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5년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승리하면서 백인 남성에게만 주어졌던 투표권이 흑인 남성에게도 주어 지면서 1870년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에서 조셉 레이니가 최초로 연방하원의원으로 선출되었고 이후 2명의 연방 상원의원과 14명의 연방하원의원이 선출이 되었다.
그러나 1877년 남부 주둔 연방군이 철수 하면서 흑인 투표권을 제한하는 짐크로우 법이 여러주에서 통과 되어 1904년 흑인 투표율은 0%가 되었다. 그리고 1965년 흑인들이 피로써 투표권을 쟁취하기까지 88년의 시간이 걸렸다.
1965년 2월 18일 흑인 투표권을 위하여 시위를 하던 어머니를 보호하려던 지미 리 잭슨이라는 26세의 청년이 경찰의 발포로 병원에 옮겨졌지만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하고 죽었다.
이에 흑인들은 당시 앨라배마주 조지 월리스 주지사 면담을 요구하면서 셀마에서 80번 고속도로를 따라서 몽고메리 주의사당까지 87Km를 걷는 시위 행진을 벌였다. 그러나 셀마에서 몽고메리로 넘어가는 에그몬드 피터스 다리를 건너자 주 경찰은 체류탄과 곤봉으로 비폭력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공격하였는데 이 첫번째 행진을 ‘피의 일요일’이라고 한다.
이 첫번째 ‘셀마 몽고메리 행진’은 노벨 평화상을 받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를 포함한 수백 명의 인권 운동가들이 주도하였고, 존 루이스라는 청년도 1963년 그가 창립하고 의장으로 이끌었던 ‘학생 비폭력 조정 위원회’ 회원 600여명과 함께 참여했다.
그리고 존 루이스는 주 방위군의 폭력 진압으로 두개골 골절상을 입고 피 흘리는 모습으로 TV에 보여지면서 ‘피의 일요일’로 불리게 된 흑인 민권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3월9일 킹 목사가 주도하고 2500여명이 참가한 두번째 행진이 열렸고, 여기에 참여한 백인들 중 제임스 리브가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의 공격으로 부상을 입었는데 셀마의 병원들이 치료를 거부해서 3월 11일 사망했다.
이어 세번째 행진이 3월 21일 열려 마침내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 행진을 하였고, 같은 해 8월 린든 존슨 대통령은 유색인 투표권을 보장하는 수정헌법 15조에 서명을 하였다. 이로서 미국에서 흑인과 아시아인을 비롯한 모든 유색인들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투표권 보장 이후 ‘피의 일요일’의 상징적 인물이 된 청년 존 루이스는 1966년 뉴욕으로 이주하여 유권자 교육 프로젝트(Voter Education Project: VEP)의 사무총장이 되어 400만 명에 가까운 소수민족 유권자를 등록시킨 조직을 이끌면서 참정권 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리고 애틀랜타로 이주하여 1981년부터 1986년까지 애틀랜타 시의원을 지냈고, 1987년 부터 2020년 그가 죽기전까지 애틀랜타 제5선거구 연방하원의원을 지냈다. 2011년 오바마 대통령으로 부터 민간인 최고의 훈장인 ‘대통령 자유의 메달’을 받았고, 2020년 7월 17일 숨을 거두자 7월 27일 부터 28일까지 워싱턴 의사당 중앙홀에 안치되었다가 1965년 셀마 몽고메리 행진의 시작지였던 Brown Chapel AME Church에서 장례를 치르고 조지아의 South View 묘지에 영원히 잠들었다.
흑인 민권원동의 지도자들을 배출하고 50년대 60년대 민권운동의 모든 전략을 세웠던 민권운동의 사령부가 있는 곳, 흑인들의 자립적 경제권을 세워서 민권운동을 지원하고 라디오와 신문을 통해서 전국으로 알렸던 곳, 이러한 민권운동의 본거지가 바로 조지아 Sweet Auburn Ave다.
그리고 220애비뉴에는 최초의 흑인 공립학교와 모리스 브라운 대학과 민권운동의 목소리를 내보냈던 라디오 방송국이 있었고, 1957년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의 지휘부 역할을 했던 흑인 노예들이 세운 흑인최초의 교회인 Big Bethel AME Church가 있다. 그리고 마주 보는 건물벽에 영웅 존 루이스의 연설 모습이 그려져 있고 다음과 같은 그의 풀뿌리 운동의 연설문이 쓰여져 있다.
이 나라를 휩쓸고 있는 이 대혁명에 여러분 모두 동참해 주실 것을 호소합니다. 참된 자유가 올 때까지, 1776년 혁명이 완결될 때까지 이 나라의 모든 도시, 모든 마을, 촌락의 거리에 들어가 활동하십시오.
한번 후퇴한 역사를 되돌려 놓는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의 제도적 민주주의에 평등과 인권이라는 영혼을 불어넣은 민권운동의 영웅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미국의 모든 유색인들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고 또 정계에 진출하여 미국의 지도자가 될수 있었다. 2월 21일은 흑인을 비롯한 소수계의 참정권을 쟁취하고 확대하기 위하여 청춘과 일생을 바친 존 루이스가 태어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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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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