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우폴서 차 몰며 주민 만나…재건현장 보고 들어”
▶ 마리우폴은 무차별 살상·강제이주 속 잿더미 된 도시
▶ 첫 점령지 공개행보… “ICC 체포영장에 대한 항변 제스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쟁범죄자로 낙인이 찍힌 뒤 피해가 극심했던 점령지를 전격 방문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우크라이나 전쟁범죄 혐의로 푸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공개한 직후에 전해진 행위로 국제사회를 향한 조롱이 담겼다는 관측이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 지역을 사상 처음으로 방문했다고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타스 통신은 크렘린궁 발표를 인용해 "푸틴 대통령이 (도네츠크주) 마리우폴을 실무방문해 시내 여러 장소를 시찰하고 현지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이 작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 방문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거 '특수군사작전(전쟁) 지역'을 방문했다고 밝힌 적이 있었으나 그 때는 지역을 특정하지 않아 우크라이나 점령지인지 불분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헬리콥터를 이용해 마리우폴에 도착했다. 크렘린궁은 방문 일시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AFP 통신은 18일이라고 적었다.
타스 통신은 "푸틴 대통령이 거리를 따라 차량을 몰면서 여러 차례 정차했고, 마라트 후스눌린 부총리가 동행하며 마리우폴과 시내와 교외 지역 재건과 관련한 세부상황을 보고했다"고 전했다.
마리우폴은 이번 전쟁 초기에 남부에서 가장 참혹한 전쟁범죄가 저질러진 지역이었다.
러시아는 작년 3월 17일 극장을 폭격해 최소 600명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해당 극장에는 공습을 피해 모인 임산부와 신생아, 어린이 등을 포함한 민간인 1천여명이 머무르고 있었다.
극장 앞 운동장에는 '어린이들'(дети)이란 표식까지 새겨져 있었으나 러시아군은 보란 듯 500㎏ 폭탄 두 발을 떨어뜨렸다.
당시 폭격 후 살아서 극장을 빠져나온 사람은 200명 안팎에 불과했다.
작년 3월 9일에는 마리우폴 시내 산부인과 병원이 러시아군의 폭격을 맞아 임산부와 신생아, 의료진 등이 숨지는 일이 있었다.
마리우폴 주민 중에는 사상검증, 세뇌 뒤 러시아 본토로 강제이주를 당한 이들이 많았다는 증언도 나온다.
푸틴 대통령이 ICC의 체포영장을 받게 된 것도 어린이들을 납치해 강제로 이주시킨 혐의 때문이었다.
러시아군은 이런 전쟁범죄 정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도시가 초토화될 때까지 공격을 계속했다.
러시아가 결국 작년 5월 마리우폴을 완전히 점령하는 과정에서 마리우폴에선 2만명이 넘는 주민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푸틴 대통령이 이런 장소를 전격 방문한 것은 러시아군이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ICC와 국제사회의 비판에 대한 답변이자 일종의 조롱으로 풀이된다.
마리우폴은 인구의 절반가량이 러시아계이고, 대부분 주민이 러시아어를 쓴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계 주민 탄압을 막겠다며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는 초토화된 마리우폴을 재건하면서 전쟁 명분 선전에 활용해 왔다.
푸틴 대통령이 마리우폴에 도착한 뒤 보여준 행보도 이 같은 선전과 맥락이 비슷하다.
크렘린궁 공보실은 후스눌린 부총리가 새 주거지역과 사회·교육시설, 공공 기반시설, 의료센터 등의 건설 등을 현장에서 보고했다고 밝혔다.
타스 통신은 푸틴 대통령이 마리우폴 네프스키 지역 주민들과 대화하고 그곳에 사는 가족의 초청으로 집에 방문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리아 노보스티 통신은 "푸틴 대통령이 요트 클럽 근처의 마리우폴 해안선과 극장 건물, 도시 내의 주목할 만한 장소들도 시찰했다"고 전했다.
해당 극장 건물이 전쟁범죄 참사 현장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18일에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병합 9주년을 맞아 크림반도를 찾기도 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방문은 지난 1년 사이 푸틴 대통령이 전선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것"이라면서 "(크림반도와 마리우폴) 고위급 방문은 ICC 체포영장 발부에 대한 크렘린의 항변 제스처이기도 하다"라고 풀이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국경에 접한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주의 주도 로스토프나도누에 위치한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 전투사령부를 찾아 최고 지휘관들과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크렘린궁 공보실은 "국가원수(푸틴)가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과 다수의 군지휘관들로부터 보고를 들었다"고 밝혔다.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은 올해 초 우크라이나전 통합사령관으로 임명돼 러시아군을 총괄해 왔다.
타스 통신은 푸틴 대통령이 작년 12월 17일에도 이 사령부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 구역'을 방문한 사실이 있다고 말해 우크라이나를 직접 방문했을 수 있다는 관측을 낳았는데, 실제로는 로스토프나도누의 전투사령부를 방문했던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통신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경우 이미 여러 차례 전선을 찾아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전략전술을 논의하는 모습을 보인 반면, 푸틴 대통령은 대체로 크렘린궁에 머무르며 원격으로 전쟁을 지휘해 왔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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