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4일 목요일 저녁, 서울 강서구의 한 KFC 매장이 북적거렸다. 주문 후 자기 몫의 치킨을 받아들기까지 적어도 삼십 분은 걸렸다. 제22회 카타르 월드컵의 첫 한국전(대우루과이) 날이었으니 그야말로 특수를 누리는 중이었다. 보이는 상황은 좋아 보였지만 사실 속사정은 달랐다. KFC는 현재 매각을 앞두고 협상 중이다. 현 소유주인 KG그룹이 올 3월 매각 결정을 내렸고, 현재 사모펀드사인 오케스트라PE와 우선 협상 중이다. KG그룹이 2017년 2월 KFC를 인수했으니 5년여 만에 내놓은 것이다.
500억 원에 KFC를 인수했던 KG그룹의 매각 희망액은 1,000억 원이지만 600억 원 선에서 계약이 체결될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나마 KFC의 상황은 나쁘지 않다. 버거킹, 한국맥도날드, 맘스터치 등 비슷한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가 시장에 나온 판국에서 유일하게 우선협상대상자를 구했으며 협상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배타적 협상기간 및 연장시한까지 감안하면 내년 1월 내로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다.
KFC는 1984년 국내에 출범했다. 두산그룹 계열의 코카콜라 병입업체인 한양식품이 라이선스를 가져와 4월 25일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 자리에 1호점을 개장했다. 한참 승승장구했지만 두산그룹이 중공업 우선으로 체질을 개선하면서 소유주가 바뀌었다. 2014년 외국계 사모펀드인 시티벤처캐피털로 넘어갔다가 KG그룹의 계열사가 되었다. KG그룹이 KFC를 인수한 시점은 좋다고 보기 어려웠다. 2016년부터 시작된 적자 추세가 2018년에 정점을 이루었고, 2020년까지 누적 적자만 474억 원에 달했다. 그탓에 2020년까지 자본잠식 상태였던 것을 2021년 차입을 통해 부분자본잠식 상태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2021년에는 매출 2099억 원에 순이익 6억 원을 기록했으니, KFC가 순흑자를 낸 건 2015년 이후 처음이었다.
치킨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KFC가 왜 이리 고전하는 걸까? 바로 우리 한국식 치킨의 영향이 컸다. 매운맛과 단맛의 양념으로 무장한 한국식 치킨이 외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가뜩이나 경쟁이 치열한 프라이드치킨 시장에서 KFC의 입지를 상당 부분 약화시켰다. 외국에서 이럴 정도이니 국내에서 KFC가 선전하기란 더 어려운 일이다. 사실 양념 위주인 치킨 시장에서 프라이드는 또 다른 매력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새로운 실험이 부단히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의 치킨 시장에서는 이야기가 또 다르다. 한국식 프랜차이즈보다 다소 큰 닭을 튀긴다는 점이 KFC의 장점이 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퍽퍽한 조리로 되레 약점으로 작용한다.
사실 KFC의 상황은 전 세계적으로 좋지 않다. 한국을 비롯한 해외보다 본토인 미국에서 더 고전하고 있다. 해외에서 맛볼 수 있는 치킨버거나 디저트 등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메뉴는 미국 본토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홍보 또한 ‘가성비’에 초점을 맞춰, 경쟁 프랜차이즈에 비해 얼마나 더 싸게 많이 먹을 수 있는지를 내세우기에 급급하다. 그렇다고 KFC가 단지 요 몇 년 동안만 그랬느냐면 사실 그렇지도 않다. ‘KFC가 예전만 못하다’라고 말할 때의 그 ‘예전’이 이미 오십여 년 전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듯 KFC는 할란드 샌더스 대령(1890~1980)의 창조물이다. 그는 많은 인생 역경을 겪은 끝에 치킨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대령은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공부도 일찍 그만 두었으며 밥벌이를 위해 자주 이사를 다녀야만 했다. 농사도 지어봤고 대령은 아니었지만 군복무도 했으며 철도 회사에도 몸담았다. 소방관으로도 일해봤고 법무사도 해보았지만 의뢰인과 싸움을 벌여 업계에서 퇴출됐다. 그러다가 주유소에서 치킨을 팔기 시작하면서 인생이 피기 시작했다. 1930년, 정유회사인 셸이 무월세로 빌려준 켄터키주 노스 코한의 주유소 한쪽에서 음식을 팔기 시작했다. 경쟁자가 있었지만 셸의 직원을 쏴죽이고 퇴출돼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KFC의 전신이었다.
무엇보다 KFC는 11가지 특제 허브 및 향신료로 잘 알려져 있다. 튀김옷의 밀가루에 더하는 이들 양념의 레시피는 코카콜라의 배합비와 더불어 식품 산업의 양대 영업 비밀로 통한다. 특허로 분류했다가는 20년이면 지적재산권이 소멸돼 공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영업 비밀을 선택했다. 대령의 손글씨 레시피는 11가지 향신료 및 허브의 작은 병(바이얼)과 함께 KFC 본사의 금고에 보관되어 있다. 발명가 윈스턴 셸턴이 개발한 콜렉트라매틱을 활용한 압력 튀김도 KFC를 유명하게 하는 데 한몫 단단히 거들었다. 압력 튀김기에서는 물이 106℃에서 끓으므로 튀겨지는 닭에서도 수분이 덜 증발해 치킨이 훨씬 더 촉촉하게 익는 원리였다.
이 두 가지 요인이 맞물려 완성된 치킨으로 대령은 1952년, 유타주에 첫 프랜차이즈 매장을 연다. 그리고 이후 4년 동안 미 전역을 누비며 직접 KFC를 홍보하고 프랜차이즈 사업주를 모집한다. 치킨의 맛과 독특한 대령의 외모가 맞물려, KFC는 1964년까지 600여 곳의 프랜차이즈 매장을 거느린 사업체로 성장한다. 바로 이때 대령은 KFC를 일군의 투자자들에게 200만 달러에 매각한다. 4만 달러의 연봉과 더불어 KFC의 홍보대사로 활약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계약이었다.
매입과 더불어 KFC는 본격적으로 확장을 시작한다. 1970년까지 고작 6년이라는 기간 동안 프랜차이즈가 무려 3,400곳으로 불어났다. 당시 맥도널드 프랜차이즈의 두 배에 이르는 양적 팽창이었다. KFC를 위협하는 프라이드치킨 프랜차이즈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시점에서 혼자만 덩치를 엄청나게 불린 형국이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치킨 프랜차이즈들이 등장하자, 이미 너무 덩치가 커져 버린 KFC는 제대로 대처를 못하고 휘청거렸다. 그 결과 2013년 KFC는 순매출액에서 치킨 샌드위치로 유명한 프랜차이즈 칙필레(Chick-fil-a)에게 밀려 2인자로 전락하고 만다. 오십 년 이상을 지켜왔던 선두였던지라 충격이었지만, 칙필레가 채 절반도 되지 않은 매장을 가지고 이뤄낸 성과였으므로 훨씬 더 뼈아팠다.
1971년 KFC는 스미르노프 보드카로 유명한 휴블라인에 매각된다. 한국에 KFC가 진출할 때의 소유주였던 휴블라인도 공격적인 팽창을 멈추지 않았으니, 1980년까지 전미 매장의 수는 6,000여 곳으로 늘어났다. 그 과정에서 음식의 완성도를 희생시켜 비용을 절감한 탓에 소비자로부터 외면당하게 된다. 설립자이자 치킨의 창조자인 샌더스 대령이 공개적으로 음식의 품질을 비난하다가 고소를 당할 뻔했다. 자신이 직접 운영할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의 맛이라며, 대령은 “최악의 치킨”이라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1982년, KFC의 소유주가 다시 한번 바뀐다. 당시 전미 최대 규모의 담배 제조업체였던 R.J. 레이놀즈가 휴블라인의 브랜드 전체를 사버린 것이다. R.J. 레이놀즈는 이미 델몬트나 오레오 쿠키샌드로 유명한 나비스코를 매입해 식품 소매업에 진출한 상황이었지만 4년 뒤 KFC만 펩시에 매각하고 만다. 이미 피자헛과 타코벨을 매입해 혁신적인 메뉴로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었던 펩시는 KFC에도 똑같은 시도를 했지만 잘 먹히지 않았다. 그리고 1997년, KFC를 비롯한 펩시의 요식업 브랜드는 별도의 상장회사로 계열 분리하여 염! 브랜드(Yum! Brands) 소속이 되었다.
이렇게 KFC의 소속이 바뀌는 동안 브랜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샌더스 대령이 세상을 떠났다. 1980년, 향년 91세였다. 사실은 지금까지도 KFC는 홍보에서 고전하고 있다. 만화를 활용하기도 하고 코미디언 짐 개피건 등 수많은 인물들이 샌더스 대령으로 분장해 광고에 등장했지만 실제의, 절대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인물의 호소력은 대체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여기에 건강에 대한 우려가 KFC의 지속가능성을 끊임없이 약화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패스트푸드인데다가 튀김인 치킨이 예전만큼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버거의 빵 대신 프라이드치킨을 쓴 ‘더블 다운 샌드위치’ 같은 메뉴는 사회의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 못하는 제스처로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KFC는 2020년대까지 버텨왔지만 현재로서는 미래가 밝지 않아 보인다. 경쟁이 너무나도 치열한 프라이드치킨 업계에서 너무 오랫동안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왔기 때문이다. 그나마 해외에서 나름 선전해 미국과의 소득 비율을 8:2로 유지하고 있다는 게 절망 속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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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음식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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