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날개를 활짝 펼쳐 푸른 하늘과 바다를 가르며 나는 갈매기. “높이 나는 갈매기가 더 멀리 볼 수 있다”는 구절로 유명한, 조나단 리빙스턴의 <갈매기의 꿈>이 뇌리에 박혀, 높이 치솟아 빠르게 날아가는 그 모습은 결의에 찬 의연함을 드러내는 듯 보였고, 그들의 자유로운 비행은 멋졌다. 도시의 콘크리트 열기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 소금기 어린 비릿한 내음을 맡으며 바람에 머리카락을 날리며 올려다보았던 갈매기, 그 갈매기를 도시의 열기 속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보았을 때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 새, 갈매기 아냐?!” 나는 지쳐서 내 옆에 앉아 있는 남편에게 물었다.
우리는 로마 바티칸 도시의 성벽을 등지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여름이 시작되기도 전인 6월 초인데도 햇빛은 한여름 대낮 같았고 많은 관광 인파가 그 열기를 더해 도시는 뜨겁고 쩍쩍했다.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조그만 그늘을 찾아 한 건물에 기대어 주저앉아, 길가에 세워진 차들 사이로 분주히 움직이는 비둘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것인지 새들을 위해 던져 준 것인지 땅에 떨어진 피자 크러스트를 비둘기는 열심히 쪼아대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커다란 피자 조각의 반 정도나 되는 제법 큰 것이어서 여러 마리가 오가며 쪼아대었다. 그런 회색빛 비둘기 사이로 커다란 갈매기 몇 마리가 날아들었다. 비둘기들은 모두 저만치 날아 비켜서 자리를 내 주었다. 비둘기에 비하니 갈매기의 몸집은 그 예닐곱 배는 될 듯하고 날개를 펼치니 키는 그 열 배는 넘을 듯했다. 그 갈매기 중 대장으로 보이는 큰 녀석이 여러 비둘기가 쪼아대던 커다란 피자 조각을 입에 덥석 물더니 날개를 훨쩍 펼쳐 날아올랐다. 함께 온 갈매기들도 그를 따라 지나는 차들 위로 날아올라 순식간에 사라졌다.
꼭 10년 만에 로마에 다시 갔다. 2013년 6월 가족여행을 다녀온 후 처음이다. 대학 때 배낭여행으로 다녀온 것까지 치면 세 번째 로마 여행인 셈이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이전에 로마에서 갈매기를 보았던 장면이 떠오르지 않았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나는 숙소로 돌아와 언제부터 갈매기가 로마 안에 머물기 시작했는지 찾아보았다. 1971년에 최초로 로마에 갈매기 한 쌍이 둥지를 틀었다 한다. 1980년대에 이르러 이탈리아 도시에서 둥지를 트는 갈매기 수가 천천히 증가하기는 했으나, 로마에서의 급작스러운 증가는 2013년 로마 서부의 거대한 쓰레기 처리장을 폐쇄한 이후라 한다. 도시 안엔 버려진 음식이 풍부해 갈매기, 특히 물고기 사냥 방법을 배울 필요가 없는 새끼들이 쉽게 먹이를 채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능이 높은 새로 알려진 갈매기는 현지 생선 가게의 정확한 영업시간을 알고 있다고도 한다.
다행히 내가 보았던 장면은 버려진 피자 조각을 입에 물고 유유히 떠나가는 갈매기였지만, 무시무시한 내용도 있었다. 2014년 1월 27일, 성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옆에 서 있는 한 소년과 소녀가 아포스톨릭 궁전 창문에서 평화의 제스처로 두 마리의 하얀 비둘기를 날렸는데 갑자기 갈매기가 날아와 한 비둘기를 벽에 밀어붙여 쪼아대며 깃털을 뽑아냈다. 2014년 8월엔 한 BBC 기자가 출근길 버스에서 갈매기가 비둘기를 잡아 갈가리 찢어 잡아먹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코비드로 온 로마가 문을 닫고 거리에 관광객이 버리는 음식이 사라진 동안 갈매기는 비둘기나 참새뿐 아니라, 쥐, 심지어 작은 개까지도 잡아먹기도 했고, 최근에는 보행자의 손에서 음식을 낚아채기도 한단다. 특히 산란기인 봄철에 갈매기 둥지에 가까이 접근하면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에서처럼 사람도 마구 공격하기도 해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인류의 무분별한 자연 생태계 파괴로 먹이와 살 곳을 잃은 동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나름의 길을 찾고 있는 듯했다. 왜 아니겠는가? 국제자연보전연맹 (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 and Natural Resources; IUCN)의 2020년 보고에 따르면, 이미 많은 동물이 환경파괴로 멸종됐고, 1만 4천여 종이 멸종위기에 놓여있다 한다. 오염, 남획(overfishing), 기후 변화로 인한 서식지 손실과 생물다양성 감소가 급증하는 멸종률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최근 내가 살고 있는 북버지니아와 근교 메릴랜드엔 도로와 주택가에 흑곰이 나타나 “흑곰과 마주치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침착히 대응하라”는 기사가 나왔다.
로마에 사는 이들은 갈매기와 함께 살아가는 데 익숙해진 듯했다. 이천년도 더 된 건물들이 도시 곳곳에 있어 과거와 현재가 혼재하고, 전 세계 관광객이 몰려들어 인종의 경계도 없는 도시 로마는 야생의 동물 갈매기와도 공존하는 법을 터득한 듯 보였다. 우리도 동물들에게 야생의 생태계를 되돌려 줄 수 없다면 그들과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할 듯하다. 사람과 자연환경이 조화되며 공생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생태도시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은 공공행정의 일만이 아닌 개개인의 행동을 요한다.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생활 방식과 함께 도시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을 배려하는 것. 오늘도 새들을 위해 그릇에 깨끗한 물을 담아 내놓고 새 모이통에 모이를 담아 내걸며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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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정 금융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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