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와 바그너는 서양음악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작곡가들이다. 하지만 활동시기가 달랐던 만큼 두 사람의 음악은 크게 다르다.
모차르트 음악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의 대명사다. 투명한 선율, 단순한 조성과 화성이 너무도 완벽하고 조화로워서 사람은 물론 동물과 식물도 기쁨을 느낀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을 정도다.
반면 바그너는 바로 그 조화로운 고전음악의 형식과 조성을 밑바탕부터 해체한 인물이다. 기승전결로 딱 떨어지는 음악의 매듭과 대칭을 무시하고, 표현을 늘이거나 모호하게 만든 무한선율과 단음계 조성으로 현대음악의 기초를 놓았다.
두 사람은 사치와 낭비벽이 심해서 빚쟁이들에게 시달렸다는 공통점을 빼고는 성격적으로도 매우 다르다. 모차르트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묘사된 것보다 훨씬 다정하고 우아하고 너그러웠다고 한다. 당구와 춤을 좋아하고 유머러스했으며 많은 사람과 다양한 교제를 나눴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반면 바그너는 열정과 카리스마가 넘쳤지만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이어서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게다가 아리안우월주의자이며 반유대주의자였기 때문에 히틀러 같은 자는 광적으로 숭배했지만 그를 혐오하고 배척하는 반대파도 많았다. 당연히 이스라엘에서는 최근까지도 그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금기였다.
18세기와 19세기 서양음악의 신과도 같은 모차르트와 바그너의 혼령이 지금 21세기에 불려나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다름 아닌 우크라이나 전쟁이 그 대결장이다.
먼저 ‘바그너 그룹’이 있었다. ‘푸틴의 그림자부대’로 알려진 이 그룹은 러시아정보총국(GRU) 특수여단 출신의 드미트리 우트킨이 2014년 설립한 준군사단체다. 그룹의 이름은 신나치주의자 우트킨이 사용하던 암호명, 바로 히틀러가 좋아한 바그너에서 따온 것이다.
8,000명의 병력을 가진 바그너그룹은 러시아가 공식적인 해외 파병이 곤란할 때 제3세계 분쟁지에 투입되어 푸틴의 해결사 노릇을 하는 용병 집단이다. 예를 들어 2014년 러시아가 크름반도를 강제병합하고 돈바스의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을 도울 때 암약했고. 시리아 리비아 수단 말리 모잠비크 등 분쟁지역마다 나타나며 8년간 30개국에서 러시아의 이익을 위해 활동한 전황이 드러났다.
잔혹하기 짝이 없는 마피아식 범죄 집단인 바그너그룹은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에도 참전, 지난 4월 부차 지역의 민간인 1,000여명의 학살이 바로 이들의 만행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전쟁으로 바그너그룹은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된다. 다수의 지휘관들을 포함, 수천 명의 대원이 사망하여 전투 수준이 급격히 하락했다는 것이다. 관련당국은 줄어든 대원의 보충을 위해 러시아 전역의 교도소에서 살인, 강도범들을 사면을 조건으로 모집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에 대항하는 ‘모차르트 그룹’은 은퇴한 미 해병대 예비역 대령 앤드류 밀번(59)이 지난 3월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전직 미 특수작전부대 대원들을 중심으로 11개국에서 자원한 참전용사 및 전직 파일럿 등 약 50명이 활약하는 소수정예 그룹으로, 악명 높은 바그너그룹에 맞서는 서방 용병부대라는 의미에서 모차르트의 이름을 빌렸다.
모차르트그룹은 러시아군과 직접 싸우지는 않는다. 대신 우크라이나군의 훈련과 격전지에서 민간인을 대피시키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징집령이 내리자 수십만명이 도망친 러시아와는 달리 우크라이나에는 군에 자원하는 젊은이들이 줄을 서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총 한번 잡아본 적이 없는 이들을 훈련시킬 교관이 절대 부족하다. 대부분 전선에 나가있거나 죽었거나 부상당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그룹은 신병들에게 일주일 남짓의 짧은 시간 동안 사격, 이동, 야간전술, 응급대처, 지뢰를 비롯한 폭발물 식별 및 제거술 등을 가르치는 한편 방탄복, 야간투시경, 드론을 비롯한 군장비도 지원한다. 모든 경비(월 17만5,000달러)는 뉴욕의 재력가들과 유대인 그룹 및 인도주의 단체들의 민간기부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모차르트그룹을 창설한 밀번 대령은 31년 간 미군에 몸담았다가 2019년 전역한 베테런이다.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물론 이슬람국가(IS) 특수작전 태스크포스의 첫 지휘관이었던 그는 은퇴 후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리며 술로 나날을 보냈다.
그런 그를 구원해준 것은 글쓰기였다. 잡지 등의 매체에 기고하면서 군 경험을 기술한 책(‘When the Tempest Gathers’)도 출간한 그는 지난 3월 미군 간행물의 자유기고가로서 폴란드를 방문했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펜을 내던지고 전선에 뛰어들었다. 전혀 준비가 안 된 우크라이나군을 위해 자신이 군복무에서 축적한 자산을 아낌없이 사용할 기회를 본 것이다. 밀번과 모차르트그룹은 지금 군인양성과 전술훈련에 매진하는 한편 포탄이 떨어지는 격전지에서 목숨을 걸고 민간인들을 대피시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광기가 애꿎은 모차르트와 바그너의 이름을 전장으로 소환했다. 전쟁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두 위대한 작곡가가 이 비극을 보면 뭐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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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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