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성간우주를 항해중인 ‘보이저’ 2호와 교신이 끊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미항공우주국(NASA)이 실수로 엉뚱한 명령어를 전송하면서 탐사선의 안테나 방향이 2도 가량 틀어져 46년 만에 처음으로 교신이 끊긴 것이다. 나사는 이를 바로 잡기 위해 계속 수정 명령을 보내고 초대형안테나로 신호를 포착하려 애쓰던 중, 2주 만인 8월1일 보이저 2호의 미세한 ‘심장박동’을 수신, 교신 재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쌍둥이우주탐사선 보이저(Voyager) 1호와 2호는 인간의 과학기술이 만든 가장 경이로운 물체다. 나사가 지금까지 쏘아올린 250여대의 우주탐사선 가운데 지구에서 가장 멀리까지 날아갔고, 가장 오래 탐사를 계속하고 있으며, 지금도 시속 3만5,000마일의 속도로 날아가면서 매일 신호를 보내오는 ‘현역’이다. 거의 50년전 테크놀러지의 산물임을 생각하면 이들과의 통신을 주고받기 위해 지구의 통신시설을 계속 업그레이드 하고 보이저 컴퓨터에 향상된 데이터와 인코딩 기술을 업데이트 시키는 등 과학자들이 벌이는 사투가 눈물겹다.
나사는 1970년대 후반에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 175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독특한 행성 정렬을 이룬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이를 이용한 ‘그랜드 투어’를 계획했다. 행성들 간의 중력도움을 이용하면 탐사선 하나로 4개 행성을 모두 방문할 수 있고, 해왕성까지 30년이나 걸리는 비행시간도 3분의 1로 단축할 수 있으리란 계획이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큰 도전이었고 무엇보다 예산부족이 큰 문제였다. 때문에 먼저 목성과 토성 탐사를 성공시킨 다음 천왕성과 해왕성까지 임무확장 예산을 받아내기 위해 2대의 보이저를 시차를 두고 각각 다른 궤적으로 발사했다. 하나가 실패할 경우 다른 하나가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리고 이 계획은 멋지게 성공했다.
1977년 8월20일 먼저 보이저 2호를 발사했고, 9월5일 보이저 1호가 발사됐다. 1호는 석달만에 2호를 앞질러 79년 3월에 목성을, 80년 11월에 토성을 통과했고, 그 위성들(이오, 가니메데, 칼리스토, 타이탄)까지 탐사하며 1만8,000장에 이르는 사진을 전송했다.
임무를 마치고 성간우주를 향해 나아가던 보이저 1호는 1990년 2월14일 그 유명한 ‘태양계 가족사진’을 촬영해 지구로 보낸다. 이 사진은 ‘코스모스’의 저자인 유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몇 년 동안 나사를 설득해 얻어낸 것이다. 반대가 상당했다. 카메라를 갑자기 돌리면 태양빛에 망원렌즈가 손상돼 고장을 일으킬 위험이 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딱 한번만 시도해보자는 그의 설득에 보이저는 지구에서 60억km 떨어진 해왕성 부근을 지날 때 카메라를 반대방향으로 돌려 멀어져가는 태양계 가족사진을 찍었다.
해왕성, 천왕성, 토성, 태양, 금성, 지구, 목성이 잡힌 사진 속에서 지구는 아주 작은 점, 거의 티끌처럼 보인다. “광활한 우주에 떠있는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함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세이건은 그의 책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저 점을 보라. 저것이 우리의 고향이다. 저것이 우리다.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아는 모든 이들, 예전에 삶을 영위했던 모든 인류들이 바로 저기에서 살았다. 우리의 기쁨과 고통들,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들, 이데올로기와 경제정책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아버지와 어머니들,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교사들, 타락한 정치인들, 모든 수퍼스타, 최고 지도자들, 인류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햇빛 속에 부유하는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승리와 영광이란 이름 아래, 이 작은 점 속의 한 조각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장군과 황제들이 흘렸던 저 피의 강을 생각해보라. 이 작은 점 한구석에 살던 사람들이, 다른 구석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그 잔혹함을 생각해보라. 얼마나 자주 서로를 오해했는지, 얼마나 기를 쓰고 서로를 죽이려 했는지, 얼마나 사무치게 서로를 증오했는지를 한번 생각해보라.” 읽을 때마다 전율이 이는 명문장이다.
한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항해자’로 불리는 보이저 2호는 목표했던 대로 목성과 토성과 그 위성들을 지나 태양계 마지막 행성들인 천왕성과 해왕성을 최초로 탐험하며 과학계에 엄청난 수확을 안겨주었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행성들의 사진과 구성물질, 고리의 모양 등 관측 정보들을 보내왔고, 해왕성의 거대위성 트리톤의 간헐천 등 활발한 지열활동도 관측했다.
보이저 1호는 2013년 9월에, 2호는 2018년 12월에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우주로 나갔다. 현재 지구로부터 각각 150억 마일과 124억 마일 떨어진 곳을 지나고 있는 두 보이저는 2030년께 탑재된 장비들이 작동을 멈추고 지구와의 교신도 완전히 끊길 것으로 예측된다. 나사는 이들이 뭔가의 중력장에 붙잡히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속도로 영원히 우주로 나아가면서 300년 후 혜성의 고향 ‘오르트 구름’에 닿고 1호는 약 4만년 후에, 2호는 30만년 후에 다른 별의 영향권에 닿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보이저의 마지막 임무는 혹시라도 성간항해 중 외계문명과 조우했을 때 지구의 타임캡슐을 전해주는 일, 자연의 소리와 음악과 55개 언어의 인사말이 담긴 ‘골든 레코드’를 전달하는 인류의 전령사 역할이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월트 휘트먼의 시구를 읊조려본다.
“자 항해자여, 그대 앞으로 나아가라, 구하고 찾기 위하여”(Now, Voyager, sail thou forth, to see and find)
<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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