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RB·유럽발 악재 겹쳐 하루새 22원 ↑
원·달러 환율의 폭주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26일 1,430원대까지 돌파하며 13년 6개월여 만의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다. 이처럼 환율이 미친듯이 계속 급등하자 미국내 유학생들과 주재원 등의 ‘패닉’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반면 수입업계와 한국을 방문하거나 송금을 하려는 미주 한인들은 높아지는 달러 파워를 반가워하는 등 희비가 교차하고 있다.
■얼마나 뛰었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강도 긴축과 유럽발 악재 등이 겹치면서 한국시간 26일 원·달러 환율은 하루새 무려 22.0원이 오른 1,431.3원에 마감했다. 환율이 1,430원을 넘어선 것은 2009년 3월17일(고가 기준 1,436.0원) 이후 13년 6개월여 만이고, 특히 이날 오후에는 장중 1,434.8원까지 오르면서 2거래일 전 기록한 종전 연고점(고가 기준 1,413.4원)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이어 27일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3.3원 내린 1,428원에 출발해 등락을 이어가고 있는데, 연준이 올해 남은 기간 기준금리를 다시 최고 1.25%포인트까지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 달러화 초강세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여 1,500원대도 가능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서정훈 하나은행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 상승 속도를 보면 단기적으로 10월까지만 봐도 1,450원을 넘을 가능성이 있고, 연준의 기조가 확연히 바뀌거나 미국 물가 상승률이 눈에 띄는 속도로 꺾이지 않는다면 환율 상승세는 지속돼 1,500원까지도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환율이 야속해”
한국에서 송금을 받아 생활하는 기러기 가족과 유학생, 주재원 입장에서는 매일같이 급등하는 원·달러 환율이 야속하기만 하다.
UCLA에 재학중인 김모(21)씨는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을 넘어 설 때만해도 설마설마했다. 오늘 한국에 계신 아버지가 전화를 걸어 앞으로 환율이 1,500원까지 오를 것 같은데 잠시 휴학하고 군대에 갔다오는 게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어 보셨다고 전했다. 김씨는 “아버지도 IMF 당시 미국 대학원 유학 중이었는데 환율이 너무 올라 공부를 마치지 못하고 귀국했었다”며 “나도 자칫 학업을 마치지 못할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매달 한국 본사에서 지급하는 월급을 받아 생활하는 지상사 주재원들은 미국과 같이 물가가 비싼 국가의 경우 어느 정도 정착비를 지원받지만 상황이 어려운 건 매한가지다. 한 대기업 LA 현지법인에서 법인장으로 근무하는 정모(52)씨는 “2008년 금융위기 때 말단 직원으로 나왔다가 환율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상황을 맞게 됐다”며 “1997~1998년 IMF부터 2008~2009 금융위기, 그리고 올해 2022년까지 10여년마다 되풀이되는 원·달러 환율 급등이 마치 저주와도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 초 한국에 계셨던 부친의 사망으로 상속을 받은 최모(61)씨. 상속받은 부동산을 매각하고 상속세를 낸 나머지 금액을 일단 은행에 예치해 놨는데 환율이 계속 오르자 송금시기를 결정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연초 환율이 1,100달러 초반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300원 이상 더 올라 1억원 기준으로 3,000달러 이상 차이가 난다”며 “더욱이 한국에서 송금할 때는 1,450원으로 계산돼 언제쯤 한국에서 돈을 가져와야 할 지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환율아 고마워”
이에 반해 미국에서 한국산 제품을 수입하는 업체들에게는 이같은 원·달러 환율 급등이 희소식이다. 달러 강세로 생긴 환차익으로 수입 대금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 여행을 계획 중인 한인들과, 한국에 송금하려는 한인들에게도 환율 급등이 반갑기만 하다. 달러화 강세의 영향으로 한인 은행권에서 실시하는 추석 무료송금 기간에 한인들의 모국 송금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올해 추석을 전후해 6개 한인 은행들이 제공한 무료 송금서비스를 통해 한국 등 해외로 송금된 전체 개인송금 액수는 2,139만 달러, 원화로는 295억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송금액 총 규모는 지난해의 1,504만 달러에 비해 42.2%, 원화기준 송금액은 지난해 174억원(2021년 9월22일 1,160원 기준)과 비교할 때 무려 69.5% 증가했다.
은퇴를 전후 해 역이민을 고려 중이거나 팬데믹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려 한국 여행을 다녀 왔던 한인들은 강달러의 위력을 체험하고 있다. 삼호관광의 모국 방문여행을 포함, 한달간의 한국 여행을 마치고 지난 주말 LA에 돌아 온 조모(47)씨는 “한꺼번에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는 대신 환율이 올라갈 때마다 조금씩 바꿔 사용했고 카드 결제시에도 원화 결제방식을 선택해 여행비를 많이 아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조씨는 그러나 “경기침체에 이자도 오르고 환율 변동까지 겹쳐 힘들어 하는 한국 가족들을 생각하면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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