쟁을 종식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과 헤즈볼라의 의중에 정통한 한 인사도 로이터 통신에 "이번 공격은 이스라엘을 향해 기어가는 사우디와 양국 국교 정상화 및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라며 "팔레스타인이 이 방정식 바깥에 있는 한 이 지역 전체의 안전은 없다"고 말했다.
미 워싱턴 존스 홉킨스 국제대학원의 중동 분석가 로라 블루멘펠드는 하마스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 관계 개선 노력이 진전됨에 따라 자신들과는 무관한 상황에 직면했다는 인식 때문에 공격에 나섰을 수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하마스는 이스라엘과 사우디가 합의에 가까워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식탁에 앉을 자리가 없다고? 그러면 음식에 독을 넣자'고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직 미국 중동 외교관이자 현재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에 재직 중인 리처드 르바론은 "하마스 공격의 주요 원인은 아닐지라도, 이번 행동은 팔레스타인 문제가 정상화 협상에서 부차적 문제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사우디에 분명히 상기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 중동 안정 공들인 美·협상 당사자 사우디 '난감'
평화 협상의 중재자로서 공을 들여온 미 행정부는 이번 무력 충돌이 중동 데탕트에 찬물을 끼얹을까 우려하고 있다.
행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익명을 전제로 기자들에게 이번 분쟁이 이스라엘-사우디 정상화 노력에 미칠 영향을 추측하는 건 "시기상조"로 "하마스 같은 테러 단체가 그런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면서도 "그러나 그 과정은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사우디의 입장은 난처하게 됐다.
사우디 외무부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에 "확전 중단"과 "민간인 보호"를 촉구하면서 "왕국은 지속적인 (이스라엘의) 점령과 팔레스타인인들의 정당한 권리 박탈로 인한 폭발적 상황의 위험성을 반복적으로 경고해 왔다"는 성명을 냈다. 사실상 팔레스타인 편에 선 발언으로 볼 수 있다.
사우디-이스라엘 관계의 전문가인 아지즈 알가시안은 AFP 통신에 "이 성명은 사우디가 팔레스타인을 지원하는 대신 이스라엘과의 정상화를 우선시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런 상황은 사우디가 다시 전통적 역할로 돌아가게 했다"고 진단했다.
알가시안은 또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번 일을 '전쟁'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정상화 협상에 또 다른 장애물을 놓았다"며 "전쟁을 배경으로는 정상화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무력 충돌이 계속될 경우 기존에 이스라엘과 아브라함 협정을 맺은 아랍 국가들도 거리두기를 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국제위기그룹의 중동 책임자인 주스트 힐터만은 "아랍 국가들은 대중의 정성에 따라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해야 할 의무를 느낄 것"이라며 "이 모든 일이 벌어진다면, 이스라엘과 요르단,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의 냉랭한 평화처럼 이스라엘과 UAE 관계가 냉각되고, 최소한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의 어떤 종류의 거래도 지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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