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고, 유례없이 뜨거웠던 2022 중간선거가 끝났다. 대략의 결과는 윤곽이 나오고 있지만 투표 집계가 완전히 끝나려면 아직도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이다.
일찌감치 우편투표를 마친 사람으로서 이번 선거에서 주의 깊게 통과여부를 살펴보고 있는 것은 캘리포니아 주민발의안(Proposition) 28이다. 이 발의안의 내용은 “공립학교의 예술과 음악교육을 위해 추가기금을 제공한다”는 것, 즉 매년 주정부와 로컬정부가 공립학교에 제공하는 기금에다 1%를 추가로 지원하여 음악, 무용, 연극, 미술, 사진 등 시각 및 공연예술 프로그램에 쓰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이 발의안이 통과되면 가주의 초중고 공립학교들은 내년부터 약 10억 달러 정도의 기금을 추가로 받게 되고. 저소득층 지역 학교들에는 더 많은 비율로 배당된다. 이 기금은 세금인상 같은 방법으로 충당하는 것이 아니라 주정부의 일반기금(general fund)에서 배정하도록 발의돼있어서 주민들 입장에서는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는 착한 법안이다.
오래전 아들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클래스 학과목들을 보고 굉장히 놀랐었다. 한국에서는 모든 학년에 당연히 들어있던 음악과 미술 클래스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술은 그렇다 쳐도 음악수업이 없다는 사실이 황당했다. 음악시간이 없으면 노래도 못하고 악보도 못 읽고 악기들에 대해서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는 소리 아닌가. 그때부터 아들에게 클라리넷 레슨을 시켰는데, 그대로 놔두면 인간으로서 기본소양을 못 갖출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통계에 의하면 현재 캘리포니아의 공립학교 중에서 예술 프로그램이 있는 학교는 20%도 되지 않는다. 초등학교의 90%, 중학교의 96%, 고등학교의 72%가 예술 분야의 학습과정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느 분야에서나 재정이 모자랄 때 가장 먼저 삭감되는 것이 문화예술이다. 읽기, 산수, 과학 같은 과목이 음악과 미술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당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가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지난 30년 동안 미 전국적으로 예술교육은 계속 축소되는 위기를 겪어왔다.
특히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에는 문화예술계와 백악관이 극심한 불화를 겪으면서 큰 위기를 만났다. 2017년 8월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일어난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폭력사태가 원인이었다. 이때 트럼프가 극우파를 두둔하는 발언을 내놓자 대통령 예술인권위원회(President’s Committee on the Arts and the Humanities)의 위원 17명이 일제히 비난하며 사임했고, 트럼프는 “그러잖아도 미국인들의 세금만 낭비하는 이 단체를 해체할 작정이었다”고 맞서면서 위원회가 해산되고 말았다.
대통령 예술인권위원회는 1982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 창설돼 예술과 문화, 인권 관련 분야에 대해 대통령에게 조언을 해왔으며, 연방 차원에서 미국의 예술교육 지원을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중요한 단체다.
다행히도 지난달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 예술인권위원회를 5년 만에 복원시키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예술과 인간애는 우리나라의 복지, 건강, 생명력,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미국의 영혼이다”라는 감동적인 선언과 함께.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작년 5월에도 연방 문화부처인 국립예술기금(NEA)과 국립인문기금(NEH)의 예산을 대폭 증액시켜 예술계의 환호를 샀다. 이 두 기금은 트럼프가 취임하자마자 없애겠다고 공언했고, 재임 시절 매년 예산안에서 이를 삭제했으나 의회의 지지로 살아남았었다. 대저 공화당은 언제나 문화예술 기금에 대해 ‘낭비’라는 입장인 반면 민주당은 이를 옹호하고 지지하는 정책을 펼쳐왔다. 예술과 인간애에 대한 투자를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인간들일까?
학교 종이 땡땡 치고,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며, 퐁당퐁당 돌을 던지다가,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물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오늘 우리는 다른 사람이 돼있었을 것이다. 해마다 열리던 교내 백일장과 미술사생대회가 없었더라면, 수많은 문학의 밤과 합창 경연대회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사뭇 결이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험한 인생에서 실망과 절망, 상처와 고통을 지나는 동안 우리를 숨 쉬게 하는 건 사람이나 돈이 아니다. 가슴을 울리는 한 줄의 시, 한 소절의 음악, 벽에 걸린 그림 한 점이 다친 마음을 위무하고 안아준다. 책을 읽으며 깨달음을 얻고, 신명나는 춤을 보며 흥분하고, 독창적인 영화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엿본다. 2년이 넘는 코로나 팬데믹 동안 갇혀 지낼 때 일상을 평온하게 유지하게 해준 건 몇 권의 시집과 책, 여기저기서 모은 화집들, 그리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무료 스트리밍 덕분이었다. 예술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정신과 영혼을 고양시킨다.
어린 시절의 예술 교육이 평생에 걸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미술과 음악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다른 과목에서도 성적이 올라가고, 창의적이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깨치게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음악교육은 인지 발달과 감성 기능을 향상시키고, 연극교육은 독해력과 공간추론 능력을 향상시키며, 미술교육은 상상력과 창의력, 관찰력, 심미적인 표현력을 길러준다.
프로포지션 28이 무난히 통과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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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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