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아메리칸 뮤즈’(Korean American Muse)라는 단체가 있다. 주류 및 한인 예술단체들을 후원하는 여성들의 모임으로, 예술후원에 인색한 한인사회에서 거의 10년 동안이나 변함없이 전문적으로 일해 왔다는 점에서 놀랍고 고맙고 자랑스런 단체다.
캄(KAM)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는 LA카운티미술관(LACMA)의 한국미술부에 대한 정기 후원이다. 해마다 5,000달러씩 기부하고 있고, 한국미술과 관련된 기획전이 열릴 때는 1만 달러씩 지원한다. 예를 들어 ‘조선미술대전’(2014)이나 한복 패션쇼(2018), ‘한국서예전’(2019), 그리고 현재 열리고 있는 ‘박대성 수묵화전’과 ‘한국근대미술전’ 같은 전시에 든든한 후원자로 나서는 것이다. 돈을 기부하기도 하지만 강의와 심포지엄, 공연 등 부대행사를 지원하거나 한국서 초빙돼오는 전문가들의 체제비와 리셉션 식비 등을 도맡아 해결하기도 한다.
라크마만 지원 대상인 것은 아니다. 커뮤니티에서도 좋은 전시나 후원이 필요한 작가들이 있을 때 아낌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2020년 3월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모든 음악회와 전시, 공연들이 취소됐을 때 갑자기 생계를 잃은 작가 음악가 무용단체를 위해 코비드 장학금을 신설, 11명에게 1,000달러씩 총 1만1,000달러를 전달했다. 또 2021년 한인타운 ‘샤토 갤러리’와 다운타운의 ‘LA 아트코어’에서 열린 대형기획전 ‘디아스포라 아리랑’을 후원했고, 지난 10월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K-시네마 심포지엄도 캄이 서포트 했다.
그렇다고 캄의 뮤즈들이 기부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예술적 소양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회원들이 한 달에 한번 모여 남가주 일대에서 열리는 전시, 공연, 스튜디오 방문 등에 나서는 것이다.
올 한해 가졌던 활동만 꼽아보아도 1월부터 아카데미 영화뮤지엄, 게티 센터, 브로드 뮤지엄, 헌팅턴 라이브러리, 하우저 & 워스 갤러리, 브래드베리 건축투어, 고 안영일 화백 자택투어, 라크마(박대성 수묵화전, 한국근대미술전) 등이 있었다.
미술관련 만이 아니라 7월에는 할리웃보울의 조성진 콘서트, 8월 LA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류축제 ‘KCON 2022 LA’, 영화관에서 보는 라이브 메트 오페라공연도 함께 감상했다. 일 년에 잘해야 한두 번 뮤지엄 찾기도 쉽지 않은 우리네 삶에서 매달 이처럼 순도 높은 문화예술 활동을 기획하고 참여하며 즐긴다는 것은 보통 놀라운 일이 아니다.
캄은 1991년 설립된 한미박물관(Korean American Museum)에서 자원봉사 하던 여성들과 초대관장 이명숙씨가 2014년에 만든 비영리단체다. 현 회장인 제인 리씨에 따르면 이 단체는 처음부터 전문적인 조직으로 운영돼왔다. 3개월마다 15명의 이사들이 모여 회계와 서기 보고를 갖고 있고, 회비와 모금과 개인기부금 등을 알뜰히 모아 지금까지 탄탄하게 성장해왔다. 현재 회원은 70여명, 회비는 연 200달러로 생각보다 저렴한 편이다.
캄 회원들과는 오랫동안 여러 행사에서 마주치며 알음알음 교류해왔다. 아트 좋아하는 비슷한 반경에서 비슷한 서클의 지인들과 연결돼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공식모임에 참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얼마 전 마침내 그럴 기회가 있었다. 지난 8일 할리웃의 헬렌 J 갤러리에서 열린 캄 연말파티가 그 빅 이벤트였다.
캄은 매년 윌셔 컨트리 클럽에서 연말파티를 열어왔는데, 올해는 장소를 옮겨 회원들만의 파티가 아니라 여성 스몰비즈니스업주들을 돕는 특별행사를 겸해 개최했다. 제인 리 회장은 “요즘 우리주변에 한국적 감각을 창의적으로 비즈니스에 접목하는 젊은 여성들이 굉장히 많다”면서 “아이디어가 반짝반짝 하는 이들을 알리며 돕고 싶어서 기획한 파티”라고 설명했다.
과연 초청된 10여개의 벤더들은 갤러리 곳곳에 작은 부스를 차려놓고 예술적 감각이 돋보이는 재미있는 상품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특이한 재료로 퀴노아 김밥을 만드는 ‘간식’(대표 고수정), 훈민정음 반지 등 주얼리에 한국문화를 디자인하는 ‘루핀’(지은혜), 멋진 식물화분들이 눈길을 끄는 ‘나무’(박애니), 한인타운의 예쁜 찻집 ‘로즈 앤 블랑’(벨라 김), 한국적인 세라믹 그릇 ‘메이드바이은진’(배은진), 예쁜 안경집과 핸드폰걸이(박은영), 수제 비누업소 ‘온도’(전하나), 오미자 등 한국 전통음료를 재해석한 ‘제로 프루프’(한석조) 등 신선한 아이디어로 창업한 스몰업체들을 돌아보며 1.5세 한인여성들의 기막힌 솜씨와 예술 감각에 깜짝 놀랐던 시간이었다.
여기에는 나의 친구 줄리 심도 초대받았다. 사실 이 행사에 간 것도 그 때문이었는데, 오랫동안 니카라과의 여성들을 위해 봉사해왔지만 비즈니스 감각이 제로인 그를 응원하고 싶었던 것이다. 줄리는 미국에서 기증받은 천 조각들을 니카라과로 잔뜩 싣고 가서는 현지 여성들에게 수제품 액세서리, 가방, 인형들을 만들게 한 다음 완제품들을 다시 잔뜩 싣고 오는 일을 15년 넘게 해왔다. 만든 사람들에겐 돈을 지불했지만 미국에서 이를 팔기란 수월치 않아서 계속 쌓여만 온 것이다. 하지만 이날 행사에서는 보기만 해도 귀엽고 바느질 꼼꼼하고 디자인과 색상이 화려하며 가격마저 싼 수제인형들이 ‘손녀 선물용’으로 많은 인기를 누리며 팔려나갔다.
나눔의 계절에 열린 훈훈한 파티였다. 선배 여성들이 후배 여성들을 돕는 아름다운 이벤트가 앞으로도 한인사회에서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예술은 영감을 주는 뮤즈뿐만 아니라 후원하는 뮤즈들이 있어야 성장하고 꽃필 수 있다. 소리 없이 일하는 캄 뮤즈들에게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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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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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기사.. 훈훈합니다~
이런분들이 있기에 어수선한 지구촌 미쿡에서도 살만한 맞이난다할수있지요 그저 멀리서 감사하단말을전하고 싶군요 감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